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모두가 올려다보는 세상

“기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생각해보면, 너는 정말 행복한 거란다.” 이런 조언은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도 나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떠올리며 위안과 행복을 얻으라는 취지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그 타당성은 차치하고, 애초에 그러한 ‘아래를 보는 삶’이 가능하긴 할까?

꿈을 이루기 위해,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삶의 많은 시간을 ‘올려다보며’ 살아간다. 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사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면서 삶의 원동력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자극이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허탈감과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자연스러운 사람의 심리다.

이런 관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TV 프로그램들을 찬찬히 뜯어보자. MBC의 나 혼자 산다는 연예인의 거주지와 일상생활 모습을 관찰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애청자라면 초창기와 지금의 인상에서 괴리를 느낄 것이다. 초창기에는 중견 배우 등의 평범한 일상을 포착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갈수록 부유한 유명인의 화려한 집을 배경으로 방송이 펼쳐지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스타의 생활이 궁금했던 사람들에겐 만족스러운 변화일 수 있겠으나, 그들의 화려한 삶을 전시하는 방향으로 한 프로그램이 은근히 변화한 데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올해 들어서는 한술 더 떠 부동산을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MBC 구해줘! 홈즈, SBS 홈데렐라와 나의 판타집 등의 프로그램을 적어도 한 번쯤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코로나19로 시청자 수가 증가한 안방극장에 올해 들어 새롭게 등장한 예능 트렌드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방송의 컨텐츠에 주목할 때 보금자리로서의 집보다는 화려한 외관을 보여주는 데 불과하다거나, 부동산 관련 PPL(제품 간접 광고)이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는 또 어떤가. 서민이나 중산층을 대변하는 캐릭터의 보금자리가 복층 단독주택인 경우는 가족 드라마에 이미 수도 없이 많이 등장했다. 더 나아가 JTBC의 SKY 캐슬이나 SBS의 펜트하우스 등 이른바 ‘최고위층’의 삶을 주제로 한 드라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작품은 등장인물 간 갈등이나 비극적 결말 등으로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공허한 삶을 비판적으로 조망하기는 한다. 그러나 ‘부유층의 전유물’로써 화려하고 자극적인 삶을 지속적으로 전시하는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한국에서 집을 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까지 더해 소시민이 생존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냉혹한 조건이다. 부유한 삶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는 각종 TV 프로그램이 방송가 트렌드라는 미명하에 속출하는 것은 그런 삶을 동경하는 수많은 시청자가 현존한다는 방증이리라. 한편으로 해당 콘텐츠의 범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동경만큼이나 허탈감이 크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정신 승리’나 ‘행복회로를 돌린다’는 표현이 흔하게 쓰이는 요즘이다. 전자는 어려운 처지를 정신적으로나마 정당화하고 극복하려는 시도를 일컫고, 후자는 앞으로의 일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그려나가는 모습을 가리킨다. 필사적으로 이런 시도를 하고 또 했음에도 해소되지 못한 욕구가 응어리져 집단적인 상실감을 낳은 것이 아닐까. 이런 사람들에게 아래를 내려보라는 말, 행복을 찾으라는 말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모두가 자기 위를 올려다보는 세상에서, 오늘도 그 천창으로서의 TV를 시청할 많은 이에게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민재승 기자
jaysong46@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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