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챠’에 칼 빼든 정부, 반발하는 업계

지난해 12월 발의된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이하 게임법 개정안)를 둘러싼 업계와 이용자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개정안에서 신설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 공개 조항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영업 비밀 보호를 명분으로 개정안에 반대하는 업계와 지속된 확률 관련 논란과 게임업계의 비양심적 행태를 지적하는 이용자의 대립을 The HOANS에서 살펴봤다.

 

한국 게임 시장은 날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행한 ‘2020년 상반기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게임산업은 8조 1,17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전체 콘텐츠산업 중 두 번째로 높은 성장률(11.9%)을 보였다. ‘3N’으로 불리는 국내 게임업체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는 각각 작년 매출 2조 원을 돌파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자랑했다.

그러나 매출과는 별개로 게임 유저들은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해왔다. 최근 3N 게임사의 대표 게임들이 대부분 부분유료화 수익모델을 채택해 과도한 과금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확률적으로 게임 아이템을 획득하거나 강화할 수 있는 과금 시스템을 구축해 주요 수익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 확률 모델을 주요 콘텐츠로 한 수집형 게임, 이른바 ‘가챠 게임’이 대세다. 작년 12월 모바일 게임 최고 매출 10위 안에 든 게임 중 9개가 가챠 게임으로 분류될 정도다. 가챠 게임이 개발 기간 대비 가장 큰 매출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게임사들은 비슷한 확률형 아이템 모델을 활용한 게임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저들은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과 다를 것이 없다며 정부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자율규제의 한계와 게임법 발의

 

유저들이 꾸준히 불만을 제기하자 정치권도 이에 대응한 규제 움직임을 보였다. 2015년 3월 9일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 10인은 확률형 아이템에서 획득 가능한 아이템의 구성 비율과 종류, 나올 확률 등을 명시하도록 하는 게임산업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게임업계의 반발과 적용 범위가 애매하다는 평가로 인해 통과되지 못하다가 19대 국회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규제 움직임이 나타나자 게임업계는 2015년 7월부터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도록 하는 자정적인 감시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율규제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외국 기업의 게임일 경우 자율규제를 사실상 따르지 않는다. 한국게임산업협회(이하 한게협)의 자율규제로는 해외 게임사에 대한 별도의 제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율규제를 따르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실효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7일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유동수 의원은 “자율규제에 따르면 확률공개 미준수 게임을 공개만 할 뿐 별도의 제재는 없다”며 “게임사가 공개한 확률이 유저에 불리하게 조작된 사례가 있어도 자율규제는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3N 게임사 중 하나인 엔씨소프트는 뽑기 단계를 두 단계로 나눠 1단계의 아이템 획득 확률만을 공개하는 등 교묘하게 자율규제를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확률을 공개하고 한국 서버에서만 확률을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례가 우후죽순 화두에 오르며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유저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작년 12월 15일,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 17인이 게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행성은 잡고 절차는 줄인다

 

이번 게임법 개정안은 논란이 되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에 더해 ▲사행성 규제 강화 ▲등급분류 시스템 개선 ▲이행강제금 제도 및 국내대리인 제도 도입 등 게임을 둘러싼 다양한 제도적 변화를 담고 있다. 기존 법은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가 ‘사행성 게임물’로 규정된 게임의 등급 분류를 거부해 국내 유통을 차단했지만, 개정안에서는 게임이 환전 등 사행행위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만 하더라도 등급 분류 거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경마 ▲베팅·배당 ▲경륜 등 사행행위 모사 게임물로 대상을 한정했던 사행성게임물에 대한 정의를 삭제하고 법 전반에서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는 게임, 게임 광고, 게임 운영 방식 등에 대한 규제를 명문화해 규제 범위를 넓혔다. 특히 게임 광고 규제의 경우 사행성을 직간접적으로 조장하는 광고뿐 아니라 사행성을 조장한다고 오인할 수 있는 광고까지 금지해 사행성에 관한 규제를 매우 강화했다는 평이다.

또한 개정안은 현재 가장 논란이 되는 확률형 아이템을 ‘직간접적으로 이용자가 구매하는 게임 아이템 중 우연적 요소, 즉 확률로 구체적 종류와 효과, 성능이 정해지는 것’으로 규정하고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종류별 공급 확률 정보 등의 정보 공개를 의무화했다. 해당 조항이 별다른 수정 없이 통과될 경우 공급 확률 정보 전반에 관한 사항을 표기해야 하기 때문에 앞서 언급된 엔씨소프트의 사례와 같은 자율규제의 우회, 무력화 방법은 원천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정안에서 신설된 이행강제금 제도는 정부의 폐기·수거 명령 혹은 시정 명령을 받은 관련 게임사업자가 정해진 기한 내에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시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 제도다. 이행강제금은 회당 매출액의 0.03% 이하의 범위에서 부과할 수 있으며 이행할 때까지 연 2회씩 반복 부과가 가능하다. 국내에서 영업을 하지만 영업장이 없는 사업자의 경우 국내대리인 지정 의무가 부과됐다. 이 경우 국내대리인이 이용자 권익 보호를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대리인 측이 징역 및 벌금과 같은 양벌 규정 혹은 이행강제금 부과 대상으로 지정됐다.

게임업계에 대한 규제책도 많았지만 게임 개발 진흥을 위한 변화도 있었다. 현행 게임법에 따르면 비영리 목적의 게임일지라도 게임위의 등급 분류 대상으로 분류됐다. 수익이 적은 소규모 비영리 개발자에게 등급 분류 수수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에서 비영리 목적 게임은 등급분류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됐다. 또 등급 분류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경미한 내용 수정에 대한 신고 의무를 면제해 게임 사업자의 게임 개발 외 잦은 신고 업무로 인한 부담을 경감했다.

 

반발하는 업계와 요지부동 국회

 

비판의 대상이 된 확률형 아이템에 규제를 가한 게임법 개정안에 이용자들은 기대를 표했지만 게임업계는 산업 진흥보다 규제에 집중된 법안이라며 반대에 나섰다. 한게협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에게 의견서를 전달하며 ▲모호한 표현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 ▲사업자 의무의 급증과 타법과의 형평성 문제 ▲영업 자유 침해 ▲실효성 부족 문제를 제기했다.

한게협은 사행성 규제 강화의 경우 개정안의 일부 표현이 너무 광범위해 사업자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업자가 의도하지 않은 사행성 조장 행위에 대한 사업자의 방지 의무를 부과해 부담을 가중시키고, 등급 분류를 위한 실태조사와 관련해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며 자료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아 영업 비밀이 유출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게협은 타 분야 예술 관련법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행강제금 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게임을 차별하는 조치라고 주장하며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한게협은 특히 영업 자유 침해 문제를 제기하며 확률형 아이템이 게임사의 핵심 사업 모델이며 현재 대부분의 확률형 아이템 확률 구조는 ‘변동 확률’로 이용자별로 세부 확률이 달라 공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해당 주장은 곧 공급 확률을 게임사에서 조작해왔다는 것이냐는 이용자의 강한 의문 제기와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악화된 여론에 의해 한게협은 해당 표현이 이용자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사과하며 의견서에서 관련 부분을 삭제했다. 그러나 일련의 논란을 통해 게임사가 이번 개정안, 특히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게임업계의 반발에 대해 정부와 국회에서는 양보의 기류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상헌 의원은 입장문을 통해 “하다못해 강원랜드 슬롯머신도 당첨 확률과 환급률을 공개한다”며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간주하기로 한 영국의 사례를 드는 등 게임업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또한 확률을 모르고 상품을 사는 상황이 “굉장히 비정상적”이라며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여당과 정부 모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법안에 후퇴가 없을 것임을 선언한 셈이다.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많은 논란 끝에 등장한 이번 게임법 개정안은 게임업계의 반발과 동시에 게임 이용자의 지지를 받으며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최근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등 유명 게임에서 일어난 확률 및 운영관련 논란에 반발해 일어난 이용자의 단체 행동에 게임사의 항변은 무색해지고 있다. 과연 자율규제라는 방식이 옛 시대의 유물이 되고 게임법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신형목·김원겸 기자
mogi200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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