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하는 디지털화에 움직이는 중앙은행

소위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디지털화가 진행되며 각국 중앙은행도 디지털 화폐 발행이라는 카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The HOANS에서 한국은행과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 정책을 살펴봤다.

 

모습을 드러내는 CBDC

 

가상화폐가 주목을 받는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에서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이하 CBDC) 발행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CBDC 모의실험 연구 용역 사업자 입찰 공고를 내며 CBDC 발행의 바로 전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부터 관련 논의를 시작한 중국은 작년 4월 이미 모의실험을 마쳤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달 21일 “올여름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보고서를 발표할 것”이라며 CBDC 발행에 속도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금융 안정성 등을 고려해 화폐 제도 변화에 보수적이던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CBDC 발행 의지는 이례적이다. 이는 핀테크 등 기술 발전과 포용적 금융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증대와 같은 정치·사회적 배경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석된다. The HOANS에서 CBDC 논의가 등장한 배경과 예상되는 영향을 짚어보고 국내외 중앙은행의 정책 대응을 점검해봤다.

 

왜 CBDC인가?

 

CBDC는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와 교환 가능한 전자적 형태의 화폐를 의미한다. 민간에서 발행되는 가상화폐와 같이 디지털 환경 안에서 실체를 가지지만 법정화폐와 같은 효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 논의되는 CBDC의 형태는 ▲직접형 ▲혼합형 ▲간접형 세 가지다. 이중 중앙은행이 발행과 공급·회수에 직접 개입하는 직접형과 발행에만 개입하는 혼합형이 논의의 중심에 있다. 중앙은행이 감시 역할만 맡는 간접형의 경우 신용위험 등의 문제로 비교적 적은 관심을 받고 있다.

CBDC의 등장 배경에는 ▲비(非)현금화 추세 심화 ▲비은행권으로의 지급업무 확대 ▲포용적 금융 정책에 대한 관심 상승 등이 있다. 디지털기술과 금융을 접목한 ‘핀테크’가 발전하며 소매거래에서 현금 사용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또한 은행의 고유 업무로 여겨지던 지급업무에 증권사, 신용카드회사 등 비은행권 기관이 참여하며 은행 중심 지급제도를 유지할 유인이 작아졌다. 여기에 기존 은행 중심 체제에서 소외된 금융 약자에 대한 포용적 정책의 일환에서 CDBC에 이목이 쏠렸다. 은행 서비스 접근과 현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CBDC가 도움이 된다는 관점에서다.

코로나19의 확산 역시 중앙은행의 태도 변화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 코로나19로 대면 거래가 줄고 비대면 거래가 증가하며 세계적으로 현금 사용이 급격히 감소했다. 국제결제은행(이하 BIS)의 CBDC에 관한 3차 중앙은행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중국, 프랑스 등 주요국 소비자의 디지털 결제가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또한 설문에 응답한 중앙은행 중 약 30%가 코로나19로 CBDC 발행의 우선순위를 변화시켰다고 응답했다. 이전부터 지속되던 CBDC 발행에 대한 요구에 코로나19가 더해지며 중앙은행이 CBDC 발행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디지털화 그 이상, CBDC 발행의 의미

 

CBDC 발행은 지급결제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향상시킨다. 또한 현금 사용에 따른 도난 및 분실 위험을 줄이고 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해 범죄 행위를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2019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보고서에서 CBDC 발행을 통해 중앙은행이 새로운 정책 수단을 획득,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 CBDC 발행으로 개인정보 침해의 우려가 커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현금 거래와 달리 CBDC를 통한 거래는 모두 기록되며, 시스템에 따라 정부 기관이 기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에 정부가 반정부인사의 거래를 임의로 들여다보는 민간인 사찰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은행이 말하는 CBDC의 통화 정책적 이용이 대중의 이해를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CBDC의 통화정책적 이용은 소위 ‘마이너스 금리’의 현실화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 화폐의 경우 마이너스 금리는 선언적 효력에 그치지만 CBDC의 경우 실제로 중앙은행에서 가치를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념상으로만 존재하던 마이너스 금리를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데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기존의 금융사 및 가상화폐 시장에 CBDC는 경쟁대상으로서 위협이 될 수 있다. CBDC가 상용화되면 핀테크 기업에 위협을 받고 있는 금융사의 지급업무에 새로운 압력이 가해진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은행에 자금을 예치하기보다 CBDC로 자금을 직접 보유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상화폐의 경우 CBDC 발행이 가격 급락의 모멘텀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깔린 탈중앙화의 이념이 CBDC의 등장으로 공격받고, 자산으로써도 지급결제수단이 아닌 가치저장수단의 역할에만 한정돼 의미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한편 포용적 금융 정책으로써 CBDC의 면모도 주목받고 있다. CBDC 발행으로 은행 지점이나 ATM 등이 부재해 현금 확보가 어려운 지역에 화폐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 포용적 금융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BIS 설문조사에서 CBDC 발행의 진일보한 단계에 진입한 8개국 중 7개국이 개발도상국이라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미 전통적 금융 인프라가 확산된 선진국의 경우 CBDC 발행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크지만 개발도상국은 이행기에 필요한 비용이 적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패권 경쟁 속 조용히 추진하는 한국 CBDC

 

CBDC는 다른 한편으로 세계 통화 패권 지형에 새로운 변수가 됐다. 달러를 넘어설 기회를 엿보는 유럽연합(EU)의 유로화와 중국 위안화가 CBDC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유럽중앙은행(ECB)은 2025년까지 디지털 유로의 발행·상용화를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경우에는 이미 CBDC 모의실험을 마쳤고, 1~2년 내의 디지털 위안화 발행이 확실시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지난달 21일 디지털 화폐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을 밝혔다. 다만 지난 4월 파월 의장이 언급했듯,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의 지위가 견고하기 때문에 CBDC 시장을 여타 국가가 선점하더라도 기축 통화국의 지위가 변할지는 미지수다.

미중 간 패권 경쟁에 CBDC가 휘말린 가운데 한국은행은 차분히 관련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 2018년 ‘가상통화 및 CBDC 공동연구 TF’로 CDBC 연구를 시작한 한국은행은 연례 지급결제보고서와 통화신용정책보고서 등 주요 보고서에 관련 내용을 꾸준히 기재하며 CBDC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왔다. 올해에는 지난 2월 ‘CBDC 관련 법적 이슈 및 제·개정 방향’을 발간하고 지난달 모의실험 입찰 공고를 내며 CBDC 발행을 가시화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은행은 공식적으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통화정책 회의 간담회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CBCD 발행 결정에는 “기술 문제는 물론이고 제도적, 법적 요인도 있다”면서 “도입 시기는 확정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이 총재는 “신용 위험이나 유동성 위험이 없는 중앙은행 발행 화폐 중요성은 클 수 있다”고 언급하며 CBDC 자체에는 우호적 시각을 보였다. 2018년 가상화폐의 부상에 대한 위기감에서 출발한 한국은행의 CBDC 구상이 이제는 진지한 정책 추진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코앞으로 다가온 CBDC

 

은행 중심 현금 체제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 CBDC 발행 논의는 어느새 실험적 운용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전히 CBDC가 무엇인지조차 이해하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IMF가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약 64%의 응답자가 CBDC와 돈이 같지 않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CBDC 발행이 가져올 파급력을 고려할 때, 한국은행은 물론 각국 중앙은행은 CBDC 발행에 관한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화폐 제도의 변화로 야기될 혼란을 고려해 CBDC 발행 정책을 엄밀하게 설계할 것이 요구된다. 한국은행 역시 모의실험을 앞두고 실제 발행을 위해서는 고려할 사항이 많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소위 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화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화폐도 디지털화에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신형목·최혜지 기자
mogi2002@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