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의 정치 중립, 방향은 어디로

중립 없는 의식, 방황하는 교육

최근 교원의 정치 중립과 관련한 논란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관악구 소재의 인헌고등학교(이하 인헌고)에서는 학생들에게 특정 사상을 강요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인헌고 학생들로 구성된 학생수호연합(이하 학수연)은 지난 10월 17일 열린 학교 행사에서 일부 교사가 학생들에게 반일 구호를 외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학수연은 10월 23일 기자회견에서 학생들이 ▲담임교사로부터 제작을 지시받은 반일 포스터를 들고 ▲교사가 선창하는 반일 구호를 복창하고 ▲특정 정치세력을 두둔하는 편향성 발언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학수연은 특히 한 교사가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사퇴시켰다”고 말하며 이견을 제시한 학생에게 “가짜뉴스를 믿으면 개돼지”라고 일갈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교사는 타 학교 재직 시절 학생들에게 반미 사상을 주장하고 광우병 촛불 시위를 모티프로 한 연극을 시키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수연은 지난달 22일 서울시 교육청에 해당 사안들을 담은 감사 청원서를 제출했다. 교육청은 이번 달 1일 입장문을 통해 “인헌고에 대한 특별장학을 진행하고 있으며 수능 이후 이에 답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사가 3학년 중간고사 중 한국사 과목에 검찰 비판과 정치색이 드러나는 문항을 출제해 논란이 일었다. ▲검찰을 비판하는 SNS 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문 ▲노노재팬 등 정치적 색채가 짙고 정규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출제한 것이다. 결국 여러 차례의 진상조사 이후 학생들은 논란이 된 9문항에 대해 재시험을 치러야 했고 해당 교사는 직무에서 배제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 부산시교육청은 시험문제 사전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점에 대해 학교와 해당 교사를 대상으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교사는 “어떤 이념적 의도를 갖고 문제를 출제한 것은 아니었다”며 “이렇게 문제가 커질 줄 미처 몰랐다”는 말을 교육청에 전달했다.

교원 정치 중립의 법적 근거

교원의 정치 중립은 헌법 제31조 4항에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문장으로 명시돼 있다. 교육을 이행하는 데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행위는 곧 헌법적 가치인 셈이다. 관련 현행법은 이를 구체화하여 제시한다. 교육기본법 제6조와 제14조 4항에서는 각각 교육의 중립성을 보장하고 교원의 중립성이 결여된 정치적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더불어 교원은 공직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직자가 준수해야 하는 법률의 지배도 받는다.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은 국가공무원법 제65조의 정치적 활동 금지, 그리고 공직선거법및선거부정방지법(이하 공직선거법) 제9조에서 중립의무 엄수로 나타난다. 이처럼 교육직 종사자에 대한 정치적 중립은 법적인 절차를 통해 철저히 요구된다.
교원의 정치 중립은 헌법재판소의 판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4년 판례에서는 초·중등학교의 교육공무원의 정당가입 및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 정당법 제6조 단서 제1호 및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 제4호를 합헌이라고 판단해 위헌심판을 기각했다. 결정요지에는 위 내용이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등을 규정한 헌법 제7조 제1항·제2항,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규정한 헌법 제31조 제4항의 규정취지에 비춰” 봤을 때 이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적시했다. 아울러 “감수성과 모방성 그리고 수용성이 왕성한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 교원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고 교원의 정치활동은 교육수혜자인 학생의 입장에서는 수업권의 침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합헌의 이유를 덧붙였다.
비슷한 판례는 비교적 최근인 2014년에도 있었다. 공무원의 집단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 본문의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 행위’ 부분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판시한 내용이었다. 해당 판례 역시 결정요지에서 “공무원이 집단적으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경우”가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으로 공무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신뢰를 저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적시했다. “교육을 통해 책임감 있고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해가야 할 학생들의 교육을 받을 권리는 중대한 침해를 받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개정의 목소리도 있어

현행법이 교원의 참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라는 논지의 권고문을 인사혁신처 및 관련 부처에 전달했다. 작년 4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가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한 것을 계기로 이뤄진 결정이다. 인권위는 교원의 정당 가입 금지 등 정치적 중립성을 위한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반드시 공무원·교원의 정치 참여를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교원의 정치적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전교조는 논평을 통해 “인권위 결정을 환영한다”며 “국회와 관련 부처가 조속히 법령 개정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지난달 정부는 인권위 권고 사항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필요성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 ▲국회에서의 의견 수렴 필요 등을 들어 불수용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교육부는 8월 “사회변화에 맞춰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한다”며 정치 참여의 일률적 금지가 아닌 직무 방해 여부에 따른 일부 제한을 고려해보겠다고 밝혀 변화의 여지를 남겼다. 이에 앞서 올 3월 교육부는 “세월호의 아픔을 공감함으로써 그동안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2014년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사 200여 명에 대한 고발을 일괄 취하한 바 있다.

정치 중립에 대한 설왕설래

교원의 정치 중립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기본권과 교원으로서의 중립성 유지 의무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헌법재판소마저 2014년 교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국가공무원법 제84조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합헌 의견 5명에 위헌 의견 4명으로 의견이 갈렸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수용성이 왕성한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 교원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며 교원의 정당 가입 금지가 정당하다고 판결했으나, 박한철 재판관을 포함한 4인은 “교원의 종교단체 가입을 금지할 수 없듯 교원의 정당 가입을 전면 금지 할 수 없다”며 반대 의견을 제기했다.
학생들의 의견 역시 다양하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A 양은 “국어 선생님이 세월호에 대한 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세월호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는 경험을 털어놨다. 해당 시가 시험 전날 출제 범위에서 갑자기 제외됐다는 말을 덧붙인 A 양은 “교사라는 지위 특성상 학생들에게 편중된 시야를 가지게 할 위험이 있다”며 교사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경계를 강조했다. 내년 3월 졸업을 앞두고 있는 B 군 역시 비슷한 의견을 제시했다. 교실 내 토론이 활발하지 않아 교사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의견을 표현하기 힘들다는 고충을 토로한 B 군은 “용기를 내 목소리를 내더라도 불이익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본교에 재학 중인 C 씨는 논란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고교 재학 당시 친(親)전교조 성향의 사회 교사가 보수 성향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는 C 씨는 “정치적 중립에 집착하기보다는 교사의 의견에 자유롭게 반박할 수 있는 토론장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D 씨는 “교사가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배제하고 수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며 중립성을 위해 정치에 대한 언급을 전면 금지한다면 오히려 학생들의 균형 잡힌 시야 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D 씨는 이어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강요하지 못하도록 하되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교원의 정치 중립에 대한 논의는 옳고 그름을 넘어서 그 실효성 측면까지도 고민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계속되는 규정 완화의 목소리가 무색하게 일어나는 학교 내에서의 교원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교원의 정치 중립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강민정·권민규·장윤서 기자
khangmj0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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