[문화광장] 우리슈퍼와 젠트리피케이션,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TV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다큐 3일에서는 경리단 길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TV에 나온 경리단길의 모습은 평소에 보았던 대로 썰렁했다. 그리고 이어져 나오는 상인들의 인터뷰.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 매출이 시원치 않다는 사장님들의 인터뷰와 사는 모습이 비춰졌다. 이후 이태원에 여러 식당들을 운영하고 있는 홍석천씨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이태원의 백종원이 되지 못한 그의 인터뷰에서 예전같지 않은 경리단길의 위상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경리단길이 각광받기 시작했던 시기가 00년대 후반부터 10년대 초까지였으니 옛날 경리단길을 소상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을 자주 다니는 입장에서 그 거리가 소위 ‘핫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경리단길 초입에 있는 더 부스와 맥 파이는 이 동네를 대표하는 맥주집이다. 대한민국의 수제맥주 붐을 선도한 두 맥주 양조장은 경리단길을 맥주의 성지로 만들었다. 이렇게 수제맥주 붐이 형성된 데에는 어느 외신 기자의 인터뷰와 수입맥주의 보편화 현상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슈퍼’ 라는 평범해보이는 동네 슈퍼마켓은 한국 수제맥주의 성지 사이에 있는 해외맥주 전문 슈퍼마켓이다. 높은 지대와 임대료, 도소매 단가를 맞추지 못해 슈퍼들이 모두 편의점으로 바뀌고 있는 현실에 슈퍼마켓이 아직 경리단길 한복판에 있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막상 가게 안에 들어가면 수많은 냉장고들과 그 냉장고들 안의 세계맥주 라인업에 이성을 잃을 수도 있다. 난생 처음 보는 맥주들을 맛보려고 마구 구매하다 보면 어느새 통장 잔고 앞자리가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게다가 가게 앞에 편의점 테이 블을 놓고 방금 산 맥주를 마시다 보면 취기가 올라오면서 맥주의 종류와 맛에 대해 공부부터 실습까지 한 자리에서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리단길에 갈 일이 생겼고, 날씨도 조금 풀렸으니 식사 후 맥주 한잔할 겸 발걸음을 우리슈퍼로 향했다. 오랜만에 재방문한 우리슈퍼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도 줄어든 맥주의 종류들이 눈에 띄었다. 아주 강한 향을 가진 IPA인 발라스트 포인트 스컬 핀이 먹고 싶어서 들어갔지만 다른 맥주집에서도 구할 수 있는 맥주가 보이지 않았다. 거의 모든 맥주가 모여 있는 우리슈퍼에 없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막상 없으니 냉장고가 더욱 썰렁해 보였다. 이런 우리슈퍼 냉장고의 모습은 마치 경리단길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경리단길을 많이 찾지 않는다. 예술의 성지 홍대가 그랬듯이 경리단길도 가로수길에게 인기를 빼앗겼고 가로수길은 다시 성수동, 을지로 등에게 인기를 빼앗겼다. 유행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는 높아진 임대료와 인건비, 그리고 경리단 길의 명성만을 카피한 수많은 X리단 길들만이 남았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자영업자들은 자신의 소중한 가게를 프랜차이즈화하거나 아예 폐업하고 말았다. 지금도 경리단길에는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거나 손님이 아예 없는 가게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경리단길 젠트리피케이션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에는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다.

물론 유행은 흐른다. 아니 흘러야만 한다. 흐르지 않는 문화는 결국 고일 뿐이다. 하지만 흘러 지나간 유행에는 무엇이 남는가? 우리는 흘러간 유행을 기억하는가? 기억해야 한다면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무엇이 유행을 타고 무엇이 유행에 뒤처질지 예견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하나의 커다란 문화의 흐름 속에 살고 있고 우리가 마주하는 사소한 모든 것들이 문화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문화의 탄생과 부흥, 쇠퇴는 멀리 있지 않다.

 

임정묵(행정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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