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해방을 위해선

누구나 한 번쯤 어딘가로부터 막연히 해방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곤 한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게 버겁고 무기력만이 온몸을 감싸는 기분을 모두 느껴봤을 것이다. 시험이 끝난 필자도 동일한 경험을 했다. 이 답답함도 중간고사만 끝나면 사라질 거라 믿었지만 여전히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기분이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필자의 경험에 공감한 사람이 있다면 조심스레 드라마 한 편을 추천해볼까 한다. 당신의 해방을 도와줄지도 모른다.

<나의 해방일지> 속 주인공은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으로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는 인물이다. 걱정 많은 부모님에겐 알아서 잘하는 자식이었고 회사 동료에겐 싫은 소리 안 하는 착한 동기였다. 사내 동호회에 들지 않아 은근히 겉돌고 있다는 점만 빼면 지극히 평범했다. 이렇게 평범한 인물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 드라마가 필자에게 유독 울림을 준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첫 번째로, 인간관계에 지친 주인공의 모습이 필자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극 중 주인공은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자 달려들었다가 자신의 볼품없음만 확인하고 돌아서는 반복적인 관계’에 지쳐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눈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모두가 나를 평가하려 드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나를 좋아해 달라 애원한 적도 없는데 내가 없는 자리에선 나를 평가하는 대화가 서슴없이 오고 간다. 어쩌다 한번 원한 적 없는 나에 대한 평가를 듣게 된 날이면 나를 둘러싼 시선에 숨이 막히기도 한다. 극 중 주인공이 “어디에 갇힌 건지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다”고 느끼는 이유에는, 그리고 주인공의 심정에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에는 나를 평가하려 드는 주위의 시선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무력감을 채워줄 방도로 ‘타인의 추앙’을 원한다는 개연성이 공감됐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빚을 떠안고, 회사에선 ‘어딘가 매력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주인공은 사무치는 무력감에 옆집 남자를 찾아가선 이렇게 쏟아낸다.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분명 인간관계에서 공허함을 느꼈던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허전함을 달랠 방안으로 떠올린 건 또 타인이었다. 아무런 계산도 없이, 자신을 평가하려 드는 시선도 없이, 그저 높이 받들며 응원하는 타인의 추앙만이 그를 채워줄 수 있었다. 결국 우리를 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또다시 살게 하는 것도 타인이라는 설정은 우리 사회와 너무 닮아 있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평범한 인물 설정은 작품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배경이 됐다. 말 그대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사는 보통의 주인공들과 달리 <나의 해방일지>의 주인공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며 평범한 자신의 인생에 무력감을 느낀다.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살지 못하는 우리처럼 말이다. 이 작품이 우리의 삶과 더욱 닮아있는 이유다.

눈 뜬 모든 시간이 버겁게 느껴지는 요즘 사회다. 나를 향한 시선이 부담스럽고 모두가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해방의 전제 조건이 ‘추앙’이라 말한다. 어설픈 위로나 조언이 아니라, 조건 없이 서로를 우러러 받드는 추앙만이 우리를 어디서든 해방한다고 전한다. 만약 당신도 해방에 목말라 있다면 이 드라마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뇌어보자. 우리는 지금 서로를 향한 추앙,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한 추앙이 부족해서 무기력과 압박감이라는 고질병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정윤희 기자
ddulee3880@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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