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질 않는 사법농단, 의혹의 끝은 어디에?

박근혜 정권 당시 사법부의 권력 남용과 재판 거래 등의 혐의가 밝혀지면서 더 심도 있는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국가의 기틀인 삼권분립에 혼란을 불러온 사법 농단을 The HOANS가 살폈다.

사법 농단의 중심, 양승태 전 대법원장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사법 농단 의혹의 핵심에는 상고법원이 있다. 검찰이 밝혀낸 재판거래와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모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하 양 전 대법원장)의 염원이던 상고법원의 도입을 위한 것이다. 재판거래는 상고법원 관련 입법을 위해 행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하는 로비의 수단이었고,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사법부 내부와 변호사 단체 등 외부의 반대 목소리 차단을 위해 작성됐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담당하는 상고심 중에 대법원이 판단하기에 간단한 사건을 담당하는 법원을 말한다.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인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문서에서 대법관의 증원이 ‘진보 인사의 최고법원 진출’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적시돼 있는 점은 그 이면의 정치적 이유를 보여준다.

  재판거래 의혹은 청와대를 대상으로 한 것과 국회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나뉠 수 있다. 청와대가 관여했다고 의심받는 주요 사건들은 박근혜 정부의 관심사였던 ▲강제 징용 판결 ▲KTX 승무원 사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 등이다. 상고법원이 도입돼도 정부 운영과 관련한 중요 사건은 대법원이 직접 맡아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도 발견됐다. 청와대의 재판 관여를 계속해서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국회를 대상으로는 의원들이 관여돼있는 재판과 성향, 공략법 등을 담은 문서를 작성한 것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언론을 이용하려 했던 정황까지 드러나 전방위적인 로비를 준비한 것이 확인됐다.

  실무 총책임자로 지목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4개월만인 지난달 구속됐다. 검찰은 의혹 중 대부분이 법원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승인과 묵인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가 곧이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농단의 실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이번 사법 농단으로 인해 가장 논란이 된 집단 중 하나는 법원행정처이다. 법원행정처는 사법권 독립을 실현하기 위해 사법부의 인사, 회계 등의 행정 전반을 전담하는 대법원 소속의 사법행정기관이다. 법원행정처의 처장은 대법원장이 역임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를 통해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행정 전반의 최종 결정권을 갖게 됐고 법원행정처는 사법부 권력의 중심이 됐다. 처장에 이어 사실상 이인자인 차장은 대법원장이 임명하고 처장을 보좌한다.

  사법 농단의 주요 인물로 손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하 임 전 차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효력 집행정지 관련 소송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의료진 소송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 사건 관련 재판 등 논란이 됐던 여러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검찰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10월 27일 임 전 차장을 구속했다. 사법 농단의 실무 총책임자로 지적되는 것에 대해 임 전 차장은 자신은 차장으로서 불가피한 업무 지시를 한 것에 불가하다고 주장하며 수사 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검찰은 임 전 차장과 윗선과의 유착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11월 5일로 만료되는 구속 기간을 10일 더 연장했다. 임 전 차장의 구속과 재판이 기대했던 대로 윗선에 대한 수사의 전환점이 될지, 아니면 윗선의 ‘꼬리 자르기’로 끝날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법농단의 조역들

  이 두 인물 외에도 사법농단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는 법관과 관료도 많다.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이하 차 전 차장)은 강제 징용에 관해 청와대의 뜻대로 판결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2013년 12월 차 전 처장 외 2명의 고위 간부에게 한일관계의 안정성을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지연시키고, 결과를 바꾸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외교부 압수수색을 통해 청와대가 대법원에 소송에 관해 전달할 구체적인 요구를 기록해 놓은 ‘비서실장-대법원장 말씀자료’를 찾아냈다. 현재 검찰은 임 전 차장의 진술을 통해 차 전 처장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계획이다.

  대법원에서 자체적으로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는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성향을 분류한 문건을 계속 작성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블랙리스트 사건에 박병대 전 대법관(이하 박 전 대법관)이 연관돼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박 전 대법관은 판사 블랙시트 작성 의혹의 중심 인물인 임 전 차장을 보호하기 위해 도움을 제공했다. 박 전 대법관은 임 전 차장에게 법관 재임용 신청 의사를 철회해 이후 징계를 받지 않고 변호사로 개업하라는 조언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사실상 무보직이라고 평가받는 ‘사법연구’ 발령을 받고 직무에서 배제됐다.

  고영한 전 대법관(이하 고 전 대법관)은 부산 법조비리 관련 재판 개입, KTX 여자 승무원 부당해고 심사 등의 사안에서 임 전 차장과 공모한 혐의가 밝혀졌다. 법원해정처장 재직 당시 법원행정처의 심의관들이 재판 거래, 법원 기밀 자료를 빼돌린 정황 등이 포착돼 조직적 은폐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임 전 차장과 80명 이상의 판사들의 진술을 통해 고 전 대법관과 양 전 대법원장 등 ‘윗선’의 개입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나 검찰은 다른 법관들의 진술로 고 전 대법관의 혐의가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이하 김 부장판사)는 국정원 댓글 조작으로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에 개입한 의혹이 드러나 검찰의 수사 아래에 있다. 2015년 10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당시 원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장 근황을 김 부장판사가 유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 부장판사의 재판 고의 지연에 대한 논란도 커지자 검찰은 김 부장판사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대해 김 부장판사는 내부전산망에 억울함을 토로하고 결백을 주장하는 글을 올렸는데, 판사 피의자의 법원 밖 진술은 재판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비판이 일부 판사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사법부 개혁은 눈 가리고 아웅?

  김명수 대법원장(이하 김 대법원장)은 지난 9월 20일 ‘법원 제도개혁 추진에 관해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올리는 말씀’이라는 글을 배포하고 향후 사법부 개혁방안을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현 법원의 문제는 ‘독립된 재판기관으로서의 헌법적 책무에’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됐다고 밝히며 법원의 관료적인 문화와 폐쇄적인 행정 구조를 개선할 것이라 말했다. 이러한 개혁의 출발점으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겠다는 견해를 내놨다. 개혁안에는 사법행정회의에 사법행정 권한을 부여하고 법원 행정처는 오로지 집행업무만 담당하는 법원사무처와 대법원 사무국으로 분치 및 재편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러한 개혁안에 대해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인 법원행정처를 완전히 해체하고 향후 계획까지 제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이 잇따랐다. 하지만 대법원과 법원사무처의 장소적 분리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은 논의가 되지 않았음이 드러나면서 보여주기식 개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사법행정회의의 구성과 같은 실질적인 사항들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외부 인사를 6명에서 3명으로 줄이거나 아예 외부인사 없이 법관으로만 구성하는 안에만 그치고 있다. 그 이외에도 대법관 출신 다양화, 대법원장의 대법관 인사제청권 폐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 실정이다. 이에 사법 개혁 과정이 순조롭지 않으며 대법원의 개혁 의지 자체가 의심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사법부 개혁이 보여주기식이 아닌 실질적인 개혁을 목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김지용·강민정·고성열·김원섭·김효재·이지영 기자
jiyong0504@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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