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상 입은 대한민국 권역외상센터

지난 1월 29일, 대한민국 외상분야를 개척한 이국종 교수가 경기 남부권역 외상센터장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외상센터를 두고 병원 측과 이어간 갈등을 끝내 버티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민국 권역외상센터의 현실과 이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이 무엇인지 The HOANS에서 살펴봤다.

지난 1월, 유희석 아주대병원장이 이국종 전 경기 남부권역 외상센터장(이하 이 교수)에게 욕설을 퍼붓는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이 보도됐다. 해당 파일을 통해 이 교수를 필두로 한 경기 남부권역 외상센터와 아주대병원 간의 갈등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며 파문이 일었다. 갈등의 주 내용은 ▲권역외상센터의 수익성 부족 ▲권역외상센터 내 병실 및 인력 부족 ▲닥터헬기 소음 등으로 알려졌다. 병원 본부와의 충돌 후 해군 순항훈련전단에 합류하며 출국한 이 교수는 결국 외상센터장 보직을 내려놨다. 이후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회가 유 의료원장의 사과와 사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병원 내부에서도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지난 2월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중증외상환자 진료 방해 ▲진료 거부 ▲의료기록 조작 등의 의혹을 받는 아주대병원의 진상규명을 지시해 조사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권역외상센터와 대한민국

권역외상센터는 일반 응급실에서의 처치 범위를 넘어서는 다발성 골절·출혈 환자를 병원 도착 즉시 응급수술 및 치료할 수 있는 의료시설을 의미한다. ▲교통사고 ▲추락 ▲총상 등의 심각한 사고로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이 치료 대상이 되며 연중무휴 24시간 운영된다. 또한 외상전담 전문의들이 항시 대기하며 중증외상환자가 수술실로 가기 전 초기 처치를 받는 소생실과 전용 수술실, 중환자실이 갖춰져 있다. 경기 남부 권역 외상센터의 경우 두 개의 소생실을 갖추고 천장에 X선 촬영기를 설치했으며 환자가 센터에 진입하는 즉시 ▲외상 외과 전문의 2명 ▲응급의학 전문의 1명 ▲전담간호사 4명이 투입된다. 이와 같은 체계는 중증외상환자의 기본치료부터 진단 및 검사까지의 단계를 30~40분 안에 신속하게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덕분에 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환자의 골든아워인 한 시간 내에 의료활동이 가능해 환자의 생존확률을 대폭 증가시킨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이 외상센터 도입 후 외상환자 사망률을 약 40%에서 20%가량으로 감소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권역외상센터 설립은 2009년 보건복지부가 ‘2010~2012 응급의료 선진화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계획안은 2011년 수정돼 2016년까지 2,000억을 투자해 전국에 16개소 권역외상센터를 단계적으로 설립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그러나 계획안은 수익성 문제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아덴만의 여명’ 작전 중 소말리아 해적에게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이 이 교수의 치료를 받아 극적으로 생존하며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이 교수는 여론에 힘입어 중증외상환자 치료 시스템 확대의 필요성을 호소했고 우여곡절 끝에 ‘이국종법’으로 불리는 ‘권역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치료법 개정안’ 통과를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2012년 보건복지부가 가천대 길병원, 경북대병원 등의 5개 의료기관을 권역외상센터 지원 대상으로 선정하며 국내 최초의 권역외상센터이자 중증외상센터가 탄생했다. 해당 시설은 최대 80억 원의 외상전용 시설 장비 설치비와 매년 27억 원의 인건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으며 출발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수도권 3개소 ▲강원권 1개소 ▲충청권 3개소 ▲전라권 3개소 ▲경북권 2개소 ▲경남권 3개소 ▲제주권 1개소 등 총 16개소의 센터가 운영 중이며 1개의 센터가 추가로 개소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권역외상센터의 운영으로 인해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이 2015년 30.5%에 비해 2017년 19.9%로 대폭 감소했다. 특히 전라·제주 권역의 경우 40.7%에서 25.9%로 매우 큰 폭으로 개선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증외상환자가 다른 병원을 거치지 않고 권역외상센터로 바로 향했을 경우 사망률이 15.5%로, 다른 병원을 한 번 거쳤을 때의 31.1%, 두 번 이상 거쳤을 때의 40%에 비해 확연히 낮은 수치를 기록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권역외상센터의 실효성은 이미 수치로 뒷받침된 셈이다.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 : 외상으로 인해 사망한 환자 중 적절한 조치를 받았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망자의 비율

골골대는 권역외상센터

그러나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익성이라는 권역외상센터의 고질적인 문제는 온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환자 본인부담금과 건강보험공단 지급 비용의 합계인 ‘의료수가’가 환자를 치료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충분히 상회하지 못하는 것이다. 일반 환자와 비교해 중증외상환자는 일반·흉부·정형외과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인력과 의료품이 필요하다. 게다가 치료 이후에는 장기간 입원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상 회전율이 빨라야 수익을 쉽게 올리는 병원으로서는 수술 시점을 조절하기 용이한 일반 질환 환자들을 더욱 선호할 수밖에 없다. 또한 권역외상센터는 내원하는 환자가 없더라도 응급상황에 대비해 전담의 인력 및 시설이 24시간 내내 대기하며 발생하는 비용도 있다. 지난 2018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권역외상센터 손익현황 분석 연구’에서 ▲아주대병원 ▲부산대병원 ▲울산대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곳의 권역외상센터는 수익 대비 47.2%~56.0%의 손실률을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운영비와 시설구축비로 사용되는 국가보조금을 반영하더라도 여전히 12.0%~25.8%의 손실률을 기록했다.

병원으로부터 외면 받는 중증외상 분야는 전문 의료진 사이에서도 기피돼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응급진료, 상시 당직 등 강도 높은 업무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열린 ‘2018 회계연도 결산안 상정 및 현안질의’에서는 권역외상센터의 정상적인 가동을 위해 23명의 전문의가 필요하나 2018년 12월을 기준으로 평균 전문의 수는 센터당 11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지적됐다. 이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건비를 대폭 인상해도 의사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며 “부족한 전공의를 분야별로 확보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 개선 등 중장기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이외에도 권역외상센터는 병실 부족으로 인한 환자 수용 불가 상태(바이패스) 발생, 닥터헬기로 인한 소음 민원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앞으로의 권역외상센터

중증 외상체계를 잘 갖춘 나라로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이 손꼽힌다. 세 나라는 대부분의 권역외상센터를 공공기관에서 도맡아 운영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에선 환자를 임의로 타병원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엠텔라(EMTALA, Emergency Medical Treatment and Active Labor Act) 법이 눈에 띈다. 권역 내 발생한 환자를 해당 병원이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며 환자를 거부해 사망할 시 법적인 책임을 묻는다. 영국은 정부가 아예 국가보건서비스(NHS)로 통일된 외상체계를 관리하고 있으며 외상과 응급을 함께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은 지역별로 1차, 2차, 3차 응급의료기관을 지정해 체계를 구축했다. 1차 응급의료기관은 외래진료가 필요한 경증 환자를 수용하는 기관으로 지역 내에서 당번제로 운영된다. 2차 응급의료기관은 일반적인 응급센터이며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는 3차 의료기관이 우리나라의 권역외상센터에 해당한다. 단계별 시스템 덕에 일본은 업무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고 중증외상환자만을 위한 병상과 치료인력을 충분히 확보했다.

뒤늦게 외상분야에 뛰어든 한국은 자원이 부족해 중증외상 의료를 민간에 위탁한 셈이다. 외상은 시장실패가 발생하는 분야인 만큼 정부가 전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오는 2023년 복지부 산하의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서울에 권역외상센터를 개원할 예정이다. 본 센터가 서울 지역의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을 낮출 뿐만 아니라 국가 중앙권역센터로서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수현·박찬웅 기자

shcho71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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