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작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낙태죄의 존폐를 둘러싼 길고 긴 논란의 역사가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새로운 법률을 마련하기 위해 주어진 1년의 유예기간이 끝나가며 낙태죄는 다시금 열띤 토론의 대상이 됐다.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이 충분히 개혁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받으면서다. 법률에 대한 토론을 넘어 사회적 윤리에 관한 논쟁을 불러온 낙태죄 폐지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

 

조선형사령부터 모자보건법까지

 

낙태죄 처벌이 처음 시작된 시기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형법을 그대로 적용한 조선형사령은 타태죄라는 이름으로 낙태죄를 명시했다. 행위 주체를 자세히 구분해 낙태한 여성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도록 했으며 낙태를 시술한 의사나 산파, 약사 등에게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 부과됐다. 광복 이후에는 법전편찬위원회가 설립돼 낙태죄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 일부 국회의원은 “진료상 필요할 시 낙태를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1953년 편찬된 법은 여전히 낙태죄를 포함했고 별도의 예외적 허용 조건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제정 당시 형법은 낙태를 한 여성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했으며 의사 등 조력자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되도록 했다.

낙태죄에 예외적 허용 조건이 처음 제시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73년이었다. 특별법의 형태로 모자보건법이 제정괴며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통해 낙태의 예외적 허용 조건이 명시됐다. 예외조건은 총 5개로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다.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등의 부득이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임산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후 2009년 시행령이 개정되며 28주 이내에만 가능하던 낙태 허용 기간이 24주로 줄어들었으며 규정한 질환의 수도 감소했다.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고, 현대 의학 기술 발전으로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법률이 수차례 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낙태 금지의 기본 원칙은 살아남았다.

 

낙태죄를 둘러싼 논쟁, 그리고 헌법 불합치 판결

 

끊임없이 반복되던 낙태죄 논란에 새로운 국면을 가져온 것은 낙태죄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제기한 낙태죄 헌법소원에 작년 4월 내려진 헌법불합치 결정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죄를 합헌이라고 인정했던 지난 판결을 뒤집으며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여성의 사회경제적 요건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며 ▲실효성있게 집행되지 못해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내세웠다. 또한 채택되지 못한 단순위헌 의견을 제시한 세 재판관은 판결문에서 임신 14주를 뜻하는 임신 제1삼분기까지는 어떤 사유도 필요 없이 낙태가 가능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태아 생명 보호의 가치의 중요성도 인정하며 올해 12월 31일까지 법률의 효력을 유지하고 그 기간 동안 법률을 개정할 것을 주문했다.

헌재 판결문은 낙태죄에 제기되던 비판을 고루 수용했다. 낙태죄 폐지론의 가장 대표적인 근거는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데 있다. 여성은 자신의 몸에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며, 낙태한 여성의 처벌은 그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생명권, 재생산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다. 작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조항 위헌 취지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인권위는 의견서에서 “출산이 여성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임에도 낙태죄는 스스로 임신 중단 여부를 결정할 자유를 박탈한다”며 “임신의 중단을 결정할 권리가 있고 국가가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적었다.

낙태죄가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것 역시 낙태죄 폐지론자 측에서 꾸준히 제기해온 비판이다. 작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낙태죄에 관한 헌법소원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연간 낙태 수술 건수가 약 17만 건으로 추정되지만 1993년부터 2012년까지 낙태죄 기소 건수는 연간 9.1 건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최근 5년간 약 80건의 낙태죄 관련 판결에서 실형은 단 한 차례 선고됐으며 선고유예가 51.3%, 집행유예가 36.3%로 판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낙태죄의 존재로 낙태 수술이 음성화되며 수술 환경의 안전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판결문이 포괄하지 못한 쟁점으로는 주수 제한에 대한 논쟁이 있다. 현행 법률은 의학적 발전과 태아 생명권 존중 등을 이유로 임신 24주 이내의 태아에 대해서만 낙태를 허용한다. 낙태죄 존치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독자 생존이 가능한 태아를 인간으로 보는 해당 법률이 합리적이라고 찬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낙태죄 폐지를 지지하는 이들은 주수 제한이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주수 제한이 압박감을 야기해 여성이 성급하게 낙태를 결정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정부 입법안

 

정부는 지난달 7일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형법 개정안에서는 낙태죄를 유지하되 낙태의 허용 요건이 변경됐다. 임신 14주 이내에 의학적으로 인정된 방법으로 이뤄진 임신중절은 처벌되지 않고, 특정한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을 경우 24주까지도 임신 중단이 가능해진다. 형법에 처벌 근거가 넘어가며 모자보건법에는 관련 규정이 삭제됐다. 대신 ▲자연유산 유도 약물 이용 허용 ▲의사 개인 신념에 따른 진료 거부 예외적 인정 ▲만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경우 법정대리인 동의 없이 상담사실확인서만으로 낙태 결정 가능 등의 내용이 신설됐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했다고 설명했지만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측은 크게 반발했다. 의료계 내에서도 개정안에 대해 의견을 일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협은 의사가 개인적 신념에 따라 인공임신중절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에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현행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에 따른 비도덕적 진료 행위 규정 중 낙태에 관한 행정처분 역시 삭제돼야 법률의 일관성이 확보됨을 지적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및 의사회는 여성의 안전과 무분별한 낙태 예방을 위해 제한 없는 낙태 허용 시기를 14주가 아닌 10주로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약물 낙태 도입 여부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기 때문에 국내 임상 시험 이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역시 제각기 다른 의견을 밝혔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입법예고 기간에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개정안을 제출하도록 노력해달라는 다소 모호한 입장의 논평을 발표했다.개정안에 대해 반발한 일부 의원들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낙태죄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국민인식 변화에 부합하지 않는 결정”이라 반발하며, 지난달 12일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과 불가피한 임신중단에 의료서비스를 보장하도록 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5일 정의당은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을 통해 낙태죄를 완전 폐지하는 반면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인공임신중절을 받은 여성 노동자도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한편 제1야당이자 원내 유일한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은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으며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이야기의 끝은 어디에

 

헌법 불합치 판결로 과거에 남은 듯했던 낙태죄는 정부 입법안을 둘러싼 논란을 통해 건재한 파급력을 증명했다. 국회에 주어진 시간이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며 낙태죄의 향방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낙태죄가 완벽히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지, 또는 다른 형태로 현재를 살아갈지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장윤서·김준범·신형목·황제동 기자

yunseo05@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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