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구인가 ‘강대국’ 기구인가

코로나19로 침체한 경제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또다시 정부를 비롯한 정계에서 경제 회복책을 여럿 고안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이어진 재정정책으로 국가채무가 빠르게 증가하며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국가채무와 지원확대를 둘러싼 논점을 The HOANS가 짚어봤다.

 

지난 2월 개최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두고 각국에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부당한 선수단 및 관계자 대우, 편파 판정 등을 두고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가 주최국인 중국의 눈치를 보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책임론이 들끓었다. 아울러 최근 IOC 외에도 각종 국제기구가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며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점차 강대국의 힘겨루기 속에서 국제기구가 실효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무용론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국제기구는 국가 간에 일어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개 이상 국가의 합의로 구성하는 국제협력체다. 특정 국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보다는 국가 간 화합과 평화를 바탕으로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IOC에 의해 주최되는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겠다는 기조 아래 개최된다. 세계무역기구(이하 WTO)는 자유무역 기조 유지를 목적으로 무역 협상을 조정하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정 이행을 감시한다. 이 외에도 국제연합(이하 UN), 세계보건기구(이하 WHO) 등 여러 국제기구는 각각 해당 분야에서 국제적인 협력을 위해 움직인다.

 

길 잃은 국제기구

 

최근 다양한 국제기구를 두고 꾸준히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본래 목적과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IOC는 편파 판정 등을 이유로 각종 로비 의혹을 받고 있으며 상업화, 정치화로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했다. 이번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는 개최국인 중국에 유리한 판정이 다수 발생했으나 IOC는 별다른 제지에 나서지 않아 국제사회의 질타를 받았다. 지난 2020 도쿄 올림픽도 IOC의 대처와 관련해 개막전부터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대표적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며 전범기로 사용되었던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을 금지하지 않겠다는 IOC 입장 발표가 있었다. 한국 정부는 IOC에 욱일기 사용 금지 조치를 요청했으나 모든 올림픽이 정치적 시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받았을 뿐이었다. 전 세계의 화합이 강조되는 올림픽이 강대국 입김으로 중립성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국제기구인 WTO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무역 분쟁을 판결 및 조정하는 것이다. 강제력이 없는 대부분의 국제기구와 달리 WTO는 무역 분쟁에 대한 판결권과 강제 집행권을 통해 실질적인 구속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2019년 12월 이후 WTO 상소 기구 기능은 마비됐다. 상소 기구는 총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그중 3명이 하나의 사건을 심리하기에 성원이 2명 이하가 되면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다. 2019년 재판관 임기가 종료돼 1명만이 남았지만 미국의 보이콧으로 상소 기구 위원 선임이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의사결정을 위해선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한 만큼 강대국 간 합의 없이는 위원 임명이 불가능하다. 심지어 남은 위원도 2020년 퇴직하여 현재는 상소 기구가 공석인 상태다. 미국의 이와 같은 행보는 개발도상국 자격으로 많은 혜택을 받은 중국의 국제적 위치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중에서 비롯된 힘겨루기라는 평가다. 이달 기준 WTO 상소 기구로 송부됐지만 판결을 받지 못한 분쟁 사안은 24건이나 된다.

코로나19의 빠른 확산 가운데 현 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의 발언도 논란이 됐다. 그는 중국의 우수한 대응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예방할 수 있었다며 코로나 유행 억제를 위한 여행, 교역 제한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WHO는 코로나19 발병지인 중국에 대한 이동 제한을 권고하지 않았다. 이후 국제 협력을 통해 전염병을 퇴치해야 할 WHO가 친중 성향을 드러내며 중국에 면책권을 줬다는 비판이 형성됐다.

이외에 UN도 현재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에 사실상 권력이 집중되며 민주적인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보이는 실정이다. 특히 최근 발발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안보리에 러시아 규탄안 및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안건이 상정됐으나 의장국인 러시아의 비토와 중국의 기권으로 부결됐다.

국제기구 부진의 이유

 

국제기구 부진의 이면에는 분담금 문제가 있다. 대다수 국제기구는 구성국들이 각출한 자금을 기반으로 활동하는데 이를 분담금이라고 한다. 각국의 분담금은 전 세계 국민총소득 합계에서 해당 국가가 차지하는 비율을 바탕으로 산정하며 개도국보다는 선진국이 더 높게 책정된다. 따라서 분담률 자체가 국가 영향력을 대변하는 지표로 인식되고 국가 간 암묵적 힘겨루기 결과를 대변한다. 미국은 2019~2021년 UN 정규예산의 22%를 납부해 1위를 차지했으며 최근 국제사회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중국이 12%를 납부해 2위를 차지한 바도 같은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다. 분담금을 많이 납부한 국가는 통상 해당 국제기구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요직에 자국 출신 인물을 배치하기 쉽다. 일례로 중국은 2020년 유엔 산하 전문기구 15곳 중 4곳의 수장을 배출했다.

분담금 문제를 차치해도 강대국 협조 없이는 국제기구가 원활하게 활동하기 어렵다. 주권국들의 합치된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기구를 설치한 만큼 그 의사결정 구속력은 절대적으로 국가들의 협조에 달려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정치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강대국의 유·무형적 영향력은 막강하다. 앞서 중국에 대한 편파 보도로 논란이 됐던 WHO 총장도 국적은 에티오피아지만 조국의 대중국 의존도가 높아 친 중국 성향을 보인다는 추측이다.

일각에서는 강대국이 지나친 영향력 행사를 두고 국제기구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작금의 국제기구는 강대국 참여에 따른 특권을 보장함으로써 강대국과 그 영향을 받는 국가들의 국제기구 참여를 끌어내 국제체제의 안정성과 보편성을 획득했다. 이 때문에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의 인권 탄압이나 러시아의 무력 행위에 대해서도 실질적으로 국제기구는 제재에 어려움을 보인다. 강대국 중심 정치지형이 여전한 현재로서는 주요국의 타산적인 행보에 국제기구가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국제기구는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는 평시·협력적 사업과는 다르게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직접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기구는

 

국제 협력과 국가 간 관계 향상 등 목적을 가지고 출범한 국제기구는 냉전 상황에서 전쟁 위기를 조율했다. 탈냉전 시기에 들어서는 문화유산 보호나 지구 온난화 대응 등 세계적인 협력이 필요한 의제에 대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체제와 강대국 역학관계 속에서 국제기구는 난항을 겪고 있다. 강대국 패권 경쟁의 각축장인 안보리뿐만 아니라 인류애와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을 담당하는 IOC도 올림픽 유치국이 지불하는 분담금에 다분히 민감하다.
이러한 요인은 결국 국제기구에 대한 구성국들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국제기구는 기본적으로 국가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전 세계의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만큼 국가 간 역량 차에 따른 상이한 영향력은 필연이다. 하지만 영향력 격차가 남용되어 원래 의미가 퇴색된다면 다수 국가의 목소리는 의사결정에 반영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국제기구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던 주요국 또한 국제적 소통 창구를 잃는 부정적인 결과를 얻을 위험이 있다. 국제기구가 앞으로 패권 경쟁에 이용되기보다는 인류 전체의 협력을 위해 나아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정서영·신재용 기자
kiger2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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