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만 야기하는 제재 우선주의

최근 잇따른 정부 부처의 제재 우선적인 대처로 인해 문화 산업 관련 업계가 혼란을 겪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의 플래시 게임 삭제 및 배포 사이트 폐쇄 경고,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의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제작·배포 등은 많은 이들을 당황하게 했다. The HOANS에서 정부의 대처로 인한 혼란과 어려움에 대해 짚어봤다.

 

게임은 그저 규제의 대상?

지난 2월 게임위는 ▲플래시365 ▲주전자닷컴 ▲키즈짱365 등 UCC공유 사이트를 차단했다. 이 사이트들은 ▲플래시게임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등 저작물을 공유하는데 그 중 ‘불법게임물’이 있다는 것이 게임위의 규제 근거다. 게임위는 작년 말 해당 사이트의 운영자에게 불법게임물 게시의 위법성에 대해 고지한 후, 2월 19일 호스팅 업체에 해당 사이트에 대한 차단을 요구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이에 며칠간 해당 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할 시 ‘warning.or.kr’로 연결되는 등 사이트 접속이 차단됐다. 현재 해당 사이트들은 주요 컨텐츠였던 게임 공유를 제외한 채 운영하는 등 큰 타격을 받은 상태다. 플래시 365는 플래시 게임 클릭 시 제한됐다는 공지가 뜨고, 주전자 닷컴은 아예 게임 게시판이 삭제됐다.

이번 규제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산업법)’에 따른 것으로, 게임산업법 32조는 심의 등급을 받지 않은 게임물은 모두 ‘불법게임물’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단 대상이 된 사이트의 경우 심의를 거치지 않은 게임을 게시했기에 게임산업법 저촉으로 인한 대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게임위의 입장이다. 그간 별다른 대책이 없어 진행되지 않던 심의를 이유로 다섯 개의 사이트에 대해서만 차단 조치가 강행된 점에 대해 차별적 집행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게임위는 신고가 들어온 사이트에 대해 대응한 것이며, 추가 신고가 들어올 시 똑같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게임을 단순히 규제, 심의의 대상으로 보는 게임산업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게임 유통에 앞서 심의를 강제하고 있다 보니 게임 개발자에게 큰 부담을 주고 인디 게임의 터전이었던 사이트 폐쇄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 제작자는 게임 심의수수료로 평균 30~40만 원, 최대 138만 6천 원까지 부담하게 되는데, 초, 중학생의 습작게임에도 심의를 강제하고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게임 산업과 학생들의 진로 탐색의 큰 장애물이 된다. 플래시365 운영자는 사이트가 입은 치명상과는 별개로 속히 법 개정을 통해 어린 학생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아 주는 환경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안내하지 못하는 안내서

지난 2월 12일 여가부가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제작해 13일 배포했다. 여가부는 지난 2017년 4월 처음으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를 제작했다. 올해 2월 배포된 안내서는 지난 2017년에 제작·배포된 것에 부록을 포함해 보완한 개정판이다. 여가부는 방송의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에서 이런 안내서를 제작했으며, 사회적 역할이 상당한 방송·미디어에 대해 국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이 안내서는 여러 매체에서 ‘아이돌 외모 규제’라는 용어를 통해 그 내용을 보도하면서 화제가 됐다. 외모 규제 논란이 빚어진 부분은 부록 중 ‘음악방송 출연 가수는 모두 쌍둥이?’라는 제목으로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획일성을 지적한 부분이다. 안내서는 아이돌 대부분이 ▲메이크업 ▲몸매 ▲의상 등에서 획일화됐다고 지적하며,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외모획일성을 지적하고자 안내서를 제작한 여가부가 되려 안내서라는 이름의 단일 기준을 제시하며, 국가 차원에서 현실성 없이 국민의 외모까지 통제하려고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성평드에 대한 여가부의 평면적인 기준도 입방아에 올랐다. 이번에 논란이 된 안내서와 앞서 여가부가 의뢰한 미디어 모니터링 보고서 모두 상황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각 장면에 단편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여성의 주체성이라는 단일한 기준에 매몰된 채 성평등 사례를 구분한 모습을 보였다. 한 예능 프로그램은 식사 시간에 여성 출연자를 중앙에 앉혔다는 이유로 성평등 사례로 선정됐으며, 또 다른 프로그램은 여러 차례 고백을 거절당했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남성 출연자의 사연을 긍정적으로 연출했다는 이유로 성폭력 정당화 사례로 선정됐다. 여가부의 기준에 대해 성평등에 기여하기보다는 성구분에 급급할 뿐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변명, 또 변명

게임위가 다섯 개 사이트의 차단을 발표하면서 융통성 없는 법 적용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각종 포털 및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는 ‘게임고 학생은 어떻게 하냐’, ‘초등학생의 단순 게임에까지 심의 비용을 부담시킨다’ 등 일방적인 차단 조치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표출됐다. 플래시365의 운영자는 입장문에서 이용자의 추억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상황이라며 원칙만을 강조한 행정을 원망했다. 게임산업에 대해 규제를 앞세우는 이런 행보는 기존부터 비영리 게임의 경우 자율심의를 허용하거나 사후심의를 진행하는 해외 사례와도 대비된다.

게임위는 게임산업법에 의거한 규제이므로 적절하다는 견해를 고수하며 민원이 들어올 경우 절차상 차단 조치를 하는 것이 게임위의 업무라고 표명했다. 더불어 심의료로 인한 부담을 줄이고자 중소기업 게임, 오픈마켓 게임에 대해 심의료를 30% 할인해주고 있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잦아들지 않자 게임위는 규제에 따른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취미 또는 순수한 창작 목적의 게임물의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규정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게임위는 자체등급분류 제도 확대와 모니터링단 추가 모집도 제시했지만, 그 적용 대상을 모바일 오픈마켓 게임으로 하는 등 여전히 부족한 대처를 보였다.

여가부의 방송 안내서에 대해서는 문화 규제 논란이 잇달았다. 방송 내용의 기준을 명시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방송을 평가했다는 점에 대해 여가부가 미디어를 규제하고자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아이돌 외모 규제’라고 논란이 된 부분은 방송 출연자의 외모를 특정 기준으로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사실상의 검열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하태경 의원은 ‘여가부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심의규정에 따라 성평등 조항을 명시화했다고 하지만 3년간 방심위와 단 한 번도 협의하지 않았고, 유권해석 결정 권한도 없기에 가이드라인 제작은 사실상의 월권’이라고 주장했다.

여가부는 안내서는 일종의 제안일 뿐이며 규제, 검열로 해석하는 것은 취지에 대한 왜곡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안내서를 제작해 방송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정부가 마땅히 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번 안내서도 결국 반영 결정은 방송사, 제작진이 하는 것이기에 규제, 통제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내서가 ‘실제 방송제작 현장에서 준수해야 할’, ‘적극 반영되어야 합니다’, ‘하지 않아야 합니다’ 등 제안보다는 명령, 요구에 가까운 어투로만 쓰여있어 여가부의 진의가 제안보다 규제에 가까운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무책임하기만 한 정부 부처

게임위와 여가부 모두 다양한 요구를 고려하기보다 단편적인 제재를 시행하는 데에만 집중했고 그 결과 여론의 반발에 부딪혀 다시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게임위는 여러 사이트에 치명상을 입힌 후에야 대안 정책을 수립할 것을 약속했으며 제재 시행의 목적도 상실한 채 관련 업계에 손해만 끼치고 말았다. 여가부는 안내서 발표 전 사전 검토를 강화해서 논란을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반복되는 정부 부처의 어긋난 규제로 인해 문화 산업 분야의 피해는 심해지고 있다.

더불어 여가부는 청소년 게임 이용을 제한하기 위해 시행 중인 ‘셧다운제’의 적용 대상을 기존 컴퓨터 게임에서 모바일, 콘솔 게임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청소년 수면권 보장에 대한 셧다운제의 실효성이 의심을 받는 가운데, 여가부는 ‘게임 내 유료 콘텐츠의 존재 여부’라는 수면권과 전혀 관련이 없는 기준을 제시하는 등 다시금 게임 산업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며 논란을 일으켰다. 국민의 필요를 전혀 살피지 못하는 정부 부처의 제재 우선적인 안일한 대처로 인한 피해가 온전히 국민에게 돌아오고 있다. 정부 부처에 대해 실용적 변화, 유여한 행정의 필요성이 강하게 요구된다.

 

김원섭·김동현 기자

len6315@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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