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대2병, 위기 아닌 기회

“나 대2병 걸려서 걱정이 많아졌어. 너무 우울해.”

요즘 친구들과 만남에서 누구든 한 명이 꼭 하는 말이다. ‘대2병’이란 취업, 진로 고민 등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급격히 낮아지고 평소보다 우울해지며, 미래에 대한 걱정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대2병 증상에는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 비하하기,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된 기분 등이 있다. 대2병에 마주한 지금의 우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대2병의 근본적 원인을 ‘자아의 미확립’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던진 어떻게 살고 싶냐는 물음에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무슨 직업을 갖고 싶은지가 아니라, 네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궁금하다며 다시 물었다. 두 번째 질문에 그만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이 단순한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스스로에 적잖이 놀랐고, 동시에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돈? 명예? 권력? 봉사?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떠다녔다. 이때까지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을 뿐, 인생을 향한 더 근본적인 물음표는 던지지 못했음을 알았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 즉 나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다.

대2병에 걸렸을 때 이에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걱정을 덜기 위해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또 누군가는 생각 속으로 잠식해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 <물감>이라는 노래에 이런 구절이 있다. 대2병을 겪는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가사다.

밤을 걷지 그리운 일을 적지 좋아서 걷는 거고 불안해서 적는 거지 사실은 잘 모르지 어떻게 살아갈지 적당한 어른이고 아프면 작아지겠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떠오른다. 성인이 되기 전엔 그저 무책임하고 두려운 말이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도 듣기 싫어>라는 책을 더 옹호했다. 모든 청춘은 원래 힘들고 고통스러우니 혼자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조언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그러나 성인이 된 후 직접 마주한 현실은 그렇다고 말해주고 있다. 모든 어른이들이 어른이 되기 위한 첫걸음 떼는 과정이라며, 이에 과감히 부딪혀보라고 등을 떠민다.

대2병의 원인이 자아정체성의 미확립이라면, 처방전은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다. 물론 삶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은 더디고 힘든 과정이다.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변하며 무한대로 솔직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 찾아오는 이런 우울감을 통해 생각이 없던 사람도 생각을 하게 되고,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에 더 솔직해질 수 있다. 사람은 합리화의 달인이기에 내면의 깊은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나친다면 삶의 방향성을 잃기 마련이다. 대학 입학 전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오다 운전대를 놓치고 방향을 잃어버린 지금 대2병은 자연스레 찾아오는, 잠시 우리에게 앉았다 사라지는 감기 같은 존재다.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를 현명하게 넘기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대화를 두려워하고 피할 것이 아니라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대2병은 위기가 아닌 기회라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헤맸던 스스로와의 대화를 진정으로 해볼 수 있는 인생이 주는 기회. 결과적으로 고민에 대한 결론을 내렸는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시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값진 보물과도 같은 깨달음이 있다. 또 대2병을 겪고 있을 우리 모두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린 언젠가 날개를 펼쳐 세상을 누빌 것이라고!

 

최혜지 기자
chj0418@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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