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무기화, 식량안보 위협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식량안보는 ‘모든 사람에게 물리‧경제적으로 충분한 식품 공급이 이뤄질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최근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식량 위기가 현실화하자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식량 위기 공포가 엄습하자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는 국가가 줄을 잇는 추세다. 한국 역시 곡물 자급률이 낮고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 식량 위기 타격에 취약한 편이다. 이에 The HOANS에서 세계에 닥친 식량 위기와 한국 식량안보의 현주소에 대해 알아봤다.

 

식량 빗장 걸어 잠그는 국제사회

 

기후변화에 더해 각종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며 식량안보를 이유로 각국이 식량 수출 제한 조치에 나섰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26개국이 식량과 비료 수출 금지 혹은 특별 인허가 절차 등을 신설했다. 이는 지난 2008년 식량 위기 때 수출 규제를 시행했던 33개국에 육박하는 수치다. 수출 제한에 걸린 품목은 주로 곡물과 식물성 기름이다. 세계 밀 수출 3분의 1을 차지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각각 다가오는 6월 말과 올해 말까지 밀 수출을 금지했다. 세계 밀 생산 2위 국가인 인도 역시 밀 공급량이 현저히 떨어지자 연말까지 밀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가뭄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국내 물가 상승이 주된 이유다. 이 밖에도 팜유 최대 수출국인 인도네시아가 지난 4월 팜유 수출 금지를 선언하는 등 식량 수출 제한이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주요 식량 생산국의 수출 제한으로 국제사회는 식량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물가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 가격은 전년 대비 30%가량 인상됐다. 또한 비료 가격 상승으로 당장 내년 작황에도 부담이 가는 추세다. 미국 경제 매체 쿼츠(Quartz)에 따르면 ▲중국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 등이 비료 수출을 전면 금지하자 올해 초 비료 가격이 30% 이상 뛰었다.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아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엔 세계식량프로그램(이하 WFP)은 최소 43개국의 4천 9백만 명이 기근의 문턱에 있고 2억 7천 6백만 명이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물가 상승으로 인한 빈곤국 식량 사정이 악화에 우려를 표했다.

 

식량안보 논의 배경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식량 위기에 대한 우려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영국의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자사 보고서 ‘Climate change risk assessment 2021’을 통해 증가하는 국제 곡물 수요를 맞추려면 2050년까지 현재 곡물 생산량의 50%를 증산해야 할 것으로 봤다. 또한 온실가스 배출량에 큰 변화가 없다면 이로 인한 기후변화로 곡물 수확량이 30%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원인은 온실가스로 인한 기온 상승이다. 전 세계 기온 상승이 주요 농작물인 ▲밀 ▲쌀 ▲옥수수를 기르는 곡창지대에 가뭄과 홍수 위협을 높였기 때문이다. 밀 주산지인 미국과 유럽은 지속적인 폭염과 가뭄을 겪고 있다. 미국은 2020년 9월 전 국토의 43%가 가뭄을 겪었다. 지난 2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미 서부는 지난 22년간 1200년 이래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프랑스 기상청은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1월부터 5월까지 강수량이 약 35% 감소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는 홍수 피해 역시 초래했다. 중국은 2020년 여름 양쯔강 유역에 두 달간 비가 내려 자국 내 쌀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농경지가 초토화됐다.
기후변화로 전반적인 식량 사정이 악화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물동량 감소와 주요 곡물 산지에서의 정치 불안정은 식량 수급 안정성을 더욱 줄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곡물 공급을 크게 저해했다. 양국 곡물 시장 점유율을 합산하면 전 세계 ▲밀의 27% ▲보리의 23% ▲해바라기씨유의 53% ▲옥수수의 14%를 차지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해상을 봉쇄하고 세계 각국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행하면서 양 국가의 곡물이 수출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흑해 지역 밀, 옥수수 수출량 각각 7백만 톤과 6백만 톤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수출과 별개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의 전황 장기화로 해당 지역의 농업 역시 중단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상반기 작물 생산량 감소치를 예년 대비 30%로 예상했다. 식량 공급 감소는 바로 시장에 반영됐다. 1월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톤당 284달러에 거래됐던 밀 가격은 전쟁 발발 이래 2월 296달러, 3월 407달러로 연일 고점을 경신했다.

 

점차 악화하는 식량안보

 

한국의 UN 세계식량안보지수는 2021년 기준 113개국 중 32위를 기록했다. 지난 2017년 26위를 기록한 바에 비하면 최근 순위는 하락세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각각 8위와 15위를 기록했다. 2019년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한국은 연간 1,558만 톤의 곡물을 수입해 전 세계에서 곡물을 7번째로 많이 수입했다. 또한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한국 식량자급률을 2020년(양곡 연도) 기준 45.8%로, 사료용 작물이 포함된 곡물자급률은 20.2%로 발표했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식량 수급 불안정성은 더 크다. 국회예산정책처는 1970년 이후 쌀을 제외한 주요 곡물 자급률이 지속 하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년 기준 자급률은 ▲밀 0.5% ▲옥수수 0.7% ▲콩 6.6%에 그쳤다. 이처럼 곡물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최근 세계 곡물 가격상승을 피하긴 어려웠다. 농식품부가 제공하는 주요 농축산물 소비자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평년 대비 ▲감자는 17~20% ▲콩은 13~23% ▲밀가루는 20~30% 정도 가격이 올랐다.
또 다른 문제는 주요 식량 작물 수입을 소수의 국가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콩은 미국·브라질에서 매년 90% 이상 ▲옥수수는 미국·브라질·아르헨티나 3개국에서 매년 80% 이상 ▲밀은 미국·호주·우크라이나에서 매년 80%를 수입했다. 해당 국가들이 전 세계 수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비하면 한국 수입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그 편중도가 컸다. 해당 국가가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수출에 차질을 빚으면 갑작스런 가격 급등 위험성은 크게 높아진다.

장기적으로 식량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식량안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농식품부는 국제 곡물 시장 불안에 따른 국내 영향을 최소화하는 조치에 나섰다. 3월에는 식품업체의 원료 구매자금 금리를 인하했고 4월에는 사료곡물 대체 원료 할당 물량도 확대했다고 전했다.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중장기 사업도 시작됐다. 밀 자급률 제고를 위해 정부는 2019년 밀 산업 육성법을 제정하고 2020년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자급률 목표치는 2025년까지 5%, 2030년까지 10%다. 그러나 2021년 중간목표가 1.7%에 비해 실제 달성치가 0.8%로 절반에 못 미쳤다는 점에서 추가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로 식량안보에 대한 중요성은 꾸준히 커져 왔다. 최근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악재로 식량 수급이 단기 침체에 놓였으나 대응은 미봉책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곡물 수입국 다변화 및 물류 기반 확충을 통한 수입 안정화, 곡물 자급률 향상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식량안보 제고를 위한 당국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된다.

정서영·신재용·이정윤 기자
kiger21@kore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