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잡으려다 언론삼간 다 태우나

여당에서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야당과 언론단체 등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등 강한 표현으로 연일 개정안을 비판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언론중재법의 내용과 그 문제를 The HOANS에서 살펴봤다.

 

지난달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는 언론 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야당의 반대 속에서 표결 처리했다.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가짜뉴스의 심각성에 비해 제재는 미약하다고 주장하며 언론 개혁을 주장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민주당이 문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현재의 개정안을 밀어붙이자 언론단체와 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개정안의 핵심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열람차단청구권 등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개정안을 “가짜·조작 뉴스에 대한 국민피해구제법”으로 규정하고 법안 처리 의지를 보였다.

 

한국 언론의 어두운 뒷면

 

언론단체와 전문가, 야당은 개정안에 대한 비판을 이어나갔지만 일반 국민 여론은 그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 7월 YTN 의뢰로 리얼미터에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언론중재법 찬성이 56.5%, 반대가 35.5%로 나타났다. 이러한 언론에 대한 대중의 차가운 시선은 한국 언론의 가짜뉴스 문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하 언론재단)의 2020년 언론수용자조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언론 수용자가 느끼는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 1위는 24.6%의 응답률을 보인 가짜뉴스였다. 다음으로는 편파적 기사와 ‘찌라시’ 문제가 각각 22.3%, 15.9%의 응답률로 뒤를 이었다. 사실상 약 60%의 응답이 허위·조작 보도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 올해 초 마스크 생산업체 지오영 대표가 영부인과 고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았다는 가짜뉴스가 언론을 통해 공공연하게 보도된 바 있다. 또한 최근에는 50대 영국 남성이 백신 접종 후 다리를 절단했다는 뉴스가 그의 병력과 현지 의료진이 백신과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언급 없이 주요 언론에 보도됐다. 가짜뉴스 문제가 여론의 실체 없는 불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언론의 자극적인 가짜뉴스 문제는 조회수에 대한 집착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언론사, 특히 인터넷 신문사에게 조회수는 생존에 직결되는 요소다. 언론재단의 2020년 신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언론 매출액의 66%가량을 차지하는 광고 수입이 2019년 인쇄, 방송 매체에서 각각 전년 대비 7%P 3.1%P 감소했지만 디지털 매체에서는 15%P 증가했다. 언론의 핵심 수입원이 디지털 매체로 옮겨간 것이다. 조회수에 대한 언론의 집착은 사실 검증보다는 속보 경쟁에 더 큰 유인을 제공한다. 또한 기자에게 부여되는 과중한 업무량도 문제로 지적된다. 언론재단의 2019 한국의 언론인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한국 기자는 일주일 평균 지면 기사는 13.1건, 온라인 기사는 평균 9.7건의 기사를 작성했다. 하루 약 두 건의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사의 작성과 사실 확인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이 감소한다는 지적이다.

 

가짜뉴스 규제 대폭 강화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핵심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이다. 개정안은 ‘언론 등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라’ 피해를 볼 경우 손해액의 5배 이내의 범위에서 언론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구체적 산정이 곤란한 손해액의 산정 기준으로 언론사의 사회적 영향력과 전년도 매출액을 적극 고려할 것을 명문화하며 대형 언론사의 손해배상액 증가를 유도했다. 특징적인 것은 대상이 되는 보도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이는 재판으로 이득을 보는 원고가 고의와 중과실의 입증 책임을 지는 현 법체계에서 이례적인 조항이다. 이에 대해 무고한 언론사에 과중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해당 조항에 추정의 전제 조건이 추가된 상태다. 또한 수정된 개정안에서는 권력의 언론 자유 침해 우려를 수용해 선출직 공직자와 대기업의 주요주주, 임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공익침해행위와 ‘김영란법’ 관련 사항에 대한 보도를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도 삽입됐다.

개정안은 언론사의 정정보도 등 허위·조작보도 이후 언론사의 사후 조치 의무도 대폭 강화했다. 우선 개정안은 정정보도청구권의 소멸시효를 기존의 2배로 확대하고 청구권의 행사 창구를 서면, 전자우편, 인터넷 홈페이지로 확장했다. 또한 정정보도 청구의 수용 여부를 청구자에게 3일 이내에 통지하지 않을 경우 수용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해 관련 절차의 명확성과 신속성을 강화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정정보도 방식의 규제 강화로, 개정안은 정정보도를 대상이 되는 보도와 같은 장소·시간·분량·크기(보도 중 일부일 경우에는 1/2 이상)로 게시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와 관련해 보도를 게시한 포탈에도 정정보도의 쉬운 확인을 위한 기술적 조치 의무를 부여해 전반적으로 접근성을 강화했다.

 

‘언론재갈법’ 오명을 쓴 언론중재법

 

민주당이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자 야당과 언론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 기자협회, 관훈클럽 등 7개 언론단체는 지난달 20일 성명을 발표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시민의 알 권리는 무시되고, 비판적 목소리는 언론을 통해 대변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당 또한 연일 대변인 성명 등을 통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비판의 핵심 주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중과실 추정 원칙 등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 언론인의 자기검열을 조장하고 정치·경제 권력에 의해 언론 자유가 중대하게 제약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비판이 가장 거세다. 형법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형벌적 성격의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도입하는 것은 이중처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정된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또한 여전히 모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정근 한국언론학회 저널리즘신뢰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의·중과실 여부는 주관적인 영역”이라며 “수천수만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를 4가지로 특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한 열람차단청구권의 경우 사실상 기사 삭제와 같은 효과로 특정 사안에 대한 공론화 자체가 조기에 차단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언론중재법의 규제 대상은 법정 언론사로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 방송인 등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언론재단이 2020년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짜뉴스 경험의 주된 채널은 종이신문이나 지상파방송보다는 개인 방송, 블로그, 온라인 동영상 등이 더욱 핵심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가짜뉴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규 언론에 대한 규제 강화보다는 비정규적 언론에 대한 법적 제도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더해 조회수에 대한 집착을 유도하는 언론 생태계 자체에 대한 개선 없이 규제 강화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거세지는 비판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지난달 20일 민주당 송영길 당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언론중재법을 “가짜, 조작 뉴스에 대한 국민피해구제법”으로 규정하고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비판을 수용해 고위공직자, 대기업 임원 등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을 박탈하는 등 개정안을 수정함으로써 문제가 해소됐다는 입장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둘러싼 우려에 대해서도 송 대표는 지난달 23일 미국과 영국 등 해외에서도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며 비판을 일축했다.

 

거세지는 논쟁, 숙고가 필요

 

개정안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지난달 31일 본회의를 앞두고 여야는 협상 끝에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에서 각각 추천한 국회의원 2명과 언론 전문가 2명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협의체에서 한 달 동안 개정안에 대해 집중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합의로 갈등은 봉합됐지만 양측의 의견차가 커 한 달 뒤 다시 갈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정국의 핵으로 떠오르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향배가 주목된다.

 

신형목·정서영·정윤희 기자
mogi2002@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