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 폭우로 구멍 난 하늘, 구멍 난 대책

8월 초 서울·경기 일대 상공에 형성된 정체 전선으로 인해 서울 강남·경기 일대에 극심한 폭우 피해가 발생했다.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 따르면 지난달 8일 서울 동작구 강수량은 381.5mm였다. 역대 최다 일 강수량을 기록한 1920년 8월 2일 강수량인 354.7mm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린 것이다. 전국의 대피자 및 이재민은 지난달 12일 기준 1만여 명, 침수차는 23일 기준 1만 2천여 대에 달했다. 특히 이번 폭우로 ▲반지하 거주민 ▲노인 ▲장애인 등 사회취약계층의 피해가 극심했다. 정부는 차후 피해를 막기 위해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태다.

 

폭우 ‘피해’의 원인

 

▲건물 ▲아스팔트 ▲콘크리트 등으로 빗물이 침투하지 못하는 토지 면적을 불투수면적이라고 한다. 불투수면적이 넓어지면 빗물은 인근 하천으로 흘러가며, 폭우 등으로 하천 수용 가능 용량을 초과하게 될 경우 인근 저지대와 도로에 빗물이 범람하게 된다. 2020년 환경공간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서울의 불투수면적 비율은 52%로 전국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부산광역시(27%)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부족한 배수 처리용량도 이번 폭우 피해 확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서울시는 2010~2011년 시간당 100mm의 폭우로 다수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혼란이 야기되자 2015년 ‘강남역 일대 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해 배수 처리용량을 시간당 95mm까지 확장했다. 그러나 올해 시간당 300mm 이상의 물 폭탄이 내리면서 이는 유명무실해졌다. 지구온난화로 최근 기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축적된 과거 강수를 바탕으로 대책을 세웠기 때문이다. 박선균 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매일 경제와 인터뷰에서 “시간과 돈이 들더라도 모든 재난 방지 시설을 최소 100년 빈도의 이벤트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폭우에 대한 장기적 대책 마련에 실패로 반지하 거주민과 노인 등 사회취약계층은 피해의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로 서울시에서 이번 폭우로 인한 사망자 8명 중 절반이 반지하 거주자다. 2020년 3월 국회입법조사처의 ‘반지하 주거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반지하 거주민은 ▲장애인 가구 15.5% ▲소득 하위 가구 15.5% ▲고령자·노인 가구 18.2%로 이뤄져 있다. 폭우 시 반지하 거주민의 탈출이 더욱 어려운 이유다.

반지하 특성상 물이 빠르게 밀려든다는 점도 피해를 가중한다. 빗물이 반지하층 바닥의 20cm만 차도 물 무게는 약 1천kg에 달한다. 한국안전전문가 협회 이송규 회장은 SBS와 인터뷰에서 물이 밀려올 때 속도 때문에 같은 무게라도 충격량은 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창문으로 탈출하려고 해도 ▲지상과 연결된 창문이 탈출하기에 작거나 ▲창문이 없거나 ▲방범창이 설치돼있어 탈출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폭우 피해가 적었던 곳은

 

이번 재난에서 폭우에 취약해 보였던 것과 달리 특별히 폭우 피해가 적었던 곳도 존재한다. 인천 송도는 바다를 메워 조성한 신도시로 지대가 낮고 해수면과 인접해 있다. 이에 만조기에는 적은 양의 비에도 침수 피해가 발생하곤 한다. 그러나 호우경보와 만조가 겹쳤던 이번 폭우에서는 단 한 건의 침수 피해 신고도 접수되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지난 7월 말 일부 구간 공사가 마무리된 인천시의 사업 ‘워터프런트’가 있었다. 워터프런트는 도심을 둘러싼 수로로 빗물을 모아 바다로 흘려보낸다. 현재 담수 능력은 약 700t이며 나머지 구간 공사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1,052만t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서울시 양천구는 2011년 집중호우로 인한 우면산 산사태를 계기로 설치된 신월 빗물저류배수시설(이하 빗물 터널)으로 폭우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빗물 터널은 지하 터널에 빗물을 일시 저장했다가 한강으로 개방하는 하수 고속도로이다. 지난달 8일 양천구에 시간당 59.5mm의 폭우가 내렸을 때 신월 빗물 터널은 약 17만t을 저류했다. 서울시가 지난달 24일 개최한 수해예방 긴급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만약 빗물 터널이 없었다면 37.8ha의 면적과 600여 세대가 침수됐을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빗물 터널 건설 전인 2011년에는 시간당 67.2mm의 폭우가 내렸을 때 1,182세대가 침수됐다.

 

폭우, 정부의 대책

 

지난달 22일 행정안전부는 ▲서울 영등포구·관악구 ▲경기 성남시·광주시·양평군 ▲강원 횡성군을 비롯한 10개 지자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피해 주민은 국세 납부 면제 및 지방세 감면 등 혜택을 받는다. 또한 일반재난지역과 달리 ▲건강보험 ▲전기·통신·도시가스 요금 ▲지방난방 요금 감면 등의 혜택을 추가로 제공받는다. 더불어 정부는 침수 주택 피해가 확인되는 대로 지자체를 통해 재난지원금 및 정부 재난대책비를 지원하도록 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인천 송도와 서울시 양천구 등의 사례로 사전 예방체제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서울시에서는 방재 시설건설 추진을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우면산 산사태 이후 ▲도림천 ▲강남역 ▲사당역 등에 빗물 터널 설치가 계획됐지만 당시 추후 폭우로 발생할 피해를 작게 예상했고 시장도 교체되며 무산됐다, 지난달 10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설치가 중단됐던 6개 지역에 대해 빗물 터널 건설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사업 진행 당시 투입 비용에 대한 지적 때문에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지방채 발행 ▲국비 지원 등을 통해 예산 걱정을 덜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실질적인 주거 환경 개선을 목표로 한 일명 ‘반지하 퇴출’ 정책도 추진 중이다. 지난달 15일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대책을 전면 발표해 지상으로 이사하는 반지하 거주민에게 최대 2년간 월 20만 원의 거주비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노후한 공공임대주택 재건축을 통해 거주 장소를 확보하고 이주를 독려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더불어 새로 짓는 건물의 경우 지하·반지하는 주거 목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건축허가 원칙’을 25개 자치구에 배부해 반지하 주택 건설 자체를 불법화했다. 기존 반지하 주택은 10~20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세입자가 이사 간 후에 비주거 용도로 전환함으로써 순차적으로 반지하 수를 줄여나감으로써 20년 안에 서울에서 반지하를 완전히 근절한다는 의도다.

 

서둘러 내놓은 대책, 이어진 실효성 논란

 

서울시가 내놓은 반지하 퇴출 정책을 두고 현실에 대한 고려가 없는 선언적 대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월 20만 원의 주거 지원금이 지상층으로 이주하는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적다는 비판이다. 이에 반지하 거주민의 실질적인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여 이주를 지원하는 방법도 쉽지 않다. 지난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한 가구는 1,669가구에 불과하며 이 중 반지하 가구는 247가구이다. 2020년 기준 서울시에 위치한 주거용 지하·반지하만 약 20만 가구라는 점에서 주거 취약 계층의 실질적 이주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당장 주거 공간이 시급한 반지하 거주민의 입장에서 20년에 걸친 반지하 퇴출 계획은 다소 실효성이 낮은 정책으로 느껴질 수 있다.

여러 차례 무산된 바 있는 빗물 터널 설치가 이번에는 실현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 제기된다. 빗물 터널과 같은 사회기반시설의 확충은 막대한 재정과 긴 시간이 필요로 한다. 그러나 효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필요성을 절감하기 어려워 전체 예산에서 극히 일부를 차지하거나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일례로 침수 피해 방지를 위해 2011년 서울시는 침수 취약지구인 강남역 등에 대심도 빗물 배수 터널 건설을 계획했으나 시장이 바뀌면서 무산됐다. 올해 서울시의 수방 및 치수 예산은 4,202억 원으로 작년보다 1.76% 감소한 상황에서 이번 재난을 계기로 과거를 극복하고 건설 사업이 순항할 수 있을지 꾸준한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또다시 피해를 마주하지 않도록

 

서울시 동작구는 500년, 강남구는 150년에 한 번 올 만한 이번 폭우는 끝나지 않았다. 기후변화가 심해진 2000년대 이후 집중호우 빈도는 이전보다 약 27% 증가했으며 폭우는 더 잦고 강하게 찾아올 예정이다. 매번 폭우 피해가 발생하면 수해에 대비하는 사회기반시설을 재정비‧건설할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제대로 추진된 적은 드물다. 안전한 미래를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반지하 대책과 관련된 논의를 포함한 취약계층 지원 등의 미시적인 영역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수해 대책에 관련된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정서영·김은서·김채현·조유솔 기자
kiger2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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