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메이데이: 마지막 순간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다급함이 묻어나오는 교신 소리, 비행기 경보음, 비명처럼 내질러진 욕설, 파열음, 정적. 1분 남짓의 소리의 홍수가 끝난 후에야 조종사가 생사의 경계를 넘었음을 실감한다.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내뱉은 어절들은, 충돌과 함께 잡음으로 분해돼 교신기 저편에서 흩어져 버렸다.

언제부터였을까. 종종 세계의 대형 참사 관련 정보를 검색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백화점 붕괴에서 시작해 지하철 테러를 거쳐 최근에는 다양한 비행기 추락 사고들을 섭렵하는 중이다. 주로 글로써 접하는 여타 참사들과 달리 비행기 사고의 경우 오디오 기록, 즉 항공교신 녹음본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중에는 위와 같이 죽음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긴 것들도 많다. 누군가의 불행을 단순 흥밋거리로 소비하다니, 끔찍한 관음증이 아니냐는 비판 앞에서는 할 말이 없지만.

예견되지 않은 죽음은 비참하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말(言)은 그가 세상에 남긴 존재의 마지막 흔적이다. 수없이 고치고 다시 써도 모자랄 존재라는 소설의 결말이 고작 잡음 섞인 욕설이라니, 인간에게 그보다 잔인한 운명이 있을까. 더욱 끔찍한 사실은 이런 운명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는 점이다. 추락할 비행기에 오른 승객들이, 붕괴될 백화점에서 쇼핑하던 고객들이 그날이 삶의 마지막이 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만일 내가 지금 죽는다면? 상상만으로도 나의 일상이, 스스로를 가둔 루틴이 한없이 초라하게 여겨지며 엄혹하고 장중한 ‘존재의 무게’ 아래에서 숨이 막혀온다.

어쩌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철학자들보다도 생사의 기로에 놓인 범인에게서 구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는『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 그는 항공안전의 개념조차 미미하던 20세기 초반에 평생 우편기와 전투기를 몰다 하늘에서 산화한 직업인 작가이다. 죽음을 앞당겨 보는 것이 존재론적 통찰력의 근원이라면 조난, 추락, 전쟁을 겪으며 끊임없이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 그는 가히 ‘존재의 전문가’라 불릴 만하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았던 작가에게 삶의 이치는 단순 명확하다. 그가 보기에 아주 핵심적인 가치를 제외하고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은 일종의 과잉일 뿐이다. 예컨대 논쟁에 대해 작가는 논리를 내세운 갑론을박이 무용하다고 단언한다. 그는 “논리만 따지고 보면 당신들 모두가 전적으로 옳을 것”이라고 적는다. 논리의 역사를 공부하는 인문대생으로서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소심하게 항변하고 싶지만, 때로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권위가 가장 반박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생텍쥐페리가 제시하는 답은 연대이다. 비행기 조종사가 오로지 지상에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임무를 수행하듯, 각 개인은 자신을 나머지 인류와 이어주는 끈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 연대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내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일하게 ‘진실된’ 가치이다.

당신이 내일 죽는다고 가정해 보자. 감히 추측건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람들’일 것이다. 연대의 가치가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고는 하나 타인들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의 존재가치가 부분적으로라도 타인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더 자주 죽음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지극히 연약한 인간들은, 일상을 깨뜨리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일상에 함몰된 나머지 서서히 죽어가기도 한다. 나의 죽음을, 타인의 죽음을 앞당겨 보았을 때 감히 우리를 질식하는 일상의 부조리를 방치할 수 있겠는가. 언제라도 부끄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결국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희미한 메이데이 신호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 불어불문                                                                                                                                 19 박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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