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어가는 사회복무요원제도

지난해 11월 사회복무요원제도의 근거법이 국제법규를 위반한다는 주장과 해당 제도의 즉각적인 폐지 요구를 담은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는 한편 사회복무요원의 신분을 군인과 노동자 중 무엇으로 봐야할지 논쟁이 이어졌다. 이외에도 여러 문제가 제기되며 제도 전반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에 The HOANS에서 사회복무요원제도를 둘러싼 논란들을 살펴봤다.

 

바람 잘 날 없는 사회복무요원 제도

 

사회복무요원 제도란 1995년 이전까지 존재했던 방위병 제도를 계승한 정책이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치된 이들은 병역법 제26조에 따라 국가 공공기관 및 사회복지시설 공익 목적 근무에 배치되며 사회 서비스 및 행정업무 등으로 병역의무를 수행하게 된다. 병역판정 신체검사 결과 4급 판정받은 보충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21개월간 주로 ▲사회복지 ▲보건의료 ▲교육문화 ▲환경안전 ▲행정 등 분야에서 근무한다.

질병 및 심신장애 등으로 사회복무요원에 배치된 이들은 그간 여러 문제 속에서 고통받아왔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복무요원 배치에 있어 개인별 업무 적합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점이다. 병역법 제15조 별표1에 따르면 임무 부여 시 주의사항으로 사회복무요원의 신체 정서적 특성 및 임무 수행 능력 등을 고려하여 임무를 부여할 것이 명시돼있다. 그러나 해당 조항이 유명무실하다는 바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서초1동 사회복무요원 사망사건에서 드러나듯 우울증으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요원에게 민원 담당 업무를 부여하는 등 해당 조항은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교육부 방침을 거스르고 특수교육 전공자가 아닌 이에게 특수학교에서 장애 학생 교육 보조 업무를 맡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경기도의료원 의정부병원 사건처럼 사회복무요원에게 공공기관 개인정보를 다루게 하는 등 민원인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는 부당한 업무 배정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공무원과 사회복무요원 사이 갈등도 만만치 않다. 공무원들이 사회복무요원에게 과도한 업무를 분담시키거나 인격 모독을 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아서다. 실제로 2020년부터 사회복무요원을 상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도록 지시한 이천시 공무원이 고소장 접수 후에도 폭언을 일삼아 논란이 된 바 있다. 반면 불성실한 근무태도로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인식이 악화한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에는 자신의 주간 근무일지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무단 공개한 사회복무요원이 화제가 된 바 있다.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갈등 해소를 담당하는 일차 기관이 해당 기관 소속 공무원인 까닭에 복무지도관 제도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렇듯 사회복무요원은 군인도 민간인도 아닌 애매한 신분 탓에 법률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ILO 협약 비준, 강제노동 논란

 

2013년 사회복무요원 명칭이 공식화된 후 ▲업무 부적합성 ▲갑질 및 괴롭힘 ▲공무원과 마찰 문제 등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둘러싼 사건 사고가 계속돼왔다. 아울러 사회복무요원 제도 정당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1월에는 헌법소원심판청구서가 제출됐다. 핵심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미비준에 따른 강제노동으로 요약된다. ILO는 인권 보장을 목표로 최소한의 노동 기준 8개를 핵심 협약으로 규정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2021년 4월 기준 ILO 회원국 76%가 8개 핵심 협약을 모두 비준한 가운데 한국은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제87호, 제98호)와 강제노동(제29호, 제105호)과 관련한 협약 체결을 미뤄왔다. 국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협약에 배치되는 소지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협약 비준 노력이 부족하다는 EU의 지적에 따라 2021년 4월 20일 양대 노총 사용자 단체와의 협의로 관련 법을 개정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과 관련된 제29호 비준안이 포함됐다.

1월 헌법소원심판청구서가 제출되면서 강제노동 논란이 재점화했다. 특히 강제노동 협약 제29호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해당 협약은 “처벌의 위협하에서 강요받았거나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모든 노동이나 서비스”를 금지하되 예외 항목으로 “전적으로 군사적 성격의 작업에 대해서 의무병역법에 따라 강요되는 노동 또는 서비스”를 두고 있다. 그러나 사회복무 제도에서 노동력 제공 범위는 ▲공공기관 ▲사회복지시설 ▲아동기관 ▲지하철 등으로 ‘군사적 업무’ 수행이 아니라는 점에서 강제노동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2020년 7월 병역법 개정안을 통해 사회복무요원 대상자에게 현역 복무 선택권을 부여하면서 개인의 특권이자 자발적 노동임을 주장해오고 있다. 이에 대해 사회복무노동조합은 건강상 이유로 현역 복무 불가능한 대상자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행위는 암묵적 강요이며 ILO에서 과거 유사한 복무제도를 협약 위반으로 판단한 전례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렇듯 강제노동 여부를 두고 정부와의 논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내법적 효력을 지니는 국제법규 위반 여부에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관심이 집중된다.

 

군인인가? 근로자인가?

 

지난달 7일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의정부 지청에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했으나 결국 반려됐다. 의정부 지청은 “사회복무요원의 직무상 행위는 공무수행으로 보고 공무원에 준하는 공적 지위”를 가지기 때문에 노조법 제2조 제1호에서 규정하는 근로자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ILO에 개정 병역법의 국제협약 위반 여부를 제소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노조 자격이 필수인 만큼 앞으로도 노조 설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 위원장 전순표(언어 17) 씨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행정 소송을 통해 대응할 예정이라며 노조설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어 법외노조로써 ▲언론 활동 ▲노조 차원의 피해자 구제 ▲병무청에 단체교섭을 이어갈 계획이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업무 보조를 담당하는 그는 “‘기타 기관에 필요한 업무’라는 명칭 아래 광범위한 업무가 할당되고 있다”며 업무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개인정보 취급업무, 사고위험 업무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기관이 병무청뿐이라 실질적인 견제가 불가능하다“며 부당한 업무 지시가 계속될 수밖에 없음을 언급했다.

사회복무요원이 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로 볼 수 있을지는 오랜 논쟁이 있어 왔다, 과거 병역법 제33조 제2항에 따라 사회복무요원은 “정치단체 가입 및 정치 목적을 지닌 행위가 금지”되었으나 2021년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을 기점으로 노동 운동이 일부 허용되며 판도가 뒤집힌 바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규정하는 근로자에 사회복무요원이 포함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명확한 상황이다. 국내법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과거와 달리 한국에서도 협약 비준이 이뤄지며 이 같은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의 추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소통창구 마련과 제도개선이 시급한 시점

 

대체복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효율, 부적합성 문제뿐만 아니라 해당 제도의 국제법규 위반 소지까지, 사회복무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이슈를 넘어 고질적인 사회 문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끊이지 않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병역법 개정을 통해 사회복무요원 제도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공고히 하고 있다. 강제노동 소지가 해소됐다는 정부 입장과 사회복무요원 대상자,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하지만 이를 해결할 소통창구는 부재하는 상태다.

현행법상 병역 의무 하에서 국방과 무관한 사회·공익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체 복무 형태가 확산하면서 국방 이외에 목적으로도 국민의 노동력이 무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국민의 의무를 예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의 체계에 어긋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처럼 시대와 복무 형태 변화에 따라 적절한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정부는 병무청의 입장과 복무 대상자의 의견 등을 종합해 사회복무요원 제도 근간을 점검하고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주력해야 한다.

 

유민제·정채빈 기자
estrella00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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