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병원 사건, 보이지 않는 갈등의 종착역

지난 11월 1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이하 서울지부)가 기자회견을 열어 고려대학교병원(이하 고대병원) 용역업체인 태가비엠의 퇴출을 요구했다. 서울지부는 장기독점계약 당사자인 태가비엠의 부당노동행위를 통해 복수노조인 한국노총 한국철도사회산업노동조합(이하 철산노)이 결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태가비엠, 철산노 등 사건의 관계자가 해명을 시작하며 입장이 갈리는 상황이다. 진실공방의 양상으로 흐르는 고대병원 내부의 갈등에 대해 The HOANS가 알아봤다.

 

태가비엠의 장기 계약, 합법과 불법 사이

 

고려대학교 구매규정 6조 2항은 “추정금액 2,000만 원 이상인 경우 직접입찰로 계약자를 선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의계약이란 경쟁이나 입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상대편을 임의로 정하여 체결하는 계약을 의미한다. 이는 계약의 목적·성질·규모 및 지역특수성을 고려해 필요할 때만 체결할 수 있다. 수의계약 자체가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불법계약 여부를 판단하려면 추가적인 정황을 지켜봐야 한다.

 

서울지부는 “태가비엠은 본교의 구매규정을 어기고 20여 년간 고대병원과 수의계약을 맺어왔다”고 주장하며 태가비엠의 퇴출을 요구했다. 반면 태가비엠은 수의계약을 맺은 건 맞지만 불법계약은 아니며, 오히려 그동안 아무 얘기도 없다가 지금 문제제기하는 것은 서울지부가 트집을 잡으려는 것뿐이라며 되받았다. 태가비엠 이사 이종혁 씨는 “이때까지 이 계약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고 말하며 “법적 문제가 있었다면 예외 없이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이 씨는 “서울지부가 철산노에 밀리고 교섭권을 잃으면서 갑자기 계약 문제로 트집을 잡아 태가비엠을 퇴출시키려고 한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서울지부 조직부장 김민철 씨는 “2014년경부터 시작된 태가비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장기독점계약문제도 인식하게 됐다”며 문제제기가 늦었다는 비판에 대해 해명했다.

 

한편 서울지부는 태가비엠의 장기독점계약은 재단 및 본교 차원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2016년 교육부는 고려대학교 재단과 병원에 자체감사를 지시했고, 자체감사 결과 안암병원은 청소용역 계약업무에 대한 구매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주의조치 및 시정조치를 받았다.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입찰을 하지 않던 고대병원은 2017년 공개입찰을 진행한 바 있다. 다만 서울지부 조직부장 김민철 씨는 계약에 재단 및 본교 차원의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본교와 재단이 계약에 개입했다는 추정만 있을 뿐, 부정한 커넥션에 대한 정확한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대책위(이하 학대위)의 연은정(국교 11) 씨는 “이미 자체감사결과에서 스스로 수의계약이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렸는데, 이것이 어찌 문제가 아닐 수 있겠냐”고 이야기했다.

 

2017년 경쟁입찰의 결과는 다시 태가비엠이었다. 태가비엠 이사 이종혁 씨는 “2017년 이전까지는 수의계약은 맞지만 불법적이었던 것은 아니며, 병원의 판단하에 계약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선정이 됐는지는 모른다”고 하는 한편 “2017년에는 공개입찰을 통해 모든 절차를 충실히 지키고 선정이 됐다”고 말했다. 태가비엠이 어떻게 다시 뽑혔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어떻게 태가비엠과 경쟁입찰공고를 하지 않고 계약을 했는지에 대해 총무팀에 설명을 요청했지만 안암병원 총무팀장 김연수 씨는 “향후 진행될 입찰의 공정성을 위해 어떠한 입장을 내비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복수노조 설립, 사(社) 측의 개입?

 

서울지부는 2015년 복수노조인 철산노가 설립될 당시 태가비엠이 결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2010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이 개정됨에 따라 한 사업장 내에 여러 개의 노조가 공존하는 “복수노조”는 합법화됐다. 단 노동조합법의 제81조 4항이 사용자가 노조의 조직·운영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에 만일 서울지부 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태가비엠은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셈이 된다. 현재 서울지부는 해당 사안을 고발했고 고용노동청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지부 측은 “태가비엠이 임금인상 및 노동자권익 향상을 위한 투쟁을 꾸준히 전개한 서울지부를 마땅치 않게 여겨 서울지부의 교섭 능력을 약화하고자 복수노조의 설립을 직접 추진했다”고 주장한다. 2016년 철산노가 과반수노조가 되면서 2017년부터 서울지부의 교섭권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해당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꼽히는 인물이 태가비엠 소속 현장소장이다. 서울지부는 근거로 철산노 관계자 A 씨가 “현장소장이 서울지부 조합원을 불러서 가입서를 줬다”는 녹취록을 제시했다.

 

현장소장 정현석 씨는 서울지부의 주장에 반박했다. 정 씨는 “나는 서울지부와 철산노, 어느 쪽의 관계자와도 만나지 않는다”며 노조 활동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이어서 “일부 노동자들에게 직접 철산노의 가입서를 주며 가입을 종용했다는 주장은 나에게 악의를 품은 A 씨가 유포한 허위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철산노 관계자 A 씨도 “현장소장이 가입서를 줬다는 사실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해당 소문에 대해서 말해준 것이지, 현장소장이 서울지부 조합원에게 가입서를 주는 상황을 직접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철산노로 가게 된 이유에 대해 “병원 일도 하기 힘든데 투쟁까지 하는 게 힘들어서 온전히 내 의지로 갔다”며 현장소장의 철산노 가입 종용 의혹을 일축했다. 실제로 철산노 조합원 B 씨는 과거 서울지부를 탈퇴하고 철산노에 가입한 이유에 대해 “서울지부가 데모하는 게 싫어서”라며 A 씨와 똑같은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각각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고용노동청이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불공정한 인사이동과 차별대우 논란

 

서울지부 조합원에 불리한 인사이동과 차별대우가 이뤄졌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먼저 서울지부는 철산노가 교섭대표노조가 되던 2017년부터 태가비엠이 단체협약에 명시되지 않은 복지기금 45만원을 철산노에게만 ‘노조 운영비’로 지속적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철산노 기획교섭실장 장도준 씨는 “과거 다수노조였던 서울지부도 복지기금을 받았고, 철산노가 대표노조가 된 이후엔 운영에 필요한 노사상생기금을 받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태가비엠 이사 이종혁 씨도 “병원 내에 있는 수많은 노조와 개별교섭의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철산노를 중심으로 교섭창구단일화가 진행됐고, 철산노에서 노사상생기금을 요구했기 때문에 이를 준 것이다”라며 “노사상생기금을 분배하는 것은 사 측에서 개입할 문제가 아닌 노조끼리의 문제이고 현재는 노사상생기금마저도 문제의 소지가 있어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김민철 서울지부 조직부장은 “복지기금이 아니라 노사상생기금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하는 한편 “노조끼리의 문제라고 할지라도 철산노와 태가비엠이 단체협약에도 없는 돈을 주고받으면서 서울지부에 알리지 않은 것은 문제다”라고 비판했다.

 

다음으로 서울지부는 “작년 1월 1일 인사이동에서 업무 강도가 높은 구역인 ‘배선실’에 서울지부 조합원들만 배치됐다”며 사 측의 차별대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암병원 현장소장 정현석 씨는 “배선실, 수술실, 응급실, 내·외과 중환자실 현재는 모두 철산노 사람이다”라며 업무공간배치표를 보여주며 이를 뒷받침했다. 업무공간배치표는 노조 구분 없이 노동자의 이름, 근무 장소, 전화번호만 표기됐으나, 확인 결과 철산노 조합원만 해당 공간에 배치된 사실이 증명됐다.

 

다리 수술 후 복귀한 서울지부 조합원에게 현장소장이 실업급여 수급을 핑계로 사직을 강요하며 복수노조인 철산노와 차별했다는 증거도 제시됐다. 정현석 현장소장은 “서울지부 분회장 안수빈 씨가 해당 조합원을 데려와 실업급여라도 타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노동자 본인도 이를 원했기에 권고사직을 시켜줬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드러냈다. 고용보험법 제40조에 따르면 건강 악화로 인한 자발적인 사직은 실업급여 수급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고사직은 비자발적 퇴직 사유로 인정되기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에 서울지부 고대병원분회 분회장 안수빈 씨는 “몸이 많이 아파서 수술을 받을 사람을 데려가서 실업급여 받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딱 한 번 있긴 한데, 그 사람은 현장소장이 말한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다”라고 하는 한편 “다리를 수술하고 복귀한 사람은 계속 일하기를 원했으나 결국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편 서울지부 측은 작년 6-7개월 간 9명이 수습 기간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현장소장의 강요에 사직했다는 또 다른 주장을 내세웠다. 사직서 강요 사유는 단순한 업무 미비나 일방적인 범죄자 몰아가기 등 비합리적 사유이므로 이는 현장소장의 권한 남용과 탄압이라는 게 그 이유다. 이에 정현석 현장소장은 “음주 후 잦은 다툼, 허락을 받지도 않고 쓰레기 수거업체가 가져갈 물품을 가져가는 일 등 문제 행위에 업무 미비까지 겹쳐 여러 번 경고를 한 뒤 사직시켰을 뿐”이라 전했다. 실제로 쓰레기 수거업체 사장 C 씨는 “물건을 가져가도 된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 씨는 “쓰레기장에서 물건을 가져간 해당 조합원의 행동은 수거업체 사장의 동의가 없었으므로 범죄자 몰아가기가 아니라 실제로 절도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현장소장이 주장한 음주 근무, 병원 관계자와 다툼 등의 이유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안암병원 수간호사 D 씨는 “음주 이후 청소를 하러 온다든지, 다툼이 있었다는 일은 확인된 적은 없고, 확인하기도 어려운 사안”이라고 답변했다. 병동에서 근무 중인 서울지부 조합원 E 씨도 “그런 일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태가비엠은 상습임금체불업체?

 

태가비엠이 임금을 상습적으로 체불한 업체라는 주장도 잇따랐다. 서울지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매년 연차휴가 15개에 대한 수당만 임금과 함께 지급했고, 가산연차에 대해서는 수당으로 지급하지 않았다”며 “노동청의 조사 이후 뒤늦게 이를 지급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연차휴가란 5인 이상의 근로자가 일하는 사업장에서 입사한 지 1년이 지난 뒤 15일간 쓸 수 있는 유급휴가를 의미한다. 입사 2년 뒤에는 쓰지 못한 연차는 돈으로 환급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기며, 3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2년마다 연차휴가가 하나씩 늘어나는 ‘가산연차’가 적용된다. 서울지부는 “그동안 휴가를 쓸 수 없는 병원 환경으로 인해 연차휴가 15개에 대해서만 수당으로 전환해서 줬다”며 “시간이 지나고 발생하는 가산수당은 지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종혁 태가비엠 이사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씨는 “교섭 당시 근로자들의 요구로 근로 이후 2년이 지나지 않은 상황임에도 매달 연차수당을 월급과 함께 넣어줬다”며 “이는 노조도 인지한 사항이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는 있으나 현장의 요구에 맞춰 당겨서 준 것이고 추후 어느 정도 상계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계’란 채무자와 채권자가 같은 종류의 채무와 채권을 가지는 경우 서로의 채무와 채권을 같은 액수만큼 소멸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 씨는 “가산수당과 상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교섭대표노조인 철산노와 입장이 갈려 노동청에 판단해달라고 합의 하에 진정을 넣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지부가 해당 내용을 알면서도 태가비엠을 상대로 고소장을 넣었고, 태가비엠이 기소유예를 받고 돈을 지급했으므로 현재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이 씨의 입장이다. 무엇보다 앞서 이 씨는 “법적 기준 없이 2년간 30개의 연차수당을 이미 줬으므로 30번에 해당하는 연차수당을 이미 지급했으므로 이는 가산수당에 대하여 어느 정도 상계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는데, 서울지부는 이전에 지급한 수당을 회사에서 지급한 서비스로 생각하고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또한 이 씨는 “결과만 놓고 봤을 때 법 위반 소지가 있었기에 일단은 절차대로 돈을 줬다”고 덧붙였다.

 

김민철 서울지부 조직부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 씨는 “지급할 의무가 없었으면 안 했어도 됐는데, 왜 서울지부가 과도한 요구를 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사실관계만 놓고 봤을 때 태가비엠 측에서 돈을 지급하지 않았고, 노동청에서도 이전에 지급했던 임금으로 상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연은정 학대위 간사도 태가비엠 이사 측의 주장에 대해 본질을 흐리는 의견이라고 비판했다. 연 씨는 “체불이 세 차례나 된 사실이 있었음에도 결과적으로 임금을 지불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노동자는 원하지 않는 태가비엠 퇴출

 

서울지부는 지속적으로 태가비엠의 퇴출을 요구하고 있다. 태가비엠 이사 이종혁 씨는 “서울지부의 주장은 결국 입찰 과정에 개입해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겠다는 것이다”며 “노조의 교섭권을 위해서 서울지부 조합원들도 싫어하는 주장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다수의 근로자가 회사에 남으라고 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사람들의 목소리만 수용된다면 불합리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서울지부 내부의 반발 여론도 확인됐다. 11월 15일 기자회견 이후 서울지부는 평일 낮 12시부터 12시 30분까지 피케팅을 진행한다고 했으나, 참여하는 서울지부 조합원이 거의 없다. 한 서울지부 조합원은 “태가비엠이 나가면 퇴직금이나 가산수당 문제가 발생해서 사실 우리는 태가비엠이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지부 고대병원분회 분회장 안수빈 씨도 “태가비엠이 나가는 건 사실 바라지 않는다”며 “태가비엠 퇴출을 강하게 요구한 이유는 회사를 압박해서 현장소장을 나가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답변했다. 이어서 “물론 태가비엠이 현장소장을 자를 수 없다면, 노동자들의 피해도 조금 있겠지만 태가비엠이 나가야 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이사는 “노조가 요구한다고 해서 현장소장을 자르는 것이야말로 부당노동행위다”고 말하며 현장소장 퇴출의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깊어지는 갈등, 해결책은 미지수

 

현재 고대병원의 갈등은 서울지부와 태가비엠의 대립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서울지부 내부의 반발 여론 ▲다수노조인 철산노의 이익 ▲서울지부와 철산노의 노노 갈등과 같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올해 입찰 이후 태가비엠이 퇴출당하더라도 고대병원 내부의 갈등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지현·김해솔·서승현·이서희 기자

kujh103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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