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폭등 맞닥뜨린 한국 경제, 이대로 괜찮은가

인플레이션(이하 인플레)이 세계를 강타하면서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중이다. 미국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미국은 40년 만에 소비자물가지수(이하 CPI) 9.1%라는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하 미 연준)는 지난 7월 기준금리를 0.75%P 인상했으며 인플레 사태가 지속되는 경우 9월에도 기준금리를 인상한다고 예고했다. 한국도 지난 6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CPI 6.0%를 돌파했다. 미국의 CPI는 7월에 0.6%P 감소했으나 한국은 되려 전월 대비 0.3%P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한국의 인플레 대응에 이목이 쏠리는 상태다.

 

물가 폭등이 촉발한 금융 위기

 

물가가 급격히 폭등한 원인으로는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미친 다수의 국제적 사건들이 꼽힌다. 우선 원유와 식량의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에 돌입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급상승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상하이를 봉쇄한 것 또한 국제 공급에 영향을 미쳤다. 봉쇄로 인해 동아시아 지역의 물동량이 마비되고 중국 제조업의 효율이 저하됐기 때문이다. 감소한 공급과 달리 세계적으로는 코로나19가 보다 진정되면서 물자 수요는 증가했다. 이처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상하이 봉쇄와 같은 비경제적 영역의 영향과 총수요의 팽창이 맞물려 물가가 폭등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미국은 물가 인상 폭이 위험한 수준에 다다랐다고 보고 물가 안정을 위해 기존의 저금리 정책을 고금리 정책으로 선회했다. 지난 7월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0.75%P 올렸다. 이어 지난달 26일에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인플레 억제 노력이 가계와 기업에 고통을 줄 수 있지만 우리는 계속 우리의 임무를 해나가야 한다”며 고금리 정책 기조 추진을 암시했다.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서라도 금리를 인상해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의미다.

미국의 이러한 긴축 정책은 미국 통화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여 원·달러 환율 상승을 야기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2009년 금융 위기에 맞먹는 1,340원 안팎 수준에 올랐다. 한국은 글로벌 경제 위기에서 파생된 물가 상승에 미국의 긴축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까지 더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이른바 3고(高) 현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경제위기를 대하는 정부의 자세는 ‘자가당착’

 

윤석열 정부는 당선 후 인수위원회 기간 경제위기 해결을 대대적으로 선언했다. 지난 6월 윤 정부의 장단기 실행 과제를 담은 ‘경제 정책 방향’에 따르면 윤 정부는 경제 운용 주체의 민간 전환을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다. 당일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어려울수록, 위기에 처할수록 민간·시장 주도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확 바꿔야 한다”는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민영화를 통해 민생을 안정시키고 경제 성장 또한 촉진한다는 의도다.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는 무엇보다 물가안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윤 정부가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물가 폭등을 확실하게 억제하기 위해 여러 차례 기준금리를 0.75%P 올려 이른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은 미 연준과 달리 한국은행(이하 한은)은 ‘베이비 스텝’만을 밟고 있다. 한은은 지난 7월을 제외하고는 ▲4월 ▲5월 ▲8월에는 모두 기준금리를 0.25%P씩만 올렸다. 같은 물가 폭등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 연준과 다른 한은의 움직임에 일각에서는 한은이 현재 경제 위기 상황을 안일하게 여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인세 인하에 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 정부는 지난 6월 경제 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법인세율을 낮춰 이전 정부 동안 과도했던 증세 기조를 뒤바꾸고 기업의 투자를 증가시키겠다는 목적이다. 그러나 물가 안정을 위해 긴축 재정이 필요한 시기에 감소하는 세수 확보에 대응하는 적절한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윤 정부가 감소하는 세수를 메꾸기 위해 국유자산을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는 재벌의 배를 불리는 모양새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민생이 아니라 재벌을 위한 경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난 6월 개인 홈페이지에서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의 획기적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는 연구 결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윤 정부의 경제 정책에 의문을 표했다.

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역시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을 통한 공급 확대를 골자로 한다. 이러한 정책은 국민으로 하여금 주택 관련 대출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어 기껏 잠잠해진 부동산 시장을 다시 과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게다가 공급 확대를 정책 골자로 하더라도 3高 상황에서 대다수 국민의 가처분 소득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부유층의 부동산 매물 독점 우려 역시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렇듯 윤 정부의 경제 정책은 경제위기 극복과 자못 상반된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경제 붕괴의 잠재적 뇌관, 가계부채

 

가계부채는 금융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반드시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미국에서 시작돼 세계 경제에 강한 타격을 줬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이하 SMC)도 가계부채가 시발점이었다. 한은의 금리 인상은 가계 대출을 억제하고 저축을 활성화한다는 점에서 자기자본 대비 차입 비율을 낮추는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을 유도한다. 디레버리징은 가계가 이자를 피해 부채를 빠르게 축소하도록 유도하는 순기능을 할 수 있다. 즉 정부의 디레버리징은 인플레뿐만 아니라 가계부채도 해결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도로 비친다.

그러나 이는 경제 주체가 충분한 경제자산을 확보하고 있을 때 가능한 해석이다. 만약 가계의 경제자산이 부족하다면 디레버리징으로 겨냥한 채무 상환 효과가 막대한 이자 부담으로 상쇄될 수 있다. 현재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원인은 가계의 경제자산 부족에 가깝다. 해당 부채가 투자로 발생한 결과가 아니라 지속하는 경기 침체와 저임금으로 발생한 악성 부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리 인상으로 기대되는 디버레이징은 가계부채 문제에 오히려 역효과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가계가 부채에 취약해진다면 은행도 큰 타격을 입는다. SMC가 일어나기 전 미국에서 투자 분야가 급등했을 때 가계 대다수는 은행에서 돈을 차입해 투자를 감행했다. 하지만 이는 자산 거품이 꺼졌을 때 수많은 가계부채가 채무 불능 사태에 빠져 은행의 재정 건전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례로 SMC로 인해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 신청을 한 사건을 들 수 있다. 채무 불이행으로 은행이 도산하면 은행에 돈을 예치한 가계와 기업까지 손해를 봐 국가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수요 감소와 부실화는 이미 가시화됐다. 한은이 지난 8월에 공개한 ‘2022년 7월중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기타대출의 감소세가 가속하면서 전 금융권 가계대출이 약 1조 원 감소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전체 가구의 17.2%가 연평균 경상소득보다 원리금 상환액과 필수 지출액이 높은 적자 가구에 해당했다. 가계부채가 매우 부실하다는 증거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 경감을 위해 금융지원책을 도입하고 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면 일각에서는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미국으로의 재정 유출이 심화해 원화 가치 하락 및 인플레 가속화가 야기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지난달 이창용 한은 총재는 국회에서 “물가 수준이 6%를 넘으면 훨씬 더 큰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금리를 지속해서 올리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인플레가 약화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강행하겠다고 밝힌 한은의 입장과 환율을 위협하는 미국의 대폭 금리 인상은 당분간 금리 인상이 지속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전에 발밑부터 확인해야

 

세계적으로 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하는 가운데 한국의 경제 정책은 즉각적인 경제 활성화와 금리 인상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좇고 있다. 하지만 상반된 두 정책을 동시에 진행하는 현 상황은 환율 폭등과 가계부채 붕괴로 인해 하나의 위기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제 위기는 지속하는 저임금과 경기 침체로 인해 발생한 가계부채에 있는 만큼 거시적 지표 외에 민생을 해결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진퇴양난의 경제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해결책을 도출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신재용·박예나·유성규 기자
202115004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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