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 처벌의 균형을 찾아서

  최근에 논란이 된 음주운전과 심신미약의 배경에는 국민의 법감정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사회의 법과 판례들이 있다. 음주운전과 심신미약을 둘러싼 논의를 ▲관련 사건의 발단 ▲관련 법과 판례 ▲변화의 움직임의 순으로 다뤄본다.

사람이 죄지 술은 무슨 죄냐?

  9월 25일 새벽 2시, 부산 해운대구에서 술에 만취한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인도에 서 있던 정경대학 학우 윤창호 씨와 그 친구를 덮쳤다. 윤창호 씨는 가해 차량과의 충돌로 인해 서 있던 위치에서 약 15m를 날아가 머리부터 추락해 머리를, 친구 또한 하체를 심하게 다쳤다. 사고 당시 승용차의 운전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34%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고 동승자 역시 만취 상태였다. 사고일로부터 일주일 뒤인 10월 2일, 윤창호 씨의 친구들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을 올렸다. 청원은 이후 여러 커뮤니티와 언론에 소개됐고 40만 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국민적 관심에 그동안 미뤄져 왔던 음주운전 처벌강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윤창호 씨의 친구들이 올린 청원 글의 주요 문제의식은 음주운전 처벌이 가볍다는 것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사고는 19,517건으로 이로 인해 하루 평균 1.2명이 사망했고 91.4명이 다쳤다. 음주운전 사망사고의 경우 대부분 징역 8개월에서 2년 정도의 형이 선고된다. 그러나 합의 등을 사유로 77%가 집행유예로 석방된다. 또한, 음주운전은 높은 재발률은 보인다. 음주운전 재발률은 2016년 기준 50.59%이었으며, 작년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된 운전자 205,187명 중 44.7%가 재범이었다.

가중하지 않는 가중처벌

  현행법상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 규정은 ▲도로교통법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하 교특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에 명시돼있다. 도로교통법은 음주운전을 2회까지 초범으로 보는 규정과 함께 ▲혈중 알콜 농도가 0.05% 이상 0.1% 미만일 경우 6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혈중알콜농도가 0.1% 이상 0.2% 미만일 경우 6개월 이상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상 500만원 이하의 벌금 ▲혈중알콜농도가 0.2% 이상일 경우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천만원 이하의 벌금 등의 처벌규정을 명시한다.

  음주운전을 할 경우 도로교통법뿐만 아니라 교특법에 의해 처벌받거나,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에는 특가법상 위험운전 치사상죄가 적용된다. 교특법에 따르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거나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운전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빈발하고 기존 교특법상 처벌규정이 약하다는 논란이 일며 음주 운전자에게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 특가법이 도입됐다. 특가법의 처벌규정은 ▲음주운전 중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음주운전 중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등으로 기존 교특법을 적용했을 때보다 무거운 형량을 구형할 수 있다.

  그러나 특가법을 도입했음에도 교특법과 실질적인 양형기준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오기찬 검사의 ‘음주교통사망사건의 양형’에 대한 발표에 따르면 음주운전에 대한 평균 법원 선고형은 교특법상 12.5개월, 특가법상 15.1개월에 그친다. 교특법과 특가법이 중첩돼 어떤 법이 적용될지도 법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도로교통법에서도 음주운전 처벌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음주운전 2회까지를 초범으로 규정 ▲지나치게 가벼운 혈중알코올농도 기준과 처벌규정 ▲살인죄의 미적용 ▲동승자에 대한 처벌의 부재 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계속돼왔다. 이미 국회에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17건이 발의돼 있을 정도로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는 줄곧 있었지만 제대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못했다.

  윤창호 씨의 친구들은 현행법에 대해 지적되는 것들을 바꾸고자 ‘윤창호법’의 발의와 함께 현 음주운전 관련 법안의 개정을 위해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메일을 전 국회의원에게 보냈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이러한 요청에 자신이 윤창호법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키고자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으며, 10월 22일 104명 의원의 이름으로 발의하는 데 성공했다. 발의안에는 ▲음주운전 초범 규정을 2회에서 1회로 변경 ▲음주 수치를 기존 0.05%, 0.1%, 0.2%에서 0.03%, 0.09%, 0.13%로 변경 ▲음주운전 치사 사건의 처벌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변경 등의 내용이 실렸다.

삼권의 논의, 음주운전 처벌 변할까?

국회의 법안 발의에 이어 정부와 사법부도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청원에 대한 답변에서 현 제도가 국민 기대에 많이 못 미치는 것 같다며 문제의식에 동의했다. 박 장관은 또한 처벌강화법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국회에서 논의할 때 법무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청원에 힘을 실었다. 4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요구에 문재인 대통령 역시 반응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는 음주운전을 실수로 인식하는 문화를 끝내야 할 때”라며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의 특성상 재범 방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얘기했다. 사법부 또한 해당 논의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소속의 양형연구회는 이달 19일 ‘음주와 양형’을 주제로 학술대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국회, 정부, 사법부에서의 논의가 어떤 결론을 맺을지 이목이 쏠리는 시점이다.

또다시 불거진 논란. 아직도 미약한 심신미약 관련법

  현 형사사법체계는 정신장애범죄자에게 형벌을 부과하지 않거나 필요적으로 감경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심신장애인을 다루고 있는 형법 제10조는 제1항에서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며 제2항에서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심신장애는 명확히 정의돼있는 것이 아니기에 구체적 적용은 판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심신장애·미약에 대한 논란은 이러한 모호한 기준에서 계속돼왔다. 최근에 일어난 강서구 PC방 사건, 거제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심신장애·미약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지금까지 판례에 의해 쌓여온 국민의 분노의 분출이다.

  지난 10월 14일,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고객이 카운터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하 강서구 PC방 사건)이 일어났다. 피의자에 따르면 살해 동기는 해당 아르바이트생이 불친절했고 PC방 비용 1000원을 환불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피의자와 피해자가 실랑이하는 사이 피해자의 동생이 불렀던 경찰이 도착해 피의자를 PC방으로 데리고 나오자 피의자는 집으로 돌아가 흉기(등산용 칼)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피의자는 PC방 근처에 숨어 있다가 피해자가 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로 나오자마자 달려들어 흉기로 얼굴, 목, 손 등을 30여 번 찔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와 피의자가 이전까지 면식도 없던 사이였던 사실상 ‘묻지마 살인’이라는 점 ▲경찰의 초동 대응과 사후 대처가 미흡했다는 점 ▲경찰 측이 이를 덮으려 했다는 의혹 등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전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 와중에 피의자가 10년간 우울증약을 복용했던 환자이며 심신미약이라는 점을 경찰에서 호소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심신미약에 대한 논의가 불거졌다.

  형법 10조에 의거하면 심신미약과 같은 심신장애는 형의 필요적 감면 사유이다. 즉 피의자가 일단 심신미약으로 판정을 받아 한정책임능력자로 인정받으면 판사는 형을 감경해야만 한다. 강서구 PC방 사건의 피의자가 이를 이용해 형을 감경을 받으려고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온 이유다. 청원은 강서구 PC방 사건을 언급하면서 심신미약을 감경해주는 현행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현재 해당 청원은 단 하루 만에 청와대 공식답변 요건인 20만 명의 동의를, 곧이어 10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역대 청와대 국민청원 최다인원 참여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해당 청원이 우려하는 것처럼 강서구 PC방 사건의 피의자가 심신미약 판정을 받을 확률은 낮다고 평가한다. 검사 출신 국회의원인 강서구 금태섭 의원은 “심신미약을 인정받으려면 환각이나 환청과 같은 증상이 있거나 충동 장애와 같은 사유로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므로 우울증약을 처방받은 정도로는 심신미약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달 4일, 경남 거제에서도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다.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새벽에 50대 여성을 폭행해 숨지게 한 것이다. 경찰은 피의자를 현행법으로 체포해 상해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살인은 했으나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피의자의 진술을 바탕으로 심신미약 상태로 판단되며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가해자가 여성의 머리와 얼굴 등을 집중적으로 폭행했다는 점과 범행 며칠 전과 전날 휴대전화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등을 검색한 것을 바탕으로 살인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해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불분명한 기준, 불행한 사회

  과거의 사례들은 강서구 PC방 사건과 거제 살인사건의 심신미약 판단 여부가 전적으로 재판부에 달려 있음을 보여준다. 2008년의 ‘조두순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심신미약을 인정하고 징역 12년으로 형을 감경했다. 피고인이 사건 당일 만취해 사물을 변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2013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범죄를 범한 때에는 형법 제10조 제1항·제2항 및 제11조를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로 개정됐다. 그러나 이는 성폭력범죄에만 해당하는 한정적인 경우로 이외의 경우에 심신미약은 필요적 감면 사유이다. 2016년의 ‘강남역 살인사건’의 판례가 그 예다. 당시 법원은 피의자에게 조현병 등 심신미약의 이유로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이 아닌 징역 30년형만을 선고했다.

  심신미약 감경에 관한 논의는 강서구 PC방 사건 이전부터 계속돼왔다. 주로 심신미약 감경 기준의 명확성에 관한 논의였다. 심신미약의 형법상 판정요건은 생물학적 요소인 ‘심신 장애’와 심리적 요소인 ‘사물 변별 능력·의사결정 능력의 미약’을 동시에 인정받는 것이다. 생물학적 요소인 전자는 통상적으로 의사가 판단하지만, 심리적 요소인 후자는 주로 재판부의 법리적 판단에 맡긴다. 즉 ▲심신장애 ▲사물 변별 능력 ▲의사결정 능력이란 기준이 구체적으로 개념화돼있지 않고 모호하게 명시되면서 실제 감형이 이뤄질 때 논란이 발생한다. 재판부에 의해 감형이 이뤄진 ‘조두순 사건’과 같은 경우 판결이 일반적인 법감정과 어긋나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현행 심신미약 판정을 둘러싼 불명확성은 전사회적 사법 불신부터 심신미약 감형에 대한 부정적 인식, 심지어는 심신미약자 자체에 대한 혐오 등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100만 명이 참여한 강서구 PC방 사건 청원에 힘입어 심신미약에 관한 개정 논의가 다시 활발해졌다. 이에 호응해 국회에서 심신장애자의 범죄행위에 대해 의무적으로 감형하는 조항을 바꾸자는 형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됐다.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이 의무적인 현행 조항을 ‘감형할 수 있다’는 임의 조항으로 개정하는 것이다. 해당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은 개정안의 취지가 해당 행위에 대해 더욱 유연한 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이 심신미약 관련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형법 제10조의 규정을 재판부 재량에 맡기거나, 음주 등의 약물에 의한 심신장애는 감형하지 않는 조항을 추가시키려는 등 많은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전의 개정안들은 모두 시도에 그쳤을 뿐 실제로 통과돼 적용된 것은 없다. 이번 강서구 PC방 사건을 계기로 다시금 심신미약에 대한 논의가 촉발된 만큼 과연 이번 개정안이 이제는 통과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개선의 목소리, 이번에는 변할까?

  법원은 “심신장애의 유무는 법원이 형벌 제도의 목적 등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할 법률문제로서 그 판단에 전문감정인의 정신감정 결과가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기는 하나, 법원이 반드시 그 의견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한 감정 결과뿐만 아니라 범행의 경위, 수단, 범행 전후 피고인의 행동 등 기록에 나타난 여러 자료 등을 종합하여 독자적으로 심신장애의 유무를 판단하여야 한다”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심신장애·미약의 가능성이 보이는 사건에 재판에도 앞서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법원이 지금껏 해온 ‘독자적인 판단’이 우리 사회에 만든 불신의 정도를 보여준다. 국민의 법감정에 사법부의 독립성이 지나치게 훼손돼서는 안 되겠지만, 현재 법조계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조차 법원이 지나치게 독단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과 관련해 “이번 기회에 심신미약의 판단 사유를 구체화하고 단계화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심신장애·미약의 판단의 명확한 기준의 정립과 그에 따른 조각과 감형의 적용에 대한 고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강민정·김원섭·이풍환 기자
khangmj0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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