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공기살인

“봄이 되면 나타났다 여름이 되면 사라지는 죽음의 병”

 

22일 개봉을 앞둔 영화 예고편에 등장하는 글이다. ‘공기 살인’이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2011년 수면 위로 올랐던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 2006년 한 의사가 수년간 봄만 되면 원인불명의 폐 질환으로 산모와 영유아 등이 사망하는 사건에 의문을 품고 그 원인을 추적하고 몇 년 후 그 원인이 가습기살균제로 밝혀진다.

1994년 처음 시판돼 17년간 판매된 가습기살균제가 많은 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우리 사회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이 명백히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업에 대한 제재는 물론 피해자에 대한 구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인정받은 사람은 2월 기준으로 4,291명이다. 하지만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가습기살균제가 출시된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약 800만 명이 제품을 사용했다는 추산치를 바탕으로 피해자가 약 67만 명에 달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이들 중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으며, 상당수는 호흡기를 달고 생활해야 하는 등 평생 고통을 안고 살게 됐다.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사례는 계속 보고되고 있으나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2021년 1월 법원은 1심 재판에서 CMIT, MIT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하고 판매한 회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으며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올해 3월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최종 조정안을 내놓았으나 2개 기업이 반대 의견을 표해 조정에 실패했다. 피해 보상금을 조정에 참여한 기업이 부담하는 상황에서 한 기업이라도 반대할 경우 보상이 불가능하기에 조정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2011년, 피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5년간 그 어떤 제재도 이뤄지지 않은 당시 나온 말이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현재도 피해자는 고통 속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도, 지원금도, 그 어떠한 것도 피해자의 삶을 되돌려주고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씻어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도 국민을 상대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기업이 무책임하게 이 상황을 피해서는 안 된다. 제조회사들은 가습기살균제의 위해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제품을 판매한 잘못에 대해 올바른 책임을 지고 정부는 이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업만의 책임이 아니다. 해당 제품 판매를 허가한 정부, 그리고 1심 재판이더라도 위해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회사 임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 모두가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잊혀져 가는 요즘, ‘공기 살인’의 개봉은 이를 상기시키고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피해자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정당한 배상이 이뤄지고 십여 년 전 비극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장서연 기자
wkdtjdus5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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