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난마, 새로운 WTO 사무총장 쾌도 될까

WTO 사무총장 선거가 대장정의 종지부를 향해가고 있다. 결선에는 나이지리아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후보와 우리나라의 유명희 후보가 올랐다. 코로나19 사태로 악화된 무역 현실 속에서 새로운 WTO 사무총장이 예상되는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WTO 사무총장 선거는 164개 회원국의 협의를 통해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를 탈락시키는 절차를 세 번 거쳐 당선자를 선출한다. 지난달 7일 2차 라운드에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선발됐다. 최종 라운드에서는 남은 후보 2인 중 누구를 지지할지 각 회원국이 선호를 표명한 후 만장일치에 다다를 때까지 협의를 진행한다. 만장일치 합의 도출이 불가능할 경우 다수결 투표를 활용한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각국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 후보는 60:104의 열세를 보이고 있어 당선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같은 날 WTO는 선호도를 반영해 전체 회원국 대사급 회의에서 나이지리아의 오콘조-이웰라 후보를 차기 사무총장 후보로 추천했다. WTO는 해당 논의를 이달 초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 제네바의 코로나19 상황 악화에 따라 선거가 장기화할 전망이다.

 

보호무역주의 강세에 맞서는 변화의 바람

 

WTO 사무총장 결선을 두고 새로운 사무총장이 국제 무역 흐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코로나19로 인한 국제 무역 부진과 보호무역주의 세태에서 신임 WTO 사무총장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결선에서 승리한 사무총장이 바로 마주할 사안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교역량 감소다. WTO에 따르면 올해 세계 상품 교역량은 전년 대비 9.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2차 유행이 진행되면 교역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도 전했다.

다자무역체제를 표방하는 WTO로서 보호무역주의를 극복하는 것 또한 신임 사무총장의 과제다. 미중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의 관세 부과가 이어지며 보호무역주의 전후로 전 세계 교역량이 3분의 1로 감소했다. 경제성장에 수출이 중요한 태국, 인도까지 보호무역주의 흐름에 가세하며 범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돌풍이 불고 있다. 이에 여러 국가 간의 무역 문제 해결을 위해 세계 수준의 협의체를 통한 규범과 절차를 각국이 준수하는 태도인 다자주의가 대안으로 제시된다. WTO의 다자 간 무역은 참가국의 이익을 보장해 약소국을 주요 무역 국가와의 양자 관계로 인한 위압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FTA 교섭관, 청와대 외신대변인을 역임한 유명희 후보는 WTO 차원에서 다자주의를 회복하고 정치적 편향성 없는 회원국 중심의 정책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 나이지리아 경제개혁을 주도하고 세계은행 전무이사와 백신 관련 국제조직의 이사장을 역임한 오콘조-이웰라 후보는 미중 무역 분쟁 종식과 더불어 과거 경력을 살려 WTO의 규정에 따라 코로나19 백신을 저렴하게 배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제사회 속 WTO

 

WTO는 1995년 출범 이래 비차별 원리에 따라 국제 무역 질서를 위협하는 사안들을 처리해왔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 신경전을 펼칠 때도 WTO는 초강대국 사이에서 잡음을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난 9월 WTO는 중국산 수출상품에 최대 25%까지 추가 관세를 부과한 미국이 무역 규칙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판결은 WTO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판결에 대한 미국의 보이콧으로 상소 기구가 정지되면서 무역 대리전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해당 사안으로 관세 논란의 중심에 선 WTO의 위치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킨 셈이다.

미중 세력 대결이 투영된 관세 분쟁부터 한일 무역 분쟁까지 WTO는 복잡한 국제 관계 속 외길을 걷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한국을 상대로 수출 규제 조치를 강화하며 재래식 무기에 대한 캐치올 규제(Catch-All Controls)가 미흡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캐치올 규제란 전략물자는 아니지만 대량살상무기 제작에 사용될 수 있는 물자의 수출을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이 안보상의 규제는 제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려 했지만 한국 정부가 지난 6월 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재개해 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WTO의 판결은 명분이 분쟁 해결에 중요한 견인차 구실을 하는 국제사회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이에 국제 무역 분쟁과 밀접한 WTO 사무총장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협의에 실패한 분쟁 당사국이 심의 절차를 거칠 때 패널 구성 합의에도 실패하면 사무총장이 패널리스트를 지정한다. 패널은 최종 보고서를 제출해 분쟁 당사국의 시비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 각 회원국이 해당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거부하지 않는 이상 보고서는 무역 분쟁 해결 기구(DSB)의 최종 판정 결과가 되는 수순을 밟는다. WTO 사무총장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선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겨루기

 

선거를 두고 국제사회의 물 밑 정치도 가열되는 모양새다. 최종 결선에서는 ▲미국 ▲EU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의 결정과 55개국으로 구성된 아프리카 연합의 지지가 선거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불법으로 산업기술을 훔치고 있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중국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 기조를 유지해 왔다. 중국은 WTO에 미국이 자유무역 질서를 왜곡한다며 제소해 이에 맞섰다.

중국은 이번 선거를 통해 미국과 힘겨루기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최근 WTO 회의에서 중국은 미국이 회원국의 제품을 가릴 것 없이 똑같이 대우한다는 최혜국 대우를 어겼다고 지적했다. 중국산 제품을 겨냥한 미국의 관세가 해당 원칙에 위배됨을 꼬집은 것이다. 무역 분쟁 속에서 중국은 후보 중 자국을 도울 우군을 찾아 나선다. 오콘조-이웰라 후보는 나이지리아 재무장관 시절 ‘일대일로’ 사업 등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바 있어, 오콘조 이웰라 후보가 중국의 표심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반면 지난달 28일 미국 무역대표부는 성명 발표를 통해 유 후보 지지를 표명했다. 미국은 유 후보를 통해 자국에 유리한 무역 질서 구축과 대중국 견제를 도모하는 모양새다.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친중 경향을 보인다는 점도 미국이 유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다. 유 후보의 당선에 있어 남은 유일한 호재는 미국의 지지인 셈이다. 한편 미 대선의 결과가 WTO 결선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변수에 변수

 

중국의 기세를 견제하는 일본은 진퇴양난 상황 속에서 오콘조-이웰라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오콘조 이웰라 후보가 일본에 최적의 선택은 아니다. 중국은 앞서 에티오피아 출신인 테워드로스 WHO 사무총장을 통해 코로나 19 상황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전례가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과 한일 무역전쟁의 또 다른 변수를 만드는 것의 비용을 따져야 한다. 일본은 한국이 자국의 수출 규제를 WTO에 제소한 상황을 고려해 후자의 기회비용이 더 적다고 판단한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달 26일 EU는 오콘조-이웰라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의 입장을 발표했다. EU의 움직임은 아프리카와 유대 강화를 도모하는 서유럽 국가들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프리카 식민지와 관련이 적고 한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한 동유럽 및 발트해 국가들은 유 후보에게 지지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은 마지막까지 헝가리와 라트비아 등 7개국이 유명희 후보 지지를 따로 표명하기를 원했으나 국제 안건에서 입장을 통일하는 EU 원칙에 따라 무산됐다고 전했다.

 

꼬인 무역 길 누가 풀까

 

얽히고설킨 국제 관계 속에서 새로운 WTO 사무총장이 기관의 자력을 회복하고 보호무역주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오콘조-이웰라 후보에게 유리한 선호도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미국은 무역대표부(USTR) 성명을 통해 유 후보에 대한 지지와 오콘조-이웰라 후보에 대한 거부권을 밝혔다. WTO가 협의 방식을 따르는 만큼 결선의 종지부를 찍을 후보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사다난한 WTO 수장 선출부터 그가 짊어져야 할 안개 낀 무역 상황까지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이목이 쏠린다.

 

이채윤·최승원 기자

dlcodbs0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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