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을 기억하는 사람들

지난 7월 23일, 진보정치의 상징이었던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런 비보에 많은 사람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생전에 곳곳을 발로 뛰며 열심히 활동했었고 본교 동문, 특히 정경대 소속인 정치외교학과 출신으로 후배들과도 많은 교류를 나눴기에 많은 학우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말을 The HOANS에서 담아봤다.
최락헌 정외 18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작금의 정치에서 노회찬 의원님은 그 단어를 떠오르게 해 내 가슴을 뛰게 했던 분이다. 의원님은 불의에는 저항으로 맞서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던 분으로 기억될 것이다. 정치적 지향을 떠나 그분이 일생을 통해 보여주신 순수함과 진실함을 항상 닮고 싶다.

노회찬 의원님은 뛰어난 언변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분이셨다. 의원님의 발언과 토론을 들으며 직관적인 비유와 풍자에 감탄했던 적이 많다. 게다가 항상 특유의 유머 감각과 침착함을 잃지 않으셔서 언제나 여유가 느껴졌다. 올해 강연 때에도 청자를 이해시키고 편안하게 만드는 배려가 와 닿던 기억이 생생하다.

강연 뒤풀이 때 의원님의 말씀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을 찌른다. 강연 요청 전화는 많이 받지만, 후배에게서 맥주나 사달라는 전화는 못 받아봤다고, 부르면 어떻게든 찾아오겠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한 학우가 실제로 의원님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재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만남이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하니 의원님 옆에 앉았던 그 날에 더 많은 것들을 여쭙고 배웠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는다.

김정연 정외 18

사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노회찬 의원님은 나에게 크게 다가온 인물은 아니었다. 유시민 작가와 방송을 했다는 사실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 4월 민주주의 강연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처음 뵀는데 강연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강연에서 한국 민주정치 실현을 위해 진보정권이 30년은 집권해야 한다는 의원님의 말씀 또한 생생하다. 그 후 지방선거 유세를 성북구로 오셨을 때 또 뵀는데 먼저 알아보시고 인사해주셨다. 그 순간 나에게 투표권이 없음을 한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정치인이셨다.

의원님을 생각해보면 정말 탈권위적이고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와 더불어 기성세대로서 현 세태에 대해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셨지만 그분이 살아오신 길과 그만의 신념을 생각해보면 의원님다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욱 아쉬운 동시에 마음이 아프다.

유혜인 지리 15 정의당 학생위원회 당원

노회찬 의원님은 뚜렷한 신념을 위트를 통해 피력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알기 쉬운 비유로 정세를 설명하고 상대 진영을 비난하기보다 해학으로 비판하는 모습이 감명 깊었다. 의원님께서는 항상 “진보정치를 응원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정의당원이 되는 것”이라고 청중들을 설득했다. 그 권유에 지금까지 4년간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4월 정경대에서 주최한 강연을 가장 앞자리에서 듣고, 강연이 끝나자마자 뛰어나가 함께 사진을 찍고 다이어리에 사인을 받았다. 괜한 부끄러움으로 올해 뒤풀이 자리를 피했던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내게 의원님은 진보정치의 홍보대사로 기억될 것 같다.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넓은 지지층을 갖고 계셨던 분이다. 그분을 닮고 추모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정의당원이 됐고, 나 또한 그의 뜻을 받아 당원으로서 진보정치를 응원하고 있다. 의원님의 죽음이 커뮤니티나 언론에서 희화화되거나 분쟁거리로 전락했던 것이 안타깝고 슬프며,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겐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께서는 의원에 대한 본인만의 기억과 판단을 정립했으면 한다.

홍은광 정의당 정책위원회 정책기획관

노회찬 의원은 대한민국 진보정당 운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분이다. 정의당에 있어서 노회찬 의원은 존재의 시작이고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노 의원은 늘 세상일을 명쾌하게 분석했다. 시민들에게 가깝고, 마음을 울리는 정치다. 정의당의 정치도 그랬다. 의원님은 자기 사람 만들기, 즉 계파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삶 전체가 당과 맞닿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번 선택도 개인적으로는 참 마음 아프지만, 노회찬이라는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당이 본인 삶의 전부인데, 그 당이 본인으로 인하여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당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고 본다. 자신을 멈춰 당이 꿋꿋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개인적으로 공직선거에 출마한 경험이 있다. 출마를 위한 행사에 노회찬 의원님이 오셔서 격려사를 해주시고 뒤풀이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나를 보시면 늘 찰리 채플린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유쾌한 사회주의자 채플린을 닮아보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노회찬 의원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우리가 누군가를 ‘저 사람은 참 정치적이야’라고 말하면 아마 나쁜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에 반해 ‘저 사람 참 교육적이야’라는 말은 좋은 말로 받아들인다. 아직은 정치를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는 정치라는 것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고, 누구나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면 한다. 정치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진보 정치인 노회찬의 꿈이 아닌가 한다.

이진우 사회 16·정의당 학생위원회장

처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고 노회찬 의원님이었다. 노 의원님이 진행하던 팟캐스트가 있었는데 그것을 접하면서 정당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의원님은 자랑하고 싶은 존재이다. 국회의원 중에서 의원님처럼 인품이 뛰어나고 대중에게 잘 다가가며 가치관도 맞는 사람이 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 의원님은 평생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싸워오신 분이자 항상 유쾌하고 든든했던 분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진보 정치란 어떤 것인지를 거부감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위트가 있는, 소위 말하는 말빨이 있으셨던 분이셨다. 항상 귀감이 될 분이다.

노회찬 의원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학내에서 정당 활동이 안 좋게 비칠 거라 생각했었다. 돌아가신 후 생각해보니 해야 할 일이고 올바른 일이라면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반기에는 우리 학위도 실제로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서 연대하여 변화를 만들어가자는 의견이 많다. 학내외에서 더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정의당 고려대 학위 소속으로 노 의원님의 방향성과 가치를 항상 지켜나가기 위해 더 열심히 싸워나가고 투쟁하고자 한다. 정의당을 지지하는 것과 별개로 많은 사람이 그를 추모한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추모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상봉·강민정·김원섭·김동후 기자
bonge98@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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