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법 시행 눈앞으로… 시간강사의 미래는?

강사법의 과거와 현재

대학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한 강사법과 관련한 논의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해 5월, 조선대학교 시간강사였던 고(故) 서정민 박사가 자신을 비롯한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의 열악함을 고발하는 유서를 쓰고 자살했고, 이를 기점으로 강사법에 대한 논의가 크게 일기 시작했다.

같은 해 10월, 사회통합위원회에서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를 인정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는 등 시간강사의 권리 향상이 급물살을 탔다. 제도 개선안이 적용된다면 모든 시간강사가 교원으로서 인정받아 주당 9시간 이상의 수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간강사에게 주당 5~6시간 강의를 맡겼던 대학 측이 부담을 느끼고 시간강사에 대한 대량해고를 시행하려고 하자 강사법은 유예됐다. 그 후로도 본교 시간강사 김 모 씨가 강의 중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지는 등 시간강사에 대한 처우가 도마 위에 올랐지만, 그때마다 국회에서는 같은 이유로 강사법 통과를 유예했다.

연기되던 강사법은 유예기간을 거쳐 2019년 8월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다. 새로이 시행되는 강사법은 시간강사의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시간강사에 교원 지위 부여 ▲임용기간 1년 이상 보장 ▲심사위원회를 통한 객관적인 채용 등 시간강사의 신분보장과 고용안정성을 골자로 한다. 교육부 또한 대학에 예산 지원을 약속해 강사법 시행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내년 예산에서 사립대학교에 지원 예정이던 강사 처우개선비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포함되지 않아 이전과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대거 구조조정 나선 대학들… 강사법 시행 취지는 어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초 각 대학이 시간강사 고용을 축소하려 한다는 정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국회에서 강사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지자 대학 본부 측에서 그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나선 것이다. 그간 여러 대학이 재정난을 이유로 들며 강사법 시행을 반대해왔기 때문에 뜻밖의 사태는 아니었다.

본교는 교무처의 강사법 시행 관련 대외비 문건이 유출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해당 문건에는 ▲졸업요구 학점 축소 ▲유사과목의 통합 ▲TF(Teaching Fellow) 활용 과목의 확대 ▲폐강기준의 강화 등 개설되는 과목의 숫자를 줄임으로써 시간강사의 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담겨 있었다. 다른 대학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연세대학교는 선택교양 과목 157개 중 98개를 내년부터 폐지할 계획이며 중앙대학교는 시간강사 채용을 1,200명에서 500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대학 측이 시간강사 처우 개선이라는 강사법의 취지를 완전히 거스르는 ‘꼼수’를 쓴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강사법 시행에 ‘나 몰라라’ 하는 대학

시간강사가 본교 전체 수업의 약 30%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임금으로 본교가 지출하는 금액은 총수입의 1.55%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강사법구조정저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밝혀지며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본교 시간강사의 임금 101억 원은 전체 교원 보수 약 2300억 원의 4.43%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이와 더불어 공대위는 본교 시간강사 1인의 평균연봉이 80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학교재정의 극히 일부만 시간강사 임금으로 사용하면서도 재정 악화를 이유로 강사법 시행의 어려움을 피력하는 본교는 학생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본교가 시간강사를 줄이기 위해 시행하고자 한다는 의혹에 휩싸인 ‘졸업요구 학점 축소’와 ‘유사과목의 통합’은 수업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교육권에 영향을 미친다. 수강신청의 어려움을 높이고 학문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점에서 학문의 상아탑으로 존재해야 하는 대학이 자본주의적 가치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에 공대위는 “대학의 주요 구성원인 학생의 의견 수렴 과정을 생략한 모든 종류의 학사 개편 시도에 저항할 것”이라며 본교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강사법은 구조조정을 위한 핑계일 뿐”

본교에서는 지난달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고려대학교 강사법 관련 구조조정 저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결성됐다. 22일 공대위는 총장실 및 교무처에 구조조정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항의방문을 진행했으나 박만섭 교무처장 등이 자리를 비우면서 면담은 무산됐다.

공대위는 학교 본부가 지난 몇 년간 이미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음을 강조한다. 본교는 2016년 115억 4천만 원이었던 시간강사 예산을 2017년에는 101억 6천만 원으로 축소했다. 지난달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박 교무처장은 “연 55억 원의 재정을 무슨 수로 늘리냐”고 성토했으나 불과 2년 전만 해도 시간강사 예산으로 13억 원을 더 지출하고 있었던 셈이다. 2년 전과 지금의 수입은 대동소이한 수준이다. 오히려 교수 인건비가 2년간 10억 원가량 증액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강사법 시행이 재정적 부담이라는 본부 측 주장의 신빙성은 더욱 떨어진다.

공대위 위원이자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고려대분회 분회장인 문민기 씨는 시간강사 고용은 줄이면서 대학원생 조교인 TF는 확대하려고 하는 본교의 방침을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열린 대학 구조조정 반대 기자회견에서 문 씨는 시간강사와 TF가 사실상 동일한 노동을 하지만 고용 형태만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비정규직 중에서도 파견직 식으로 불안정 노동을 강화하는 신자유주의식 구조조정을 우리는 고려대에서 목도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강사법, ‘대량해고법’이 되지 않으려면?

대학 측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바는 강사법 시행으로 늘어날 지출에 대해 정부가 지속적인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이다. 본교 박 교무처장 역시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재정 지원을 하더라도 한시적이라면 대학이 다시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발언했다. 대학 측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강사법 시행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됨에 따라 대학가 외부의 여론 역시 정부의 재정 지원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조성됐다. 3일 열린 국회 상무위원회에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강사법이 대량해고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가 필수”라는 의견을 밝혔다. 총 550억 원이 편성된 강사법 예산안은 지난달 23일 국회의 교육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으며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다.

3일 교무팀이 각 단과대 및 학과에 강사법 관련 추진사항을 철회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본교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에 공대위는 구조조정안의 폐기를 환영하는 한편 내년 8월 강사법이 시행될 때까지 본부의 구조조정 시도에 대한 감시를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했다. 더불어 여전히 시간강사 구조조정의 위협에 노출된 타 대학들과의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교육 및 연구기관으로서의 본분보다도 재정 확충을 우선시하는 본교 본부의 입장을 노골적으로 보여줬다. 구조조정안의 철회를 마냥 기뻐하기만 할 수 없는 이유다. “대학이 장사치와 다르지 않다”는 한 학생의 대자보를 가볍게 넘길 수 없어진 지금, 대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성찰이 요구된다.

 

이재은·김동후·이서희 기자
je823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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