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정도(正道)

영 길 찾는데 소질이 없는 필자는 목적지를 두고 근처를 배회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째려보는 친구 눈초리에 따가울 때면 당당하게 말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든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이 속담은 우리 일상 곳곳에 쓰인다. 그래, 모두가 탐내는 서울을 갖기 위해서라면 때론 불공정함을 표상하는 ‘모’가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장난 섞인 필자의 입버릇이 전 지구적 기조가 되길 원한 것은 아니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금지 약물 복용 논란으로 소란스럽다. 쿼드러플(4회전) 점프를 성공시키며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줬던 ‘피겨천재’ 카밀라 발리예바가 도핑 파문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단체전에서 ROC에 금메달을 안겨줬던 일등 공신이었지만 조작된 천재라는 오명을 떨칠 수 없게 됐다. 사실 러시아는 2014년 열린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국가 주도 금지 약물 복용이 밝혀지며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이미 2년간 국가 자격으로 올림픽을 포함한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당한 상태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와 공정은 8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듯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와 세계반도핑기구는 스포츠중재재판소에 자격 정지 및 개인 경기 출전 금지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발리예바가 16세 이하로 반도핑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 올림픽 기간에 진행한 도핑 검사가 아니라는 점 등을 근거로 그녀는 지난달 17일 열린 개인전에 당당히 출전했다. 러시아 정부는 발리예바에게 우호 훈장까지 수여하기에 이르렀다. 저편에 버려진 올림픽 정신과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조차 없는 시국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스포츠 선수에게 절실한 꿈의 무대. 그간 흘린 땀과 눈물은 무대에 오를 그 하루에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겠다는 간절함에 있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막론하고 앞서나가려는 이기적인 욕심은 과정의 공정함을 짓밟고 함께 올림픽 무대에 출전하는 동료들의 지난 노력을 무색하게 했다.

약물 사용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약물 파동이 일어왔고 해를 거듭할수록 처벌 수위는 강력해졌다. 그럼에도 어째서 약물에 기대 눈앞의 영예를 추구하는 사슬이 끊어지지 않는 걸까. 성적에 대한 압박은 철저히 결과만을 조명하는 우리 사회를 투영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삶에서도 절차를 아랑곳하지 않는 ‘모’들을 찾을 수 있다. 입시비리, 고용세습, 정경유착, 공금횡령 등이 오늘도 뉴스 사회면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말이다. 동시에 그런 ‘모’를 지켜보며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이들도 마주할 수 있다. 누구나 ‘모’의 당사자 혹은 목격자가 될 수 있기에 공정의 의미가 퇴색해버린 오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을 몇 번이고 곱씹어보게 된다.

공정성의 담보는 경기를 가능하게 하는 스포츠의 기본 전제다. 안타깝게도 불공정함은 우리 사회를 넘어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도 판을 치고 있다. 과정의 공정함에 소홀하다면 결과는 정당화될 수 없다. 도핑으로 얼룩진 올림픽은 ‘평화의 제전’이라는 의미가 무색해진 현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현실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올림픽 정신을 되찾기에 앞서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조금은 씁쓸한 의문을 남긴다. 반칙에 무뎌진 사회, 지름길을 외면하는 것이 미련하다며 손가락질하는 사회 속에서 필자는 정도(正道)를 떠올린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전진하는 사회를 시작으로 시들어가는 올림픽에도 진정한 평화가 깃들 수 있길 바라본다.

유민제 기자
estrella001@kora.ac.kr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