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시대의 그늘, 층간소음 갈등의 해법은?

지난 9월 27일 전남에서 30대 남성이 층간소음을 이유로 흉기를 휘둘러 윗집 40대 부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층간소음 갈등으로 인한 범죄는 매년 끊이지 않지만 정부는 소음 문제를 해소할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The HOANS에서 층간소음에 관한 기존 제도의 허점과 보완책에 대해 살펴봤다.

 

소음으로 몸살 앓는 공통주택

 

지난 9월 발생한 층간소음 살인사건의 가해자 A 씨는 반복되는 소음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은 층간소음 갈등이 보복 소음뿐만 아니라 폭행 및 살인 등의 강력 범죄로도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최근 층간소음 분쟁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재택근무 및 원격수업의 확산 등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접수된 층간소음 관련 민원은 42,250건으로 2019년과 비교했을 때 약 1.6배 증가했다. 2021년 상반기 역시 26,934건으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층간소음의 발생 원인에는 ▲뛰거나 걷는 소리 ▲망치질 소리 ▲가구 끄는 소리 등이 있다. 최근에는 층간소음의 구조적 요인도 주목받고 있다. 핵심은 벽식 구조와 얇은 바닥 슬래브 두께다. 벽식 구조란 기둥이나 보 없이 내력벽이 천장을 받치는 구조로 공사비가 저렴해 건설사로부터 선호돼왔다. 하지만 국토부 조사에 따르면 벽식 구조는 바닥 진동이 곧바로 벽을 타고 넘어와 기둥식 구조와 비교했을 때 소음에 약 1.2배 취약하다. 바닥 슬래브 두께의 경우 두꺼울수록 소음차단에 유리한데 현재 210mm가 표준바닥으로 규정되고 있다. 하지만 2005년 이전에 건설된 아파트의 경우 당시 관련 법 규제가 없어 시공비 경감을 위해 120mm 수준으로 시공되면서 층간소음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많은 대학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학 밀집 지역의 경우 임대 수익을 위해 불법 ▲증축 ▲방 쪼개기 ▲용도 변경을 감행한 건축물이 난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파악한 불법 건축물 수는 2020년 기준 775건으로 매년 약 100여 건씩 증가하는 추세다. 조립식 패널이나 임시 벽으로 분할된 공간은 방음에 취약해 자취생들은 각종 소음에 노출되고 있다. 임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려도 해결이 어렵고 잦은 민원은 임대인과 불화로도 이어질 수 있기에 소음 유발 가구에 직접 차음 조치를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동작구에 거주하며 층간소음 피해를 경험한 홍 모(중앙대 21) 씨도 “직접 거주해보기 전까지 소음이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계약 기간 만료까지 불면증에 시달려 학업을 중단했다”는 피해 사실을 전했다.

 

정부의 부실한 대안

 

층간소음으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짐에도 정부의 해결책에 대한 문제점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20조 제2항은 층간소음 발생 시 관리 주체에게 통보한 후 조치를 기다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관리 주체가 아닌 경비원이 대다수의 분쟁 해결을 맡고 있어 법에 허점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층간소음 민원 해결은 경비업법에서 규정하는 경비 업무가 아닐뿐더러 아파트 경비원의 실질적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중간 관리자로 나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을 막기 위해 설치된 분쟁 조정기관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는 2016년 공동주택관리법 제71조를 시행하면서 국토교통부 산하에 중앙 공동주택관리 분쟁 조정위원회를, 시군구에는 지방 공동주택관리 분쟁 조정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아파트 분쟁 발생 시 소송보다 위원회를 통한 문제해결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25개 자치구 가운데 3년간 분쟁 접수 및 조정 건수가 단 한 건도 없는 자치구가 21군데에 이른다. 설사 분쟁이 접수되더라도 조정까지 통상적으로 1년 정도 소요되고 법적 구속력이 없어 효과가 미비한 상황이다.

층간소음 저감을 위한 사전인정제도도 큰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전인정제도는 한국 건설기술연구원과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신축 아파트에 대한 바닥충격음 저감량을 측정하고 등급을 부여해 아파트를 시공케 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인정기관이 시공 전에 테스트를 진행하다 보니 설계대로 시공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지 않는 등 관리 부실 문제를 지적받아왔다. 아파트가 부여받은 등급을 신뢰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2019년 감사원에 따르면 감사 기간 내 LH와 민간 회사가 시공한 아파트 총 191세대 중 사전 인정 등급을 유지하거나 상향한 세대가 겨우 4%인 7세대에 불과하다. 이 밖에도 층간소음 시험 시설이 부족해 심사까지 최대 2년을 기다려야 하는 등 각종 문제점을 안고 있다.

비현실적인 소음 기준치도 층간소음 해결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층간소음 접수 사례 중 뛰거나 걷는 소리가 약 67%를 차지한다. 하지만 정작 뛰거나 걷는 소리는 환경부의 층간소음 기준치에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에 의하면 주간에 1분간 평균 43dB을 넘거나 57dB 이상의 소음이 1시간 이내에 3회 이상 발생하면 층간소음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환경부의 층간소음 상담매뉴얼에서 아이가 뛰는 소리는 평균 40dB로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에 현실적인 피해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환경부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제자리걸음 끝내고 나아가려면

 

정부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층간소음 문제가 심화하자 개선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환경부와 국토부가 2014년 제정한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편해 소음 기준치를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중 하나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장 진단 민원 1,654건 중 층간소음으로 인정받은 비율은 7.4%에 불과해 체감과 기준에 괴리가 있다. 따라서 국가 표준 기준치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자칫 주거지 내부 활동에 지나친 제약을 가하는 과잉 규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적정한 기준과 범위를 정립하는데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공동주택의 소음 규제를 위해 강도 높은 법적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공동주택관리법 제20조 제1항은 “소음으로 다른 입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권고에 그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소음 발생 관련 조항을 연방 질서 유지법으로 규정한 독일과 같이 극단적인 소음만이라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내에 강력한 조치가 도입된다면 역효과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국내 공동주택의 특성상 소음차단 시공법이 부재했던 시기에 건설된 아파트가 많아 소음 유발자에게만 책임을 묻기 어렵다. 2019년 감사원 실태조사에서 드러났듯 바닥충격음 차단 성능측정 제도 운영의 부실로 인해 현재도 소음에 취약한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엄중 처벌이 이뤄진다면 이웃 간 갈등만 고조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법적 사후 조치에 앞서 층간소음을 유발하는 구조적 요인을 최소화하는 제도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부는 감사원의 지적을 수용해 지난 9월 사후확인제 도입을 위한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아파트 완공 시 바닥충격음의 차단 성능 측정 후 기준에 미달할 경우 보완 시공을 권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또한 내년 7월 시행을 앞두고 중소건설사가 기술력 부족을 이유로 반발하면서 정책 시행 여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실효성 있는 제도가 시급한 시점

 

전 국민의 65%가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상 층간소음 문제는 단순한 이슈를 넘어 주요한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층간소음 문제가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를 방지할 제도는 취약한 상태다. 정부는 현재 제기되는 민원과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종합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 마련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유민제·이정윤 기자
estrella00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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