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전, 미중 외전 되나

지난 5월 15일 미국이 1년 만에 중국 IT 기업 ‘화웨이’를 겨냥한 압박정책을 추가했다. 이러한 미국의 행보가 기술패권을 의식한 조처라는 해석이 세를 키우며 미중 반도체 갈등이 외전(外戰)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미국은 2019년 1월부터 기술 측면에서 중국을 꾸준히 견제해 왔다. 당시 미국은 70여 계열사로 이뤄진 제재 명단에 화웨이를 포함했고, 자국의 기술유출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미 상무부가 해당 명령을 이행하면서 화웨이는 ▲퀄컴 ▲인텔 ▲브로드컴 등 미국에 위치한 글로벌 반도체 거래처를 모두 잃게 된 바 있다. 이후 화웨이는 미국 외 대륙의 거래처와 계약을 맺거나 자회사를 설립하는 등의 방법으로 반도체를 조달하기 시작했다. 일 년이 지나 미 상무부는 성명을 통해 중국의 반도체 조달 방식을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는 추가방침을 내놓았다. 기술패권 공고화를 위한 작년 조처의 연장선이라는 의견이 공신력을 얻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 기술 쓰지 마’, 미국의 엄포

미국 상무부는 지난 5월 15일 발표한 방침을 통해 미국 회사가 아닌 제3국의 반도체 회사라 하더라도 미국 기술을 부분적으로 활용했다면 화웨이에 제품을 판매할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화웨이 역시 미국의 기술을 활용하거나 관련된 반도체 제품을 구입할 때 미 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 국영 통신회사 3곳의 미국 영업을 정지하는 절차에 들어갔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 통신장비업체의 미국 내 영업을 사실상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년 5월까지 추가 연장했다.

로이터 통신을 비롯한 업계는 이번 조치가 대만에 위치한 반도체 회사 TSMC와 화웨이의 협력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웨이는 작년 미국의 행정명령 직후 새로운 반도체 위탁 업체로 대만의 TSMC를 선정해 생산 공정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인해 화웨이는 또 다른 방책을 찾아야 할 위기에 처했다. TSMC는 세계 1위의 *파운드리 업체이지만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AMAT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어 이번 개정 조치의 영향권에 놓이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업체인 SMIC조차도 화웨이가 필요로 하는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부품 관련 기술력이 부족하기에 자국 기업을 새로이 모색하기도 어렵다. 만약 미국이 압박을 더해 미국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를 생산하던 TSMC와 화웨이의 거래를 차단한다면 사실상 화웨이는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부품을 조달하기 어렵게 된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조치가 완전한 금지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국무부 당국자는 “이 규정은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허가가 반드시 거부된다는 뜻은 아니다”고 언급해 유연성을 열어뒀다. 실제 미 정부는 그동안 일부 미국 반도체 기업과 통신회사가 화웨이와 거래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준 바 있다. 상무부 또한 이번 조치에 120일의 유예기간을 둬 기업이 대비책을 마련할 시간을 부여했다. 이번 조치가 전면 무역 전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 방 맞은 중국, 대응책 세운다

미국의 이와 같은 조치에 중국 외교부와 상무부는 5월 16일과 17일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비합리적인 탄압을 중단하라”며 “중국은 모든 필요한 조처를 통해 중국 기업의 합법적 권익을 단호히 지킬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특정 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의 명단에 올려 제재를 가하거나 ▲애플 ▲퀄컴 ▲시스코와 같은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매스컴의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즈는 중국에서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기 위해 핵심 기술의 완전한 탈 미국화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미국이 제재를 발표한 5월 15일 SMIC는 중국국가집적회로 펀드를 통해 약 1조8천500억 원의 투자를 받았으며 상하이집적회로 펀드를 통해서도 약 9천억 원을 제공받기로 했다. 이외에도 ▲양쯔메모리 ▲푸젠진화 ▲이노트론과 같은 중국 신생 기업도 50~70조 원을 기술 개발과 공장 설비를 위해 투자받았으며 이동통신업체 차이나 유니콤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와 6G 네트워크 연구개발에 협력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이번 제재로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 예측되는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최신 5나노 공정으로 지어질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결정하며 중국이 아닌 미국 측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대만이 베이징 당국에 맞서 미국의 우방을 자처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고래 싸움에 한국 등 터진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서 한국도 난감한 입장에 서게 됐다. 한국이 비록 미국의 우방국이지만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은 한국으로부터 수조 원 규모의 반도체를 사들이는 고객이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이뤄진 미국의 조치가 작년에 이어 한국 경제에 다시금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제시한 세계 20대 교역품목의 한국 시장점유율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반도체의 한국 시장점유율은 31.34%로 1위였으며, 2019년 수출내역 중 반도체가 18%를 차지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반도체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가 가장 큰 반도체 시장인 중국을 잃는다면 그 여파가 매우 거셀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암울한 예측이 주를 이룬 가운데 미중 간의 다툼이 국내기업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단기적인 매출 감소를 감내하면 장기적으로는 점차 국내 업체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늘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영건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시장에서 화웨이와 삼성전자의 경쟁 관계가 성립”한다며 “화웨이가 스마트폰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유럽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반사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이치로 중국이 애플에 대해 보복 제재를 가한다면 한국 스마트폰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도 존재한다.

상반되는 예측이 혼재하는 가운데 한국 외교부는 갈등 상황 대응을 위한 외교전략조정회의 가동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중 양자택일하기를 요구받을 경우에 대한 대비로 풀이된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5월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필요한 사항을 재외공관에 지시”했으며 “조정회의 가동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 작업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런 상황을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삼성전자는 현재 중국 시안 지역에 유일한 해외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장을 두고 있다. 미국의 조치가 시행되면서 시안에는 기술진이 급파됐고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방문하는 등 공정에 박차를 가했다.

 

투명한 갈등, 불투명한 미래

반도체 대전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와 홍콩 국가보안법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며 미중 외전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KCIF)에서 발표한 보고서 다수에 따르면 미중 갈등이 ▲국제정치 ▲금융 및 투자 ▲공급망 ▲통상 및 기술 4개 부문에서 격화하리라 전망했다. 특히 공급망과 통상 및 기술 측면에서는 반도체 대전이 미중 외전의 단초가 될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KCIF는 미국이 자국기업의 탈중국화를 유도하고 동맹국에게 참여를 요청하면서 공급망을 조정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미국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의 수출입 통제를 현재 수준보다 강화하고, 중국은 이에 맞서 자국 내 외국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면서 디지털 장벽을 견고히 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대전을 시작으로 미중 양국의 대대적인 경쟁이 예고되는 가운데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모할지 관심이 모인다.

 

*파운드리 : 반도체 산업에서 외부 업체가 설계한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공장을 가진 전문 생산 업체를 뜻한다.

 

 

권민규·황제동 기자

dmaria474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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