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뒷면의 불만, 융합전공의 실효성 검토

다중전공제도, 그리고 융합전공이란

본교는 2004년부터 다중전공을 의무화했다. 이에 졸업요건으로 본전공에 비견하는 분량으로 제2전공에서 일정 학점 이상을 의무적으로 취득하도록 하는 기준이 포함됐다. 제2전공은 ▲이중전공 ▲융합전공(구 연계전공, 이하 융전) ▲학생설계전공으로 구분된다. 이중전공은 제1전공과 더불어 다른 학과의 전공을, 융전은 2개 이상의 학과가 융합한 전공을 동시에 이수한다. 학생설계전공은 학생이 직접 설계해 구성된 교육과정을 담당 부처 및 지도교수의 승인을 받고 이수하는 제도로, 이중전공과 융전에 비해 활성화가 덜하다. 제2전공을 이수하지 않을 경우 본전공을 심화전공해 최초의 졸업요건에 기재된 전공 이수 학점보다 약 2배가량을 본전공에서만 이수해야 한다.
작년 기준 가장 많은 학생이 듣는 융전은 ▲‘공공거버넌스와리더십(이하 공거리)’ ▲‘금융공학’ ▲‘인문학과문화산업(이하 인문산)’ 순이었다. 공거리는 법학전문대학원·행정학과·경제학과의 참여로 법학전문대학원 진학 및 5급 공개채용경쟁시험 준비에 필요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학습하도록 창설 목적에 알맞은 과목을 선정해 교과 목록을 구성했다. 금융공학의 경우 경영학과·경제학과·산업경영공학과·수학과·통계학과가 참여해 선진 금융기법을 학습한다. 인문산은 철학과를 제외한 문과대 전 학과와 미디어학부·디자인조형학부의 협조로 인문학·사회과학·미디어예술을 가르치는 식이다.
그러나 일견 매력적인 조합에도 불구하고 이중전공보다 융전의 지원율이 낮은 상황이다. 본교에서 제2전공의 지원율 및 합격률의 세부 수치를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직접적인 확인은 불가능하나, 직접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수강생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불만이 나오며 제도의 실효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살리기 어려운 제도 본연의 취지

여러 전공을 결합하겠다는 융전의 취지부터가 역효과를 야기하기도 했다. 개설된 수십 개의 융전 간 큰 차이가 없는 까닭이다. 특히 법학과가 본교에서 폐지된 이후 법학 교과목은 무려 7개의 융전에서 남발되고 있다. 이 중 ▲공거리 ▲‘사회규범과행정(이하 사행)’ ▲‘인문학과정의’는 주로 법조계 진출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선택하는 융전으로 유사도가 높다. 공거리는 법학·행정학·경제학의 융합인 한편, 사행은 법학·행정학에 아주 소수의 정치학 과목과 경제학 과목이 추가된 형태고, 인문학과정의는 인문학·법학·사회학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에 학생들이 각 융전의 진정한 목적과 창설 취지를 이해하고 따르기보다 전공필수과목의 개수 등 이수규정을 비교해 수강신청과 졸업이 용이한 융전을 위주로 선택하는 실정이다.
융전의 학위명이 각 전공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비판점이다. ▲‘사회복지학’ ▲‘과학기술학’ ▲‘패션디자인및머천다이징’ ▲인문산 ▲‘다문화한국어교육’ 융전은 각각의 이수과목에 차이가 뚜렷함에도 모두 문과대학의 수여 학위명인 ‘문학사’로만 졸업증서에 기재된다. 이외에도 ‘의과학’이 이학사로, ‘뇌인지과학’이 공학사로 인정되는 등 학위명이 융전의 간학문적인 이점을 크게 드러내지 못한다. ‘법과행정(현 사행)’ 융전생 박소현(정외 17) 씨는 “공거리 선택도 고려했지만 공거리 졸업증서에 기재되는 공공거버넌스학사라는 학위명이 정확히 어떤 과목을 공부하는지를 알기에 불확실해 보였다”며 선택 당시의 고민을 밝혔다. “졸업 후 고려대학교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자리에서 내 전공을 소개할 일이 생기면 훗날 진로에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섰다”고도 설명했다.

수강신청이 장벽이 되다

융전의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학과의 전공 수강에 있다. 그러나 융전은 이중전공과 달리 수강신청에서 참여 학과의 제1전공생과 같은 지위를 완벽하게 보장받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융전에서 전공으로 인정되는 과목은 참여학과 전공 중에서도 해당 융전의 창설 목적에 부합하는 일부를 선정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융전이라는 제도명만 믿고 관심 있는 학과 조합을 선택하면 듣고 싶은 수업이 있어도 이수학점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사실상 해당 학문 전반을 공부하고자 융전에 지원했다고 해도 전공 인정 목록에서 누락된 과목은 수강신청 우선권이 없다. ‘전공 아닌 전공’ 과목을 수강하려면 전체정정기간에 타 학과 전공생과 뒤섞여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다.
일례로 인문산은 취지에 역행하는 운영의 대표 격이다. 애초에 전공 개설률이 낮거나 학과 규모가 작아 수강신청이 어려운 학과들을 모아 융합했을뿐더러 전공 인정 목록에서 한 학기에 개설되는 과목은 막상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2019-2학기에는 전공필수 두 과목이 모두 개설된 한편 전공선택은 총 73개 과목 중 25개만이 열렸다. 삭제된 과목을 병기해 영역별로 ▲인문학적 소양 31개(30개) 중 8개 ▲사회과학적 시야 19개 중 10개 ▲미디어 예술 소양 27개(24개) 중 7개만이 개설된 형편이다. 같은 영역에서도 동일한 요일·동일한 교시에 개설된 강의가 많아 시간표를 구상하기부터가 어렵다.
게다가 교육과정표에 있는 교과목이 개설되지 않는 사례도 많아 융전생들은 수강신청에 어려움을 겪는다. 인문산은 무려 14개 학과를 융합했지만 그만한 전공다양성이 보장되고 있지 않아 더욱 문제가 크다. 2019-2학기 기준 25개의 과목 중 언어학과·일어일문학과의 수업은 전무하고 미디어학부·사회학과가 12개를 차지했다. 10개 과가 나머지 절반가량을 나눠 차지하는 실정이다. 다양한 전공수업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 측도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해 학생들만 부담을 안고 있다.
기껏 전공이 개설돼도 선수과목에 대한 배려 없이 커리큘럼이 짜여 수강신청에 곤란함을 겪는 경우도 있다. 사행은 경제학과 과목 중 단 ‘미시경제이론’과 ‘거시경제이론’만을 전공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두 과목을 이수하기 위해서 선수강해야 하는 ‘경제원론1’과 ‘경제원론2’은 이수학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실상 전체정정기간에 선수과목 신청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교과과정에 있는 전공도 들을 방도가 없다.

본교만의 문제?

▲특이점이 부족한 일부 융전 ▲전공특성이 불충분하게 반영된 학위명 ▲교과과정에 명시된 교과목만 전공 인정 ▲수강신청에서 겪는 불편함 등 융전 제도가 시행되면서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한 맹점들은 융전의 인기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더불어 하나의 전공을 깊이 공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중전공보다 취업에 불리하다는 근거 약한 소문도 융전의 낮은 인기에 영향을 끼친다.
한편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도 본교의 융전 제도와 비슷한 제도가 있다. 서울대는 본전공이 다른 학과의 전공과 연계해 교과과정을 확장 편성하는 연계전공과 2개 이상의 학과 전공이 연합해 별도의 전공을 설치하는 연합전공을 운영 중이다. 연세대도 2000년부터 연계전공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다만, 본교의 융전과 졸업장에 학위명을 명시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연세대의 경우 ‘연계전공에 관한 시행세칙’ 제5조에서 ‘각 연계전공 분야에서 인정하는 전공학점을 이수한 학생은 해당 연계전공이 표기된 학위를 받는다’고 명시함으로써 학위명에 각각의 전공의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융합전공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

본교는 융전 교과과정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을 인지하고 있을까. 교내 융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교직원 A 씨는 “융전의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참여학과의 학과장들이 서명하고 교과과정 이수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과목을 직접 정하게 돼있다”며 교과목 선정 과정에 나름의 기준과 단계를 거쳤음을 강조했다. 융전생이 참여학과에서 개설되는 과목을 수강신청할 때 제1전공생과 같은 지위를 갖지 못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융전에 참여하는 학과가 교육과정 과목을 개설할 때 해당 융전이 수강대상학과로 자동 일괄 지정되는 시스템이 아니다”며 “매 학기 융전을 포함한 수강대상학과를 일일이 직접 세팅하는 방식”으로 수강 대상 범위가 정해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수강신청 시스템 개선 TFT에서 융전생들의 수강신청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까지 검토 중에 있어 여타 개선사항과 함께 적용될 가능성도 있으나 실질적인 시행은 2020-2학기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다만 즉각적인 불만 해소 방안으로 학생들이 직접 교과목 추가를 요청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융전 교육과정표에 있는 과목 외의 학과 전공이 듣고 싶은 경우 융전 주임 교수를 통해 과목 추가 요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덧붙여 A 씨는 “운영에 대해서는 학과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기 때문에 요청사항이 개편안에 들어오면 추가해 학과에서 설정할 수도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한 융전을 선택해 합격한 후에도 학생들은 진로 고민과 더불어 매 학기 돌아오는 이중·융전 선택 기간마다 고민을 지속한다. 융전 제도가 실효성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교 측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융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다른 교직원 B 씨는 “융전 제도 자체가 총장 차원에서 추진하는 주요 과제 중 하나”라며 “곧 신설될 융합교육 활성화 위원회에서 다양한 부분에 대해 개선사항이 논의될 예정”이라고 개선 가능성을 암시했다. 2020학년도 융전이 어떤 변화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와중, 학생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박지우·김민지·김윤진·조수현 기자
idler994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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