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와 안암, 선순환과 갑질 사이

  최근 본교 대나무숲(이하 대숲)에서 동아리 후원금에 관한 논란이 일었다. 일부 동아리들이 상권을 돌아다니며 후원금을 요구하는 행위가 상권에 부담이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안암 상권과 학교·학생 간의 선순환을 부각하는 시각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The HOANS가 이들 간의 관계를 조명해봤다.

 

안암, 고대생의 상권
  신촌, 대학로 등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우리나라의 유명 상권은 대학가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대학가의 다양한 특성이 상권 형성에 많은 이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유동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지하철역에서부터 정문, 후문 등으로 비교적 이동 경로가 고정적이라는 점은 대학 근처의 상권을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더불어 대학 상권은 대학생이라는 최소한의 소비층을 주요 기반으로 하기에 주변 지역에 위치한 대학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본교 근처의 상권 역시 본교 및 본교생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안암 상권의 경우 그 관계가 더욱 직접적이다. 여러 대학들이 뭉쳐 있는 타 지역 상권에 비해 하나의 대학 및 소속 대학생들이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안암의 프랜차이즈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는 한 재학생은 “아무리 프랜차이즈 상점이라 하더라도 고연전이나 학교 축제 기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고대생이 주 타겟이다 보니 사장님께서도 가격 등에 있어서 고대생을 많이 고려하신다”고 전해 안암 상권과 본교생들의 관계가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드러냈다.
  안암 상권의 이 같은 특성은 다양한 방식으로 ‘선순환’의 상생문화로 이어진다. 몇몇 상점들은 KU PRIDE CLUB에 가입해 ‘고대사랑기업’이란 이름으로 본교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기부하고, 총학생회(이하 총학)와 연계한 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학생들 역시 화답한다.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는 상점 혹은 위기에 처한 상점을 돕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한 사례, 건물주에게 갑질을 당하는 상점을 보호하기 위해 연대했던 사례 등은 학생들 역시 상권에 손길을 내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권 → 학생, 마음을 모으다
  안암 상권은 본교와의 긴밀함을 인지하고 선순환을 이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본교생을 통해 수입을 얻은 만큼 그들을 위해 일부를 환원하고 싶다는 취지의 장학금이 그 예다. KU PRIDE CLUB 캠페인은 ‘고대인의 마음을 모으는 운동’이라는 취지 아래 기획됐다. ▲학부모 ▲교우 ▲본교에 애정이 있는 사람 ▲교직원이라면 누구나 본교에 매월 1만 원 이상의 소액을 정기적으로 기부하면서 ▲생활비 장학금 지원 ▲해외 교환학생 파견 ▲파이빌 창의인재 지원금 지원 등에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캠페인의 일환으로 ‘고대사랑기업’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본교 주변의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중이다.
  2018년 8월 기준 고대빵 3개 지점을 포함한 안암 상권 42개 업체가 고대사랑기업으로 등록돼 KU PRIDE CLUB에서 제공하는 명패를 달았다. 월 3만 원 이상 정기적으로 기부하거나 일시적으로 200만 원 상당의 금액을 기부하면 고대사랑기업으로써 ▲본교 홈페이지 ▲KU PRIDE CLUB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 ▲소식지 ▲SNS에 홍보 자료가 게재된다. 대학 상권 특성상 현재의 고대사랑기업 대다수가 요식업체지만 등록이 가능한 상업 분야에는 제한이 없다. 본교 학생들이 즐겨 이용하는 업체라면 공인중개사, 당구장 등도 가능하다.
  최근에는 근처 상권의 진흥을 위해 일부 점주들이 모여 조직한 고대상가번영회에서 적극적으로 고대사랑기업 가입을 권장하면서 다수의 업체가 일괄 등록했다. 고대상가번영회 소속 업주 중 본교 출신이 많아 본교에 호의적일뿐더러 손님의 대부분이 본교 학생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활동이다. 명패를 다는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과 홍보의 효과가 미비하다는 점에서 비판이 존재하지만 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한 점주는 “고대사랑기업으로 등록되기 이전에도 고려대에 소액을 종종 기부했다”며 “좋은 취지에 동의한다”고 전했다.
  제47대 총학 선거에서는 복지공약의 일환으로 상인회 장학금 신설이 제시되기도 했다. 선거 당시 안암상인회에서 지원을 약속받았던 이 공약은 구체적인 계획을 조율하는 데 실패해 당해에는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상인들로부터 소정의 장학금을 지원받겠다는 취지는 고대사랑기업이나 개인업주의 별도 기부 형태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학생 → 상권, 함께 화답하다
  긴밀한 관계 속에서 안암의 상권이 학생들과의 공존을 꾀하듯, 본교 학생들 역시 도움이 필요한 상점들에게 종종 손길을 내민다. 설성번개반점(이하 설성)의 새 출발을 응원하기 위해 한 졸업생이 기획한 크라우드펀딩은 상권과 본교생의 긴밀함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설성은 1987년 개업한 이래 31년간 정대 후문 자리를 지키며 대학생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저렴한 가격과 신속한 배달로 본교 고유의 문화 ‘중짜’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그러나 지난 6월 1일 설성 점주 김태영 씨가 고령의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영업을 계속하기가 힘들어지며 폐점이 결정됐다. 설성이 폐점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재학 당시의 설성을 기억하던 허재혁(법학 94) 변호사는 김 씨의 귀향 및 김 씨가 새로 준비하는 노인 대상 칼국수 가게 개점을 응원하는 크라우드펀딩에 나서 감동을 전했다.
  비슷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영철버거 점주 김영철 씨는 2004년부터 본교 학생들을 위해 매년 2천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2002년 노점을 시작한 이래 영철버거가 안암의 명물로 회자되자 그 인기에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운영 악화로 사정이 어려워졌고, 2015년 7월에 이르러 안암점 폐점을 결정했다. 당해 9월 정경대 학생회는 영철버거를 돕기 위한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다. 27일간 모인 6800만 원 남짓의 금액은 영철버거에 큰 지원금이 됐다. 학생들의 도움의 손길에 힘입어 영철버거는 그 해 12월 영업을 재개했다.
  이 밖에도 영철버거와 본교생의 의리를 보여주는 일화는 많다. 2010년 본교 입학식과 졸업식 때는 영철버거의 주문량 소화를 위해 졸업생들이 자원해서 일손을 보태러 오기도 했다. 김 씨는 “일반 자영업자가 실패했더라면 이렇게 관심을 두지는 않을 것”이라며 긴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선순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내비쳤다.
  설 자리를 잃을 뻔했던 상점을 지킨 것도 학생들이었다. 제 47대 총학이 참여한 안암상가임대차분쟁 연대사업은 고대생의 일상의 지평을 주변 상권 복지까지 넓혔다. 바뀐 건물주가 건물을 원룸으로 재건축하기 위해 이미 권리금을 지불한 카페 점주에게 부당하게 퇴거를 요구하자 점주는 고객인 본교생의 힘을 빌렸다. 당시 본교 제 47대 중앙운영위원회는 제 30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상인 측과 연대하기로 의결했고, 이후 참살이길부터 정대 후문을 포함한 개운사길 근처 상권에 걸쳐 ‘이익과 손해의 문제가 아닌 정의의 문제다’와 ‘건물주의 재건축 주장으로 쫓겨나는 상인들을 지지한다’라는 현수막을 설치했다. 당시 총학 정책국에 따르면 현수막 설치는 안암 상권에 연대 의지를 밝힌 표현이자 학생들이 상인의 입장에서 인근 건물주와 부동산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이 같은 연대를 통한 선순환은 종종 총학과 상권의 협력으로도 이어졌다. 역대 본교 총학이 제시한 공약 중에는 안암 근처 상권·상인과 상생을 도모하거나 그들의 협력을 구해야만 실현 가능한 공약들이 다수 있었다. ▲서울지역대학생연합 U-card ▲제40대 총학 멤버십 청춘카드 ▲제48대 총학 별빛카드 ▲제49대 총학 고려대학교 멤버십 네트워크 등과 같은 할인카드 제휴 사업은 2008년도부터 이름만 바꿔가며 비슷한 형태로 이어져온 본교 총학의 단골 공약이다. 대학생의 경제 사정을 고려하는 한편 고유 상권의 진흥을 꾀한다는 취지의 이 사업은 안암 상권의 특성이 반영된 독특한 공약이기도 하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위주로 상권이 형성된 타 대학가와 달리 안암 상권은 자영업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학생회가 개별적으로 가게와 제휴를 맺어 본교생에게 할인이나 추가 혜택을 제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물론 사업이 표면적인 공약을 넘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본 공약의 취지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지속적 홍보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아리 후원금, 상권을 향한 ‘갑질’?
  지난 7월 23일 페이스북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동아리 후원금을 놓고 그간 수면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마찰이 있었음을 주장하는 게시글이 업로드 됐다. 안암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작성자는 한 달에 스무 개도 넘는 본교의 동아리에서 찾아와 요구한다는 ‘동아리 후원금’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이 게시물에 드러난 동아리 후원금이란 본교 동아리들이 안암 상권을 돌아다니며 조달받는 동아리 운영비용의 일부를 뜻한다.
  동아리 후원금은 금액을 특정해서 요구한다기보다는 상인들이 기부 식으로 재량껏 내어주는 금액을 받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아리 차원에선 후원금에 대한 대가로 해당 가게를 홍보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우기도 한다. 소비자의 대부분이 본교 학생들인 안암 상권의 특성상 업주 입장에서 가게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에 점주들은 후원금을 대주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동아리 후원금으로 인한 재정적 부담을 느끼는 업주들도 존재하며, 다짜고짜 돈부터 요구하는 일부 학생들의 무례한 태도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실제로 안암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상인들 다수와 접촉해 본 결과 8명의 점주들과 동아리 후원금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동아리 후원금에 금전적인 부담을 느낀다며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친 점주 A씨는 “예전에는 후원금을 요구하는 학생들이 찾아올 때마다 5000원씩 줬었지만 이제는 그런 학생들이 너무 많이 와 아예 돈을 주지 않게 됐다”며 동아리 후원금 문화가 영업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하지만 동아리 후원금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점주들 역시 적지 않았다. 점주 B씨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세 번 가량 후원금을 요청하는 학생들이 찾아오는데 올 때마다 만 원 이하의 적은 돈을 주곤 한다”며 “그런 경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감사의 표시로 몇 천 원 정도를 가게에서 지출하고 가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담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긍정적 인식을 전했다. 또 다른 점주 C씨는 “개강 직후나 학기 말 등 행사가 많은 시기에 동아리 후원금 요청을 많이 받는다”며 “올 때마다 2만 원 정도를 주는데 그리 큰 금액은 아니기에 부담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서로가 기분 좋은 선에서 주고받기에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해당 문화에 의해 불편함과 부담감을 느끼는 업주들이 명백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동아리 후원금을 수금하는 관습이 비판을 완전히 피해가기는 어렵다. 더구나 동아리 측에서 후원금을 받는 조건으로 내세우는 가게 홍보가 실효성이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안암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한 학생은 “홍보라고 해봐야 동아리 팜플렛에 한 줄 적히는 것이 전부인 걸로 알고 있다”며 “그걸 보고 가게에 찾아오는 학생들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라는 의구심을 표했다. 점주들 역시 실질적인 홍보 효과를 기대하며 후원금을 대주는 것은 아니다. 최근 동아리 후원금 관습의 존재를 알게 됐다는 최 모(국제 18) 씨는 “아무리 점주들이 실질적인 홍보 효과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하더라도 동아리들이 그 점을 이용해 후원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동아리 내부적 차원에서 이 관습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관습이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점주들이 동아리 후원금 요청을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점주 D씨는 “돈을 주지 않고 학생들을 돌려보낼 때 가게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진 않을까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동아리 후원금이 ‘갑질’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동아리 후원금에 대한 논란은 동아리 내에서 후원금에 대한 재고로도 이어지고 있다. 상점들로부터 동아리 후원금을 지원받는다고 전한 익명의 동아리 부원은 “최근의 논란을 보고 동아리 후원금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분들이 계신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자체적인 규칙을 만드는 등 후원을 부탁드릴 때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로 모금활동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선순환과 갑질은 종이 한 장 차이?
  상생을 위한 선순환과 주 소비층이라는 명목으로 저지르는 갑질의 선은 모호하다. 논란이 된 동아리 후원금 문제는 단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주 소비층인 학생들에 대한 순수한 호의와 상권 활성화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던 동아리 후원금은 자칫하다 주 소비층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업주들에게 강제로 대가 없는 돈을 요구하는 행위로 변질될 수 있다.
  안암 상권과 본교의 선순환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처럼 긍정적인 순환이 계속되기 위해선 선순환의 의의와 형태에 대한 고민이 계속해서 이뤄져야 한다. 공동의 생활권 안에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방안에 대한 고찰, 그리고 현재의 긍정적 문화에 변질의 조짐은 없는지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재은·강민정·박지우·이서희 기자
je823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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