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르노카르바흐, 멈추지 않는 전쟁

오늘날 국가 간 영토 분쟁이 실질적인 군사 대치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최근 동유럽 캅카스 지역에서 영토 갈등이 대규모 교전으로 확산돼 주변국들도 저마다 대응에 나서고 있다. The HOANS에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의 배경과 현황에 대해 알아봤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국경에 위치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국제법상 아제르바이잔 영토지만 아르메니아가 1992년부터 28년간 실효 지배 중인 지역이다. 그런데 지난 9월 27일 나고르노카라바흐 마르투니 지방에서 아르메니아인 민간인이 군사 공격에 희생된 사건을 계기로 양국 간 군사 충돌이 시작됐다. 교전이 군사 거점을 넘어 접경지 민가로 번져감에 따라 군인과 더불어 민간인 희생자 수도 지속해서 늘어나는 상황이다. 지난달 10일과 18일, 26일에는 양국이 휴전에 합의했으나 불과 수 시간 만에 교전이 재개되는 상황이 반복돼 현재에 이르렀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갈등의 역사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의 영토 분쟁은 역사적으로 깊은 감정의 골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양국 간 민족 감정은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오스만 제국에서 정치적 안정을 목적으로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을 탄압한 데서 비롯했다. 소비에트 연방 편입 시기에는 양국이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제하에 병존했으나, 스탈린의 행정 정책에 따라 아르메니아계 주민이 대다수였던 나고르노카라바흐가 아제르바이잔에 편입돼 또다른 분쟁의 씨앗이 심어졌다. 소수의 튀르크 이슬람교도가 다수의 아르메니아 기독교도를 통치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정치 시스템으로 종교적 갈등까지 심화했다.

소련의 지방 장악력이 약화되자 나고르노카라바흐 대표는 아르메니아로의 귀속에 동의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현 아르차흐 공화국) 독립을 결의‧선언했다. 이에 아제르바이잔 당국이 대규모 강경 진압 및 경제 봉쇄로 대응하며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의 우방 아르메니아도 다시 아제르바이잔과 갈등을 겪게 됐다. 1992년 소련 해체 후 러시아군이 아제르바이잔에서 철수하자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을 침범해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 1994년 들어 러시아와 프랑스의 중재로 정전이 이뤄진 후에도 양국 간 간헐적 충돌이 이어졌다. 미국, 러시아, 프랑스로 구성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민스크 그룹에서 중재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양국의 극명한 입장 차는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아제르바이잔 측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아르메니아군이 철수하고 아제르바이잔 국내 난민이 고향에 복귀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반면 아르메니아 측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에 아르메니아령 자치공화국 지위를 부여하고, 해당 지역과 자국 간 연결 통로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다시 불붙은 캅카스의 화약고

 

계속 이어진 양국 간 국경 분쟁은 지난 9월 27일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서 무력 충돌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이후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어느 측의 선제공격인지는 확인되지 않는 상태에서 양국은 서로의 책임을 주장하며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아르차흐 공화국은 아르메니아와 연합을 구축하고 교전 발발 바로 다음 날부터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동원령을 선포하는 등 본격적인 전시 체제에 돌입했다. 아제르바이잔 역시 강한 전의를 보여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긴장감이 조성됐다.

거듭되는 합의 결렬로 전쟁 장기화 우려는 현실이 돼가고 있다. 지난달 10일에는 러시아의 중재를 통해 ▲러시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3국의 외무장관이 회담을 가졌다. 양 교전국은 격론 끝에 휴전에 합의하며 인도적인 포로 교환과 전사자 시신 교환 등을 먼저 처리할 방침임을 밝혔다. 하지만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양국은 포격을 주고받으며 교전을 재개했다. 당초 13일로 예정됐던 양국 정상회담은 결렬됐고, 이튿날인 14일에는 양국 정상이 회담 결렬에 대해 담화를 발표하며 뚜렷한 입장 차를 가시화했다. 니콜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아제르바이잔이 아르차흐 공화국의 7개 구역(전체의 약 70%)을 양도하라는 요구를 해왔다”며 항복 요구에 가까운 종전 조건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도 이어지는 전투에서 상당한 성과를 얻었다고 자평하며 교전을 지속할 의사를 보였다.

파기된 휴전안은 지난달 18일 러시아의 중재로 다시금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러시아의 강한 압박 속에서 두 번째 휴전 합의가 발효됐으나 역시 수 시간이 채 안 돼 교전이 재개됐다. 전쟁 장기화 국면에서 아르메니아의 입장은 점점 더 불리해지는 모양새다. 아제르바이잔이 강력한 동맹인 터키의 지원 아래 전쟁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반면 아르메니아는 주변국으로부터 지원을 차단당해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24일경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 공화국을 연결하는 요충지인 구바들르-라츤 지역을 아제르바이잔에서 점령했다. 지난달 25일부터는 미국이 직접 강화 협상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미 국무부는 “26일을 기해 양국 외교부 장관이 10일 합의한 인도주의적 휴전의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이번에도 하루를 못 버티고 휴전이 무위로 돌아갔다.

 

전쟁을 둘러싼 주변국의 양상

 

캅카스 양국의 전쟁을 둘러싸고 국제 사회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가장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는 국가로는 터키가 꼽힌다. 지난달 4일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터키의 군사 지원에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하며 터키가 제3국이 아닌 당사국으로서 분쟁에 개입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터키는 이번 전쟁에서 민족적 갈등으로 촉발된 분쟁을 확실히 종결짓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터키가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는 가장 큰 명분은 같은 튀르크계 우방국이라는 점이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지난달 6일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를 방문해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며 “평화적인 해결 노력을 지지하나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터키는 교전에 자국 공군기를 투입하고 아르메니아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등 적극적인 군사 지원에 나서고 있다.

터키-아제르바이잔 연합에 위기감을 느낀 아르메니아는 외교를 통한 활로를 물색 중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우방국 터키의 협조가 절실한 미국은 터키와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아르메니아를 쉽게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아르메니아 안보 보장을 약속한 집단 안보 조약기구(CSTO) 수장국이며 아제르바이잔과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한쪽 편을 들기보다 중재자로서 분쟁에 참여하고 있다. 수차례 휴전 회담을 주최한 데서 전쟁을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자는 러시아의 의중이 드러난다. 러시아의 태도는 최근 군사적으로 갈등을 겪은 터키가 분쟁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연합은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현재까지 협력관계를 구축해 왔던 아르메니아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특히 프랑스에서 불어 사용국 모임인 프랑코포니 회원국 아르메니아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에 이슬람 종교 갈등 및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비하 발언 등으로 경색된 프랑스-터키 관계는 더욱 악화일로에 접어든 상황이다. 그러나 범세계적 확전의 여지가 있는 만큼 프랑스는 직접 전쟁에 개입하는 것은 꺼리는 분위기다.

 

캅카스 교전의 결말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교전은 ▲민족 갈등 ▲종교 갈등 ▲행정구역 강제 개편 등에서 기인한 영토 분쟁이다. 거듭되는 휴전 협상 실패에서 양국 간 깊은 감정의 골을 확인할 수 있다. 주변국들 역시 양국 간 전면전은 기피하는 가운데 저마다 외교 실리에 입각한 견해차를 보여주고 있어 양측이 모두 만족하고 수용할 효과적인 중재의 성사도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다. 캅카스 교전이 휴전‧정전을 넘어 진정한 결말과 평화를 맞이하게 될 수 있을는지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다.

 

 

민재승·최승원 기자

jaysong46@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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