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져 가는 디지털 발전, 깊어져 가는 디지털 소외

‘4차 산업혁명’이 국가적인 키워드로 떠오를 정도로 기술의 발전에 따른 디지털화는 당연한 변화의 흐름이 됐다. IT 강국에서 그 혜택을 누리는 이들도 많지만, 반대로 발전으로 인한 혜택에서 멀어지는 이들도 있다. The HOANS에서 노년층이 겪는 ‘디지털 소외’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살펴봤다.

 

노년층에게는 멀기만 한 ‘디지털’

‘2018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이용률은 만 3세 이상 국민의 91.5%에 달한다.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오프라인 활동 중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옮겨지며 디지털화가 진행됐다. 가게, 은행 등 현장에서 이뤄지던 서비스업의 상당 부분이 편리성을 이유로 인터넷쇼핑, 인터넷뱅킹 등의 서비스로 발달했다. 그러나 노년층은 이런 변화로부터 소외되는 ‘디지털 소외’를 겪고 있다.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10대부터 50대까지의 인터넷 이용률은 98%를 상회하지만, 60대의 인터넷 이용률은 88.8%, 70대 이상은 38.6%로 급감한다. 10대부터 50대까지 97%가 넘는 스마트폰 이용률 역시 60대에는 86.3%, 70대 이상에는 35.1%로 크게 감소했다.

스마트폰 자체가 낯선 노년층에게 스마트폰과 함께하는 생활은 힘들기만 하다. 이는 스마트폰 이용률이 99.95에 달하는 2, 30대에게 스마트폰, 모바일 인터넷이 생활의 중요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올해로 여든이 넘은 A 씨는 아들이 3년 전 흔히 말하는 ‘효도폰’을 사줬지만 여전히 사용법을 잘 몰라 번호 저장도 손자에게 부탁한다. 72세의 B 씨도 3, 4년 정도 스마트폰을 사용했지만 여전히 사용이 어려워 최소한의 기능만 쓰고 있다. B 씨는 스마트폰을 살 생각이 없었지만 스마트폰이 아닌 핸드폰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스마트폰을 쓰게 됐다고 했다.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C 씨 역시 평소 쓰는 기능 이외의 것들은 딸에게 부탁하곤 한다.

스마트폰조차 벅찬 노년층에게 인터넷뱅킹과 같은 서비스는 더욱 멀기만 하다. B 씨는 인터넷뱅킹이라는 것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은행 업무는 은행에 직접 가서 해결한다. C 씨 역시 간단한 송금 정도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송금 ▲계좌 조회 ▲통장 개설 등 인터넷뱅킹으로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을 위해 노년층은 여전히 은행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곤 한다. 그마저도 스마트폰으로 은행 대기표를 발권받는 이들보다는 후순위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화된 서비스와 노년층의 거리감을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예시 중 하나는 식당에 자리하기 시작한 ‘무인 주문 기계(이하 키오스크)’이다. D 씨는 한두 번 시도해봤지만 창피만 본 기억 때문에 가족과 동행하지 않는 이상 키오스크가 있는 가게에 가지 않는다. 73세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박막례 할머니’는 키오스크 사용으로 인해 고생하는 영상을 게시해 많은 공감을 끌어내기도 했다.

 

세대 갈등 심화시키는 디지털 소외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를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노인 세대 소외는 세대 간 단절, 갈등으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10년간 65세 이상 범죄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등 노인에 의한 강력범죄는 299.5%, 재산범죄는 14.3%, 폭력 강력범죄는 95.1% 증가했다. 전체 범죄 발생 건수가 같은 기간 185만 건에서 166만 건으로 감소한 것과 대비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최근에는 세대 갈등으로 인한 ▲불만 ▲소외감 ▲억울함 등을 해소하는 데 실패하고 그 분노를 여러 경로로 표출하는 노인을 의미하는 ‘앵그리 실버(Angry silver)’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백 의원은 “고령사회는 고령자 범죄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며 “사회안전 유지를 위해 고령자 범죄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대 간 갈등이 비단 범죄에만 국한되지 않고 노년층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가짜뉴스’ 문제로 이어진다고 진단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신문상 기획·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한 한겨레신문의 ‘가짜뉴스의 뿌리를 찾아서’ 연재는 가짜뉴스 유포 채팅방의 90% 이상이 중장년층으로 구성된 채팅방임을 밝히며 그들 세대의 심리적 요인을 집중 분석한 바 있다. 전쟁을 겪고 산업화에 헌신적으로 기여했지만 1990년대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며 경험한 소외감이 노년층으로 하여금 분리된 네트워크를 만들어 그 안에서만 소통하려고 하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게 김 기자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앵그리 실버 문제가 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노년층과 청장년층의 교류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통로와 노년층 사회 참여기회가 늘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인 문제,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먼저

정부는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말했으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남길우 한국정보화진흥원 연구원은 경향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키오스크를 제작할 때도 노년층 배려를 위해 아이콘의 크기를 크게 하는 등의 표준 사항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권고안에 불과해서 기업들이 잘 지키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노년층에 대한 배려가 충분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관련 부문 예산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매년 10억 원 수준이던 고령층 정보화 교육 예산은 2019년 9억 8500만 원으로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감소했다. 이에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예산이 줄어들면 중장년층의 디지털 배제 현상이 확대될 수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고령자 범죄에 대해서도 확실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고령자 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는 하지만 효과적인 대책 마련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범죄자는 2013년 7만7260명에서 2017년 11만2360명으로 45%가량 증가했다. 이는 동일 기간 전체 범죄 발생 건수가 185만여 건에서 166만여 건으로 감소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고령범죄자의 재범률이 80%에 달하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고령범죄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 노력을 보일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좋은 선례다. 2016년 일본 정부가 발표한 ‘범죄백서’에 의하면 일본 내 형법 범죄자의 20.8%가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폭주 노인’ 등 노인범죄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용어도 일본에서 먼저 등장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노인들이 느끼는 고립감을 해소할 만한 각종 장치를 도입했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노인들이 함께 사는 ‘그룹홈’ 도입 ▲그룹홈 근무 외국인 노동자들을 일본에 무기한 머무를 수 있도록 조치 ▲의료계와의 연계 강화로 24시간 대응 가능한 재택 의료 실행 등이 있었다.

 

모두가 나서야 바뀔 문제

변화에 빠르게 발맞추는 것 역시 개인의 역량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노인 세대의 소외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노년층 소외가 야기하는 각종 사회적 문제들이 사회 전반에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에서 디지털 소외 현상을 방치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2017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60대와 70대 이상은 ‘정보기기 보유 및 인터넷 접속 가능 여부’를 의미하는 디지털정보화접근 수준과 ‘정보기기 이용능력’을 의미하는 디지털정보화역량 수준이 큰 차이를 보인다. 60대와 70대 이상의 정보화접근 수준은 각각 91.7%, 79.4%를 기록했지만, 정보화역량 수준은 이에 크게 못 미치는 41.3%, 16.2%의 수치를 보였다. 이는 노년층이 정보화접근을 통해 충분히 정보화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함을 의미한다. 디지털 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 및 청장년층의 노력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김원섭·이서희 기자

len6315@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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