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줄다리기, 한미 방위비 협정

방위비를 둘러싼 한미 양국의 알력 다툼이 일 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지부진한 논의에 국민들은 지쳐가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요원해 보인다. 복잡다단한 한미 방위비 협정을 The HOANS가 정리해봤다.

 

주한미군 주둔에 드는 비용 중 한국이 부담하는 금액을 지칭하는 방위비 분담금은 1991년 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이 체결된 이후 꾸준히 논란의 대상이 됐다. 2~5년마다 협정을 새로 체결하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는 양국은 자국의 분담금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다툼을 이어왔다. 2019년 체결된 10차 협정은 이미 만료된 상황이지만 미국이 방위비 대폭 증액 요구를 거두지 않고 있는 탓에 11차 협정은 일 년째 정처 없이 표류 중이다.

 

방위비 논란, 언제부터 시작됐나

주한미군의 역사는 60년이 넘지만, 한국이 방위비 일부분을 부담하기 시작한 것은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 6·25 전쟁 이후 북한의 재남침 방지와 공산주의 확산 저지를 위해 미국 정부는 일부 병력을 한국에 주둔시킬 것을 결정했다. 1966년 양국 정부가 맺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은 주한미군과 관련된 세부사항을 결정하는 데 그 목적을 뒀다. SOFA 제5조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미국 측이 전액 부담하며, 한국은 부지와 시설에 대한 통행권을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한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미국 내 경기가 어려워지자 상황은 급변했다.

1980년대 들어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가 심화하며 군비 감축에 들어가자 주둔국의 적극적인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주장이 세를 키웠다. 한국은 1974년부터 탄약 저장비용 등 일부 비용을 부담하고 있었지만 거세지는 미국 내 여론에 양국은 1991년 SOFA 제5조에 대한 실질적 예외인 한미 SMA를 체결했다.

1차 협정 체결을 완료한 한미 정부는 수년마다 협상에 나서며 협정의 세부 사항을 다듬어 갔다. 1996년 3차 협정에서는 한국 정부의 부담금 총액이 협정에 명시되기 시작했으며 2002년 5차 협정에서는 방위비를 ▲인건비 ▲군사 건설비 ▲군수 지원비로 나누는 골자가 확정됐다. 미군의 봉급은 미국이 지급하며 한국이 분담하는 방위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후 한국 측 분담금은 2006년 1회 동결을 제외하고는 지속해서 증가해왔으며 작년 분담금은 전년도 대비 8.2% 늘어난 1조 380억 원에 달했다. 미 국방부가 추산한 2019년 한국 방위비 중 미군 인건비를 제외한 금액은 1조 5300억 원이다.

 

10차 협정: 1년짜리 반창고

10차 협정을 위한 논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1년 후인 2018년 3월에 시작됐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유지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부자나라 군대에 보조금을 지급해 불이익을 보지 않겠다”고 밝히며 주둔국에 분담금 대폭 증액을 요구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미국 대통령이 주둔국 분담금에 대해 이처럼 노골적으로 인상 의사를 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10차 협정이 타결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는 미국이 ‘전략자산 전개비용’을 포함한 ‘작전 지원’ 항목을 신설할 것을 요구하며 적중했다. 수년간 유지됐던 3개 항목의 틀을 깨고, 항공모함이나 스텔스 전투기 등 첨단 전투기기의 운용 및 유지 비용까지 한국 정부가 나눠 부담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한미연합훈련이나 안보 비상 상황 등 특수한 경우에 한해 전략자산을 한반도에서 운용한 바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항목 신설 요청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외교부는 방위비 논의는 주한미군 주둔비에 한정해 진행돼야 한다며 주둔비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전략자산 항목 신설은 불가하다고 못 박았다. 남북 관계가 지속적으로 개선돼 전략자산을 전개할 상황이 크게 줄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당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한 것도 중요한 근거로 작용했다. 하지만 티모시 베츠 국무부 방위비분담금협상대표는 남북 관계에는 언제나 긴장이 존재한다며 분담금 증액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양국의 갈등은 해가 바뀌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 한미 양국은 ▲1조 380억 원에 분담금 총액을 합의했고 ▲10차 협정의 유효기간을 1년으로 결정했으며 ▲항목 신설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했다. 전문가들은 급한 불은 껐지만 불안 요소를 남겨둔 협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이 처음 제시했던 10억 달러(약 1조 1300억 원)보다 적은 금액에 합의했지만 1년이라는 짧은 유효기간 탓에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 다시금 방위비 협상에 나서게 된 탓이다. 절반뿐인 승리를 남긴 10차 협정은 올해 4월 5일로 만료됐다.

 

11차 협정: 좁혀지지 않는 간극

10차 협정 만료일이 다가오자 한미 양국은 작년 9월 11차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 나섰다. 미국이 1차 회의에서 전년도 방위비의 5배를 넘는 50억 달러(약 6조 원)를 요구한 것이 알려지자 큰 논란이 일었다. 이후 5차 회의에는 미국 측에서 39억 달러를 제시했다는 외신의 보도가 나왔다. 1조 원 가까이 줄어든 금액에 정은보 방위비분담금협상 대사는 “계속해서 간극을 줄여나가고 있다”며 확답을 피했다.

그러나 열 차례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양국은 새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고 한국인 노동자 4천여 명은 4월 1일을 기점으로 강제 무급 휴직을 통보받았다. 합의가 결렬된 주요 쟁점으로는 먼저 항목 신설 여부가 있다. 미국은 11차 협정을 통해 ‘준비태세’ 항목 신설을 요구했다. 10차 협정에 반영되지 않은 항목 신설을 다시금 요구한 것이다. 해당 항목은 주한미군의 순환 배치와 역외 훈련 비용 등을 수반한다. 준비태세 항목이 신설될 경우 한국 방위를 위한다는 명목의 활동이라면 한반도 밖에서 시행되더라도 한국 정부가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논의 범위가 주한미군 주둔비에 제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의 요구가 SMA의 기본 취지를 벗어난다는 주장으로 일갈했다.

동맹 기여도 측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6차 회의가 끝난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세계적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한미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는 공동 기고문을 실었다. 이와 관련해 정 대사는 한국이 세계 최고 규모인 평택 험프리스 미군 기지를 미국에 무상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산 무기를 대량 구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동맹 기여도가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는 어찌하고 있나

방위비 협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 중 가장 많은 분담금을 지불하고 있는 일본도 트럼프 대통령의 증액 요구가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교도 통신은 작년 7월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일본을 방문해 일본의 방위비 분담금을 최대 5배로 증액할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해 11월 “일본은 유복한 나라”라며 증액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현재 효력을 발휘 중인 미일 방위비 분담금 협정은 2021년 3월에 종결된다.

독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독 미군은 유럽 각종 지역에 순환배치 되며 유럽 전역의 방위를 위해 배치된다. 독일은 지난 7년간 주독미군 지원금에 더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6천 400억 원을 추가 지급했다. NATO에 지급한 금액의 대부분은 미군과 관련된 사업에 사용된다. 2018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은 주독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하며 NATO 국가가 방위비를 더 분담해야 함을 천명했다. 미국의 강경한 태도에 NATO는 결국 미국 분담금 비율을 22%에서 16%로 줄이고 부족분은 나머지 국가가 충당하는 것에 합의했다.

 

버저비터는 울릴 것인가

고지를 넘은 것으로 보이던 11차 협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에 부딪히며 그 결과를 속단하기 어려워졌다. 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방위비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히며 분담금 증액을 다시금 요구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방위비 협상에서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강제 무급휴직에 들어간 한국인 노동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요구된다.

 

장윤서·권민규 기자
yunseo05@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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