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대란, ‘그린플레이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대란이 발생하면서 세계 각국이 위기에 처했다. 지난 10월 21일 세계은행은 에너지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돼 이른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린플레이션은 친환경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자원의 수요는 늘고 생산이 줄어들어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또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의하면 에너지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 세계 경제에 상당한 파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The HOANS에서 에너지 대란의 원인과 각국의 대응 및 앞으로의 대안을 살펴봤다.

 

그린플레이션이란

 

전 세계적으로 사용량이 많은 석탄, 석유, 천연가스가 그린플레이션에 해당하는 주요 자원이다. 에너지 수요는 늘어나지만 친환경 정책으로 이들 자원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가격이 급등하는 문제가 나타난다.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이자 수입국인 중국이 공급망 관리에 실패하면서 석탄 가격이 치솟고 있다. 내부 석탄 수급처인 신장 지역의 비리 게이트가 터지며 기본적인 공급량이 줄었고, 중국은 지난해부터 호주와의 무역분쟁으로 중국 석탄 수입량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했다. 이를 해결하고자 중국은 인도네시아와 이란 등의 국가에서 석탄을 수입했다. 그러나 이는 예전부터 이들에게서 석탄을 수입하던 인도 등의 국가와 자원 확보 경합을 불러와 석탄 가격 급등을 야기했다. 지난 6일 중국 광저우 상품거래소에서는 석탄 가격이 톤당 1937.8위안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유가도 지난달 26일 뉴욕상업거래소의 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 통계에 따르면 84.65달러까지 상승했다가 이번달 4일에는 78.81달러로 하락하는 등 꾸준한 변동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OPEC+는 수출익 극대화를 위해 생산량을 낮춰왔던 최근까지의 결정을 뒤집고 올해 8월부터 매달 하루 40만 배럴 증산을 결정했다. 미국은 경제 회복기의 수요를 충족하려면 더 공급을 늘려야 한다며 압박에 들어갔다. OPEC+는 지난 4일 산유량 회의를 열고 기존 증산 방침을 다음 달에도 유지하겠다며 더 이상의 증산은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이렇듯 국제유가 또한 주요 행위자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면서 앞으로의 추이는 예측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생산량 결정에 따라 천연가스 또한 가격 변동을 겪고 있다. 지난달 20일 러시아가 이달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량을 동결할 것을 발표했다. 이에 전체 수요량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유럽에도 적색불이 들어왔다. 설상가상으로 대체자원인 천연가스의 가격이 오르면서 그린플레이션 직격탄에 맞았다. 해당 사태에 대해 미국 에너지안보보좌관은 러시아를 향해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다며 비판적 시각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며 치솟던 천연가스 가격은 일시적인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가격 유지를 위해 언제든 공급을 제한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천연가스 변동세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

 

시초부터 피해까지

 

그린플레이션 발생 원인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탈탄소 산업 등 친환경 정책으로의 급격한 전환이 꼽힌다. 현재 세계 각국은 기후 위기에 대비해 탄소 중립 목표를 세워 추진 중이다. 이에 대규모로 탈 탄소 산업을 육성하자 친환경 에너지 관련 원자재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원자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탄소 배출에 대한 환경 규제가 맞물리면서 수요에 비해 원자재 공급이 월등히 부족한 상황에 돌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위기 대응을 위해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줄인 반면,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그만큼 늘리지 않아 발생한 현상”이라며 그린플레이션 발발 이유를 분석했다.

친환경 에너지의 미약한 성과도 그린플레이션에 일부 기여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전체 발전량의 약 16%를 풍력에 의존하는 유럽에서는 예년보다 바람이 불지 않아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이에 유럽 국가들이 앞다투어 천연가스와 석탄 발전에 매달리면서 에너지 가격 및 전기 요금이 급격히 상승했다. 진종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기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풍력 발전 기술의 태생적 한계로 인해 발생한 근원적인 그린플레이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조량에 영향을 받는 태양광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면서 친환경 에너지를 장기간 저장하는 배터리 기술의 발전이 있지 않은 한 그린플레이션은 고질적인 문제로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린플레이션은 에너지 자체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철강 및 기본 제조업에서 자원 수요가 충족되지 못해 공장들이 할당 생산량을 채우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또 천연가스는 다양한 작물에 사용되는 질소 기반 비료 공정의 핵심 성분이기에 국제 농산물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유가 상승은 기름값 폭등을 야기하며 민생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경제·금융 전문 매체 CNBC는 지난달 12일, 에너지 대란이 코로나19로 이미 저성장을 하고 있는 글로벌 경기회복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번 에너지 급등이 높은 물가로 소비를 둔화시킬 수 있다며 이러한 현상이 경제 불황을 촉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에 글로벌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방향성이 제시되고 있다. 에너지 저감 정책 확대의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대체 에너지 투자 개발의 확대와 그린플레이션 대비를 동시에 추구하는 투트랙 전략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에너지 저감 정책으로 화석연료 투자를 줄인 반면, 대체 에너지 투자 규모를 확대하지 않은 것을 문제 원인으로 지적했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도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3배 이상 확대해야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각국에서 여러 대안을 펼치고 있으나 신속히 해결되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지난 4일 영국에서 개최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지구온난화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기후 행동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번 총회는 국제사회가 파리협정 이행을 위해 제정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치(NDC)를 국가별로 제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심화하면서 실효성 있는 협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 우리나라와 미국 등의 국가는 NDC 상향안을 제출한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 탄소 배출량이 높은 주요국들은 NDC를 제출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과 중국 등이 단계적 석탄 발전 폐지 성명에 불참하면서 2100년까지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 감소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프랑스 포함 유럽 10국이 지난달 11일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 확보를 위한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공동기고문을 작성해 유럽 전역에서 탈원전 정책의 역행이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그린플레이션이 지속될 경우를 대비한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원유, 발전용 석탄, 천연가스는 현재 공급이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 등 제3국의 에너지 대란이 현지 공장을 둔 대기업, 중소기업의 제품과 부품 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안심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이에 산업부는 지난달 14일부터 민관 합동 TF를 꾸려 국내외 에너지·자원 시장 동향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적극적인 수급 관리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요소수 품귀 현상이 국내에서 유독 심각하게 나타나 그린플레이션 영향의 직격타를 맞았다. 요소 수입량의 97.6%를 중국에 의존하던 중 중국이 공급 위축으로 인해 수출 제한 조치를 내렸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요소 물량은 현재 이달 말 분까지만 확보된 상태로 정부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7일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열어 중국 측에 수출 검사를 요청하고 러시아와 중동 등의 국가에서 요소를 수입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는

 

코로나19와 에너지 저감 정책이 맞물리면서 발생한 글로벌 에너지 대란 ‘그린플레이션’ 이 불어닥치며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산업부터 농산물 등 경제까지 대부분의 분야에서 상당한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각국이 상호 경쟁 구도 대신 정책의 강약을 적절히 조절해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혜지·이정윤·정서영 기자
chj0418@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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