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 성실 참여 외침에 귀 막는 학교

피켓시위를 신호탄으로 지난달 4일 민주노총 전국 대학노동조합 고려대 1·2 지부의 천막농성이 시작됐다. 정규직 직원으로 구성된 제1 지부와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제2 지부로 이뤄진 노조는 지난달 23일 교외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여는 등 학교 당국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교섭을 요청하고 있다. 정규직 측은 근로조건 개선을 목표로, 비정규직 측은 임금 개선을 중점으로 농성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7월 대학 알리미에 공시된 자료 기준으로 안암캠퍼스와 세종캠퍼스를 내 전체 직원 1,347명 중 비정규직 근로자는 47.7%에 달한다.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직원은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아 10년을 근속해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 현 구조를 타개하기 위해 노조는 지난해 대학 측과 13번의 교섭을 진행했지만 원활한 협상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본격적인 쟁의에 돌입한 노조는 지난 1일을 시작으로 교섭을 진행했으나 해당 교섭에서도 성과를 얻지 못해 교육부 투쟁에 진입할 예정이라 밝혔다. The HOANS에서 이번 천막농성의 발단과 학교 측과 노조의 대치 상황을 살펴봤다.

 

최소한의 형평을 요구한다

 

천막농성의 전조는 지난해 9월 가시화됐다. 전국 대학노동조합 고려대 1·2 지부를 중심으로 6개월간 임금·단체 협약을 진행했지만 큰 결실은 없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에도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자 노조는 쟁의권을 획득하고 찬반투표를 거쳐 쟁의행위에 착수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하는 이번 농성은 교섭 요구안 내용 면에서 긴밀히 협력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다수 정규직 직원으로 구성된 제1 지부는 교섭 요구안에 비정규 직원의 정규직 전환을 포함했다. 또한 예산이 적게 드는 단체 협약을 중심으로 임금 문제보다는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요구안을 내놨다. 하지만 진전은 더뎠다. ▲직원 처장 임명 ▲휴가 일수 조정 ▲차장팀장제 폐지 ▲승진 실시 횟수 조정을 촉구한 정규직 노조에 대한 본교의 답변은 없었고 총장 후보자 공청회에서 공약으로 언급된 직원 처장 임명은 실행되지 않았다. 노조 측은 “직원 처장이라는 직분이 우리 학교에만 없는 데다 단협에 약속된 부처장 11명의 자리 중에서 7명도 임명이 안됐다”며 “경희대의 경우는 행정부총장도 곧 직원이 임명될 예정이고 이미 서너 명은 처장의 직위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지에서 본교에 이와 관련해 노조 측과의 소통이 있었는지 여부를 물었으나 인터뷰 거절 의사를 밝혔다.

제2 지부의 요구안은 임금제도 개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정규직 측은 장기간 근속해도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임금 테이블이 마련되지 않은 구조를 바꾸고자 호봉제를 제시했다. 제2 지부 노조는 최저시급에 비등한 월급을 받으며 과한 업무량에 시달리고 있음을 강조하며 대학 직원 간 임금 차별을 시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들은 ▲대학 측의 성실 교섭 ▲노사갈등 조장 중지 ▲단체 협약 이행 ▲직원 차별 철폐 ▲총무처장 사퇴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천막으로 모였다. 현재 학교 측과 가장 큰 대립을 빚고 있는 사안에 관해 노조 측은 “대립을 빚고 있는 사안들을 앞으로의 교섭에서 계속해서 언급할 예정이며 주로 차별, 제도적 사안 등의 개선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지는 투쟁의 중심에 있는 노조 측 정의대책본부장 3인과 인터뷰를 진행해 현장의 구체적인 요구를 담았다.

쟁의대책본부장 3인 인터뷰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고려대학교 쟁의대책본부장 ▲제1 지부장 김재년 ▲제2 지부장 황성관 ▲산학협력단지부장 이영호이다. 각각 제1 지부장은 정규직, 제2 지부장은 무기계약직(비정규직), 산학협력단지부장은 산학협력단의 노동자를 대표하고 있다.

 

– 대략 한 달 정도 농성을 이어 간 것으로 안다. 천막농성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지난달 2일에 본교 정문과 이공계 캠퍼스 정문, 세종캠퍼스 정문에서 피케팅을 시작했고 지난달 4일부터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주된 이유는 본교와의 2020학년도 임금 교섭과 단체 교섭 결렬이며 이후 쟁의 회의를 거쳐 합법적으로 천막농성을 하게 됐다.

 

– 현재 학교 측과 가장 대립 중인 사안이나 교섭 시에 가장 요구하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별에 대한 것 중 ‘일부’를 시정 해달라는 것이다. 현재 본교에서 제2 지부에 속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적용되는 복지 및 근로조건의 30%, 산학협력단에 속한 노동자는 70%도 안 되는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 제2 지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번이 처음 진행하는 단체 협상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차별 시정 및 근로조건 개선 등 많은 사항을 요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인해 학교가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학교의 사정을 감안하여 ▲제1 지부는 예산이 덜 들어가는 제도적 개선 ▲제2 지부는 비정규직자에게 정규직 직원이 받는 2가지 수당 지급 및 급여체계 개선과 제도적 차별 시정이라는 최소한의 요구만 제시한 상황이다.

 

– 천막농성 기간 동안 학교 측 태도에 변화가 있었나.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소통을 시도한 경우가 있는지.

전혀 없었다. 지난 1일 진행된 실무교섭 또한 우리 측에서 공문을 보냈기 때문에 응한 것이지 학교가 주체적으로 진행한 것은 전혀 없었다. 천막에 찾아오거나 실질적인 협의 날짜를 정하는 등의 노력을 보이지도 않았다. 앞에서는 들을 준비가 돼 있으니 잘 해결해보자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진행하고 있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 정진택 총장의 후보자 당시 공약 중 하나가 “모두가 실감할 수 있는 교직원의 처우개선”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20대 총장 후보자 초청 공청회 때 참석했기에 정진택 총장의 공약을 똑똑히 기억한다. ▲총무처장 및 관리처장 등에 교원이 아닌 직원 임명 ▲학교 구성원 예우 ▲브릿지 제도 보완 등 총장님께서 말씀하신 공약 중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다. 특히 직원 처장이 없는 이유가 본교 정관과 총장의 의지 부족이라고 말했지만, 정관상 직원이 처장을 맡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이제 총장의 의지를 보여줄 차례다. 자신이 관철하겠다고 했던 공약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 부탁드린다.

지난 1일 2시간 20분가량 실무교섭을 진행했지만 특별히 얻어낸 건 없었다. 쟁의 중임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먼저 제시한 교섭이었지만, 학교 측은 제2 지부에 대해 조정중지 이전 제시안이 최선이라 일축했다. 이와 같은 제시를 수용할 수 없어 시작한 쟁의인 만큼 이달 둘째 주부터 본격적으로 교외 투쟁에 돌입하려 한다. 교육부, 국회 투쟁 등을 예정 중이다.

 

– 마지막으로 본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본교의 교훈이 자유·정의·진리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최소한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학교가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려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학생들은 본연의 위치에서 학업에 최선을 다해주되, 우리의 입장에 공감해주셨으면 한다. ‘왜 굳이 천막까지 치면서 농성하느냐’라고 생각하기보다 연봉을 최저 2,200만 원 수준으로 몇십 년을 살아가는 처지를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진정한 정의를 위해서

 

학교 측과 본교 대학 노조 측의 원만한 교섭이 진행돼 직원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때다. 노조 측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고려대학교가 정의를 교훈 삼고 있는 만큼 지금 최소한의 정의를 지키려 한다”며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려고 한다면 착취에 가까운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데도 관심이 필요하다”고 공감과 협조를 당부했다. 정진택 총장의 공약에도 명시된 ‘직원 처우 개선’이 적극적인 교섭을 거쳐 타결될 수 있을지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김동현·김하현·이채윤 기자
justlemon2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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