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게임 불감증의 시대

게임 불감증이라는 단어가 인터넷에서 유행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게임 불감증이란 어떤 게임을 해도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오해는 마시라. 이런 사람들이 게임을 싫어하게 되거나 게임이라는 취미를 아예 그만두는 것은 드물다. 다만 이를 겪는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하는 게임의 이상향을 생각하며 최고의 게임을 찾아 배회할 뿐이다.

사람마다 그 이상향은 다르다. 소위 ‘린저씨’라고 불리는 4-50대 MMORPG 게이머는 캐릭터의 성장과 다른 게이머와 함께하는 전쟁 서사시를 이상향으로 꼽을 수 있다. 4X 게임 게이머는 자신이 이끄는 국가 혹은 종족의 흥망성쇠를 보며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갈망할 수 있다. 단순한 시스템의 클리커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조차도 자신의 노력으로 일어난 게임 속 변화에 느낀 성취감을 추억할 수 있다. 이렇듯 게이머마다 게임에 기대하는 바가 제각기 다르다.

그럼에도 감히 이상향의 공통된 근원을 얘기한다면, 필자는 ‘이야기 공장’이라는 표현을 제안하고자 한다. 여기서 이야기란 게임 내 경험은 물론 다른 게이머와의 상호작용, 게임의 장면을 실마리로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상상의 나래까지 포함하는 게이머 개인의 개별적 경험을 의미한다. 공장은 게임이 다양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음을 뜻한다. 게임에서는 스포츠와 다르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고, 독서와 다르게 몇 번이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필자는 이런 비현실성과 재생가능성이 수많은 사람을 게임으로 이끄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게임 불감증은 이야기 공장이 멈춘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이야기 공장은 크게 두 경우에 멈춘다. 첫 번째는 게이머가 공장을 멈춘 경우다. 이야기 공장은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게이머의 상상력이 이야기 공장을 굴리는 연료다. 상상력 없이는 게임은 그저 입력된 명령에 따라 정해진 결과를 내놓는 계산기에 다를 바 없어진다. 게이머에게 당위를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새로운 공장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다. 대부분 사람은 상상력이 있더라도 더욱 정교하고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줄 새로운 이야기 공장이 계속해서 필요하다. 비슷한 경험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약 새로 만들어지는 공장들, 즉 게임들이 과거를 계속 답습하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상조차 필요 없다. 과거와 다를 바 없는 게임성에 과금 유도만 늘어가는 ‘양산형’ 게임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게이머 사이에서 혹평을 받은 모바일 게임 ‘블레이드앤소울2’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넘버링에서 알 수 있듯 ‘블레이드앤소울’이라는 게임의 후속작으로 발표된 해당 게임은 746만 명의 사전예약자를 모으며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형편없는 게임성과 퇴화한 그래픽 등으로 출시 직후 커뮤니티 등에서 성토가 이어졌다. 더욱 큰 문제는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수많은 ‘기대작’이 있었고 그렇게 수많은 ‘양산형 도박’이라는 비아냥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는 게임 불감증이라는 단어가 생겼다는 것으로 갈음하겠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규모 게임 제작사에서는 과거부터 꾸준히 새로운 게임을 만들고자 실험적 결과를 내놓은 바 있으며 개중에는 준수한 판매량을 얻은 것도 있다. 일부 대형 게임사에서도 게이머의 비판을 수용해 게임성의 개선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과도한 과금 유도를 상정한 게임이 대형 게임사의 ‘기대작’으로 나오는 현실 속에서 게임 불감증의 유행이 종식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씁쓸한 의문이 남는다.

 

신형목 기자
mogi200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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