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회계비리 무더기 적발, 엄중한 시정 要

7일 교육부가 공개한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 및 고려대학교 회계부분감사 결과’를 통해 본교가 심각한 수준의 회계 비리를 저질러 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문건은 교육부가 작년 6월 27일부터 8일간 시행한 회계 감사의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사학재단 감사의 경우 적발 사항에 대한 사학 측의 이의 제기 및 소명 기간을 가져야 하므로 10개월가량이 지나 공개됐다.

본교는 법인회계 및 재산관리, 교비회계 등과 관련하여 총 22건의 사항을 지적받아 시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 일부 교직원·고위 교수들에 의한 교비 부당 집행에 대한 지적이 유독 이목을 끌고 있다. 부속병원 소속 교직원 13명은 유흥주점 및 단란주점에서 22차례에 걸쳐 약 631만 원의 금액을 법인카드로 결제한 사실이 적발돼 해당 금액을 부속병원회계에 세입조치할 것을 명령받았다. 교원 1명은 35차례에 걸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출퇴근 목적 KTX 이용료 500여만 원을 업무추진비에서 집행해 회수를 명령받았다. 또 한 교수는 연구과제 회의록을 허위로 작성해 국가연구과제 회의비 약 3040만 원을 부당집행해 징계에 처해질 예정이다. 이외에도 ▲입시 전형료를 집행 가능 항목이 아닌 ‘연구수당’ 및 ‘홍보수당’으로 사용한 사실 ▲전임 비서실장의 퇴임을 기념하는 사적 선물을 교비회계에서 집행하기 위해 교직원 여럿이 조직적으로 공모한 사실 ▲교직원의 경조사비·친목회비 등을 등록금회계에서 집행한 사실 등이 밝혀졌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부당하게 집행한 교비회계는 학생 납부 등록금과 국고 보조금 등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해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의 회계 비리가 공공연하게 자행될 수 있었던 구조적 원인으로는 사립대학의 회계 공정성을 담보할만한 법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사립학교법(이하 사학법)에 따르면 학교법인은 매 회계연도의 결산을 공시할 때 외부의 공인회계사로부터 받은 감사보고서를 첨부해야 한다. 다만 문제는 대학 측이 스스로 감사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의 정부 차원의 감사는 필요한 경우에만 실시한다. 실제로 교육부가 2017년 1월부터 2018년 7월까지 30개 사립대학을 감사한 결과 지적 사항이 350건에 달했으나 같은 기간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시행한 외부 회계감사의 지적 건수는 7건에 불과했다. 이에 교육부 차원의 사립대학 종합감사를 정례화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고질적 문제인 교육부 관료들과 사립대학 사이의 유착 관계에 대한 지적도 있다. 8일 보도된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 공동의장인 이광수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는 “교육부 관료가 한 사립대학의 비리를 대강 봐주고 나중에 그 대학의 총장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라고 전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사립대학과 교육부 사이의 담합이 너무 강한 상황에서 회계감사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다”라고 발언했다. 실제로 본교를 포함한 국내 125개의 사립대학은 지난 35년간 교육부의 종합감사를 단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 본교의 경우 작년의 감사가 설립 이후 처음 받게 된 회계감사였으며 그마저도 종합감사가 아닌 부분감사에 해당했다.

교내외로 이번 사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정진택 총장은 9일 오후 본교 포털을 통해 ‘고대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게재했다. 사과의 말로 글을 시작한 정 총장은 교육부 지적 사항에 대해 시정 및 제도 보완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리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교직원들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또 정 총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회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혁신위원회(가칭)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총장의 발 빠른 사과가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본교 졸업생 김형중 씨(사회 13)는 “이번 사건으로 인한 비난은 고려대학교 전체로 향하기 때문에 학교는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며 개탄스러운 심정을 보였다. 또 “재정 운영에 대한 신뢰 없이는 학생들이 학교의 각종 정책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라며 이번 사건이 재정 운영의 건전성이 확립되길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본교 총학생회 역시 9일 오후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라며 추후 행보를 이어나갈 예정임을 밝혔다.

이번 감사결과는 그간 있다고 짐작만 됐을 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본교 재정 운영의 구조적 결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교직원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낱낱이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강사법 실행에 따른 과목 개설 축소 ▲이공계 실험환경 개선 ▲정경대학·문과대학의 공간부족 문제 등의 주요 의제에 대해 줄곧 ‘예산 부족’이라는 입장을 내세워 온 본부였던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는 것은 불가피한 결과일 것으로 보인다. 추락한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난 과오에 대한 엄정한 시정과 개선에의 노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박지우·이서희 기자

idler994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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