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와 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올바른 길은

지난 2년 코로나19로 공공 의료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그 미흡함이 드러났다. 오래전부터 그 필요성이 지적됐으나 아직도 실효성은 미미한 상황이다. 이에 대한민국 공공의료 체계가 ▲미흡한 원인 ▲현 상황 ▲정부 대안 등을 The HOANS에서 들여다봤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2조는 공공보건의료(이하 공공의료)를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 의료기관이 ▲지역 ▲계층 ▲분야에 무관하게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한다. 공공의료기관(이하 공공병원)은 공공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가 설립한 병원의 통칭으로 ▲국립대 병원 ▲국립암센터 ▲지방의료원 ▲지자체병원 등이 포함된다.
공공의료가 의료 인프라 부족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최근에는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논란, 코로나19로 인한 응급의료 체계 붕괴가 화두가 되는 등 공공의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도 공공의료 서비스 수준이나 지역 불균형 문제 등 해소되지 않은 여러 문제가 남은 실정이다.

 

공공의료 서비스가 부족한 대한민국

 

공공의료는 민간 의료 서비스 공급이 부족한 지역 또는 분야에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 서비스다. 도서‧산간 지역과 같이 민간 의료 시설이 부족한 지역은 특히 그 필요성이 크다. 각종 재난이나 전염병 발생 등 범국가적 상황에 대한 대응 역시 공공의료 영역이다. 공공병원은 이러한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기관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 공공의료 인프라는 부실한 상황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공공의료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공공병원이 확진자 수를 감당하지 못하자 정부가 민간병원에 병상 동원을 지시하는 등 공공병원의 기능 분담을 요청해야 했다. 또한 코로나19 대응에 집중한 나머지 감염병 대응 영역 외 공공의료 서비스가 축소되면서 치료 기회를 놓친 국내 응급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늘었다.

현재 공공의료 공급은 충분하지 못한 형편이다. 2019년 12월 말 기준 공공의료 기관은 총 221개로 전체 의료기관 약 6만 4천여 개소의 5.5% 수준이며, 공공병상 수는 61,779병상으로 전체의 9.6%에 불과하다. 전체 병상 대비 공공병상 비율이 89.7%에 달하는 주요 OECD 국가 평균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다. 또한 국내 전체 의료기관 수는 3,924개로 OECD 평균(1,253개)을 상회하지만 국내 공공병원 비율은 5.71%로 OECD 평균인 51.79%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또한 공공병원보다는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 의료가 국내 보건의료 시스템의 중심을 이루다 보니 자본 수요가 많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 ▲정형외과 등을 중심으로 인력과 자본이 쏠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비인기 부문은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일례로 수익성이 낮은 음압격리병실 등이 민간 의료기관에는 충분히 확충돼있지 않아 코로나19 대응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밖에도 수익성을 노린 과잉 진료 발생 등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종합병원까지 차로 3시간? 공공의료 확대가 절실한 현실

2020년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 약 7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보건 의료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 간 의료 불균형(44.1%)’으로 꼽혔다. 해소방안으로는 공공병원을 설립‧강화하자는 의견이 46.4%로 가장 많았다. 보통 주요 의료기관이 대도시권에 집중돼 의료 취약지 거주민은 치료받으려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 취약지란 지역 내 인구가 적고 경제 규모가 낮으며 사회 전반의 인프라가 낙후된 지역으로 잠재 의료 수요가 낮은 곳으로 정리된다. 이는 ▲의료 수요 제한 ▲자원 접근 곤란 ▲환자 이송 곤란 ▲건강 수준 미흡 등의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의료 취약지는 2021년 기준 86개 지역이며, 이들은 주로 도서‧산간에 위치해 의료 수요가 비교적 적고 수익성이 낮다. 이러한 이유로 민간 의료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워 공공의료 확충만이 해결책으로 제시돼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급성질환 치료 목적으로 종합병원급 이상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관내 이용률이 40% 이하에 달하는 곳이 70개 중진료권(15만 명 이상의 인구수를 기준으로 나눈 의료 권역) 중 22곳에 달했다. 관내 의료 이용률이란 해당 지역 거주 환자가 이용한 의료기관이 거주 지역 내에 소재했는지를 나타낸 비율이다. 적절한 서비스가 지역 내에 위치하지 않아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가 상당함을 보여준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강원도 지역은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 사망률이 약 46명으로 서울에 비해 30%가량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치료 가능 사망률이란 ‘의료 지식과 기술을 고려할 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통해 피할 수 있는 원인에 의한 사망’을 말한다. 이는 서울 및 수도권에 의료 서비스가 집중돼있는 현실을 나타낸다. 이 외에도 산모가 분만 가능한 의료기관에 도달하는 평균 시간은 서울 3.1분, 전남 42.4분으로 전남이 약 13배 높았다. 강원과 전남 모두 의료 수요가 높지 않은 지역임을 고려하면 민간 의료보다 공공의료의 지원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모든 기초자치단체에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닥터헬기를 운용 중이다. 그러나 2019년 기준 출동 건수가 연간 1,823회에 달하는 데 비해 그 대수는 7대에 불과해 부족한 의료 공급을 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특히 5곳의 의료 취약지가 존재하는 충북과 11곳의 의료 취약지가 있는 경남은 아직 닥터헬기가 갖춰지지 않았다. 또 다른 의료취약지인 제주 서귀포시도 닥터헬기 도입은 올해 초가 돼서야 결정됐다. 지역별 의료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아직 더 큰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또한 닥터헬기는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운송 수단에 불과할 뿐, 실질적으로 의료를 제공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료 취약지를 중심으로 한 공공의료 확대가 더욱 절실하다.

 

공공의료 취약 원인은

 

공공의료가 미흡한 주된 원인으로는 투자 부족이 꼽힌다. 1977년 의료보험 도입 이후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줄어 의료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명확한 공공의료 발전목표 또는 공급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민간 영역을 중심으로 보건의료 공급체계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IMF 이후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맡긴다는 이른바 작은 정부론이 떠오르며 강화됐다. 이후 보험을 통한 재정 지원은 공공에서, 의료 공급은 민간에서 하는 구조가 정착했다. 공공의료 및 공공병원 확충은 관심 밖의 영역이 됐다.

공공의료 발전 방향성은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변화를 겪었다. 각 정부 기조에 따라 공공 의료 확대 또는 축소가 이어지며 현재의 부실한 공공의료 체제를 갖게 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일명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공공의료기관 비율을 3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등 공공의료 확대를 위해 움직였다.

이어진 이명박 정부에서는 민간 의료 확대에 집중하며 공공의료를 전반적으로 축소했다. 대표적으로 공공의료 개념을 소유에서 ‘기능’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2012년 공공의료법을 개정해 민간 의료기관이라도 공공 이득을 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공공의료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같은 기조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는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시행하는 등 다시 공공의료 확대 정책이 시행됐다. 이처럼 공공의료 정책 방향성은 정부에 따라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며 난항을 겪었다. 통일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공공의료 체계는 결국 코로나19를 마주하며 취약성을 드러내 보였다.

행정 체계 역시 공공의료 취약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국내 공공의료 소관 부처는 보건복지부 외에도 ▲교육부 ▲국방부 ▲고용노동부가 있다. 관련 부처가 여러 정부 부처에 분산돼있으나 이들 간 연계 체계가 미흡하며 기초자치단체와 중앙정부 간 공공의료 전달체계 역시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다. 국가 차원에서 통일성을 갖춘 전문적인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보여주기식 정부 대책

 

정부는 지역별 의료 불균형 등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왔다. 일례로 보건복지부 장관은 5년 주기로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수립 및 시행한다. 2016년 초에 제1차 기본계획이 세워져 2020년까지 추진됐고 공공병원 확충을 포함해 ▲임산부 분만·1차 의료 취약지 절반 이상 해소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및 역할 확대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2015년 5.8%였던 국내 전체 병원 중 공공병원 비율은 2020년 5.4%로 낮아졌고, 분만·1차 의료 취약지는 목표치만큼 감소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밖에도 국립중앙의료원은 예정보다 5년 넘게 이전 계획이 미뤄지는 등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6월에는 제2차 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공공의료 확충 요구가 높은 시기 입안돼 공공병원 증설에 보다 집중했다. 2025년까지 5년간 약 4조 7천억 원을 투입해 지역 공공병원을 20개소 이상 확충하고, 응급, 심뇌혈관질환 등을 관할하는 필수의료센터를 70개 지역에 운영함으로써 5,000병상 내외를 신·증축하겠다고 밝혔다. 신속한 공공병원 확충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공공의료계 인력 충원 방안으로는 국립대 병원과 지방의료원 간 파견 근무를 확대하고 공중보건 장학생 등을 확대하겠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제2차 기본계획을 앞두고 비판도 커지는 모양새다. 지역 공공병원을 20개소 이상 확충한다는 건 현재 17개인 공공병원 외에 3개를 신축한다는 것인데, 이들은 설립이 사실상 확정됐던 곳이라 재발표에 불과한 보여주기식 계획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더불어 공공의료 인력 양성을 위해 제1차 기본계획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시사한 것과는 달리 제2차 기본계획에서는 관련 내용이 빠져 어떻게 인력을 양성할지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다. 이에 의료계 종사자 및 시민단체로 구성된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는 제2차 기본계획이 사실상 ‘공공의료 포기계획’이나 다름없다며 전면 재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공공의료와 공공병원 확대를 위해선

 

지난 2년간 코로나19를 겪으며 공공의료 필요성이 대두됐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던 의료 인프라 지역 불균형, 서비스 공급 부족 등 문제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도 없는 상황에서 감염병 대응 기관으로서 공공병원 역할이 어떻게 수행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먼저 BTL(Build-Transfer-Lease) 방식의 민간 투자사업 활성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BTL 방식이란 민간 투자자가 직접 시설을 건설한 후에 이를 정부‧지자체에 기부채납하고 반대급부로 설비 사용료를 받는 방식이다. 최근 개원한 경기도 의료원이 BTL 방식을 통해 안정적인 신‧증축에 성공한 바 있다.

전염병 대응을 위한 내실화도 급선무다. 1차 책임 기관으로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빠른 환자 치료가 필요한 시기인 급성기에 병상 총량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된다. 이는 전염병 발생 시 공공병원에 대한 과도한 업무 분담을 해결하고 병원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 수의 병상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지역 특성과 수요에 맞게 병상 공급을 조절하는 병상 총량제 도입은 의료 불균형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공공의료 확충 방안을 위한 조사 결과 치료 가능 사망률이 높은 지역부터 공공병원 증축 및 신축이 검토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 대해서는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재원 조달이 마련돼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 및 하위법령을 개정함으로써 의료인력을 효율적으로 확충하는 등 추가 방안도 덧붙였다. 코로나19로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떠오른 만큼 공공의료를 확대하기 위해서 다양하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채빈·이정윤·정서영 기자
jcbid102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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