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분노한 한일관계, 협력만 하면 끝인가

현재 한국 정부는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해 다양한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으나 반발만 깊어지고 있다. 그 이유로는 국민과의 원만한 합의 과정 없이 일본과의 협력만을 중시하는 정부의 태도가 지적된다. 이에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와 이로 인해 변화할 한일 관계의 전망에 대해 The HOANS에서 짚어봤다.

 

지난달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한일정상회담(이하 회담)을 개최했다. 이들은 양국의 관계가 새롭게 출발했음을 선언하고 함께 미래로 나아가기로 다짐했다. 윤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한일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외교 정책을 시행했기에 이번 회담을 유의미한 성과로 내세웠으며 일본 정부도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일본이 과거사를 전혀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음에도 한국이 지나치게 저자세를 취한다는 이유로 ‘굴종 외교’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반성도 사과도 없는 강제동원 배상안

 

지난달 6일 윤 정부는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에 대해 ‘제3자 변제안’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이는 국내 기업이 일본 전범 기업 대신 한국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재원을 출연해 피해자에게 변제하는 방식을 말한다. 윤 정부는 이를 양국 과거사를 해결하기 위한 대통령의 결단이자 정치적으로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방식에는 일본 정부의 사죄 및 배상이 빠져 있고 피해자의 입장 또한 반영돼 있지 않아 윤 정부를 향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3일 강제동원배상 피해자 3인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방문해 제3자 변제 거부 의사를 담은 내용증명을 전달했다. 내용증명에는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은 제3자가 함부로 변제해 소멸시킬 수 없는 채권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날 국회 외교통상위원회(이하 외통위)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나는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런 돈은 안 받겠다”며 분노를 표했다. 한편 국민의힘 의원들은 16~17일에 열릴 정상회담을 의식해 전원 외통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어 지난달 15일에는 양금덕 할머니 등 7인이 대표적인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추심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추심은 변제기에 도달했음에도 채무자가 변제하지 않는 경우 채권자가 채권을 청구하는 절차를 말한다. 피해자 대리인단은 “이미 지난 2021년 미쓰비시중공업의 손자회사인 국내법인 MH파워시스템즈코리아의 자산을 압류했고, 추심명령 역시 받았으며 효력이 발생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국민 대다수도 윤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엠브레인퍼블릭 등이 지난달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일본 정부 및 기업의 참여와 사과가 없는 해법이므로 반대한다’라는 응답이 60%에 달했다. ‘안보 및 경제 협력 등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불가피하므로 찬성한다’라는 응답은 33%로 반대 응답자와 2배 가까이 차이를 보였다.

 

국민보다 일본 눈치보는 정부

 

이런 상황 속에서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와 일본 정부에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더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 행사에서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는 자칫 조선의 국권 상실 및 일제 침략의 만행이 일본 침략주의의 탓이 아닌 우리의 책임이라고 해석될 여지를 남겨 논란이 됐다.

기념사에 과거사를 언급하거나 일본 정부에 대한 사과 촉구가 일절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윤 대통령은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고 발언했다. 이를 두고 과거사 청산은 덮어두고 무작정 일본과의 협력만을 강조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대통령실은 해당 발언이 역사적 아픔을 이겨내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취지임을 강조하며 역대 대통령들도 모두 같은 내용의 기념사를 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3.1절 기념사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이나 사과를 촉구하는 부분이 일절 등장하지 않은 건 2011년 이후 처음이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일본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거부 ▲식민 지배 유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역사 교과서 왜곡 ▲평화헌법 개정 시도 등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있는데도 윤 대통령이 어떠한 비판도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일본에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발언 또한 도마에 올랐다. 지난 3월 16일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 정상회담 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만약 구상권이 행사되면 이것은 다시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일”이라며 향후 한국 정부는 일본에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을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발언이다. 물론 이와 관련한 피해자와의 합의는 일절 없었다. 이에 윤 정부는 피해자의 입장 보호 및 과거사 청산보다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중시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피를 팔아 구걸해서 얻는 한일관계 정상화”라며 윤 정부의 행위는 사법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의미라며 질타했다. 야당 또한 비판에 나섰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의장은 지난달 16일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 원수인 대통령이 삼권분립까지 위반하며 일본에 납작 엎드렸다”며 이는 법치주의를 저버리는 행위이기에 탄핵 사유까지 될 수 있다고 강한 어조로 질책했다.

 

팽팽한 대립 속 정상회담, 그 결과는

 

강제동원 배상안 논란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달 16일 한일 양국 간의 회담이 이뤄졌다. 이는 2011년 이후 12년 만에 이뤄진 양자 정상 간의 만남이다. 양국은 회담에서 새로운 시작과 협력을 강조하며 각국 정상이 서로를 방문하는 ‘셔틀 외교’의 복원을 선언했다. 이를 위해 한국 측 경제인연합회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공동으로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하기로 협의했다. 또한 일본 측에서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해제하겠다고 밝히며 양국 경제 협력의 비전도 제시됐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하 지소미아)을 완전 정상화한다는 내용 또한 포함됐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양국이 군사정보를 공유하고 대응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회담 결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상당하다. 신설된 파트너십 기금에 일본 기업이 단 하나도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이 구설에 올랐다. 반도체 품목 수출 규제 해제 건의 경우 본래 일본의 처사가 부당한 무역 보복에 해당하는 행위였으나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조차 받지 못했다. 지소미아 정상화 역시 윤 정부의 일방적인 양보였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2019년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자 한국 정부는 그에 따른 조치로 일본을 WTO에 제소하고 지소미아를 종료했다. 이번 회담에서도 반도체 품목에 대해서만 규제가 해제됐을 뿐, 본질적인 화이트리스트 회복 여부에 대한 확답은 얻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제소를 취하하고 한국의 군사정보를 공개한다면 이는 굴종 외교와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강제동원 피해배상에 대해 윤 정부가 제3자 변제안을 제시했음에도 일본 측에서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한 점도 논란이 됐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회담 현장에서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체결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행과 독도 문제를 포함한 제반 현안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을 고수한 정도에 불과해 윤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 문제에 있어 한발 물러선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결과로 보인다.

 

진정한 관계 회복을 이루려면

 

현재 정부의 대일 외교 정책은 여러 측면에서 국민 정서와 충돌하며 논란을 빚고 있다.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3자 변제안을 강행하고 가해자의 사과나 반성 없는 일방적 보상으로 일을 마무리하려는 행위는 국민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정부가 주장하는 만큼 일본 측에서 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는지도 의문이다. 윤 정부는 일본에 여러 차례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현재로서는 그에 따른 일본의 대응이 미비해 보인다. 현재 대일 외교가 양국이 실익을 주고받기보다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굽히고 들어가는 ‘저자세 외교’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건강한 한일 관계를 위해 필요한 자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김은서‧조유솔 기자

cat3754@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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