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북한, 대북 제재 효과 보나

밖에서도 안에서도 과격해진 북한

 

북한의 외교가 강경해지고 있다. 지난달 19일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불법자금세척 혐의를 받는 북한인 문철명 씨의 신병을 미국에 인도한 말레이시아를 비난하며 단교를 선언했다. 북한의 극단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외교적 행태는 오래됐지만 단교라는 외교적 초강수를 둔 것은 1975년 돌연 이뤄진 호주 단교가 유일한 사례였다. 다른 사례는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 북핵 및 미사일 개발, 인권 탄압 등에 대한 문제 제기로 타국에서 북한에 먼저 단교를 선언한 경우였다.

이번 북한의 단교 선언은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기존 관계를 고려했을 때 더욱 놀라운 결정이었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은 지난 1973년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일어난 김정남 암살 사건과 그로 인한 일련의 사건으로 두 국가는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형식적 수교 관계는 유지했다. 그러나 암살 사건도 깨뜨리지 못한 두 국가의 관계가 문 씨의 미국 송환으로 끊어지고 말았다.

북한이 의외의 강경책을 택한 이유는 최근 북한이 보이는 강압적인 대내 정치 행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지난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경제 개발 목표가 “모든 부분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고 자인하며 당 간부들을 질책하고 대북 제재를 비판했다. 이후 북한 노동신문에는 이전에는 없던 ‘지상연단’이라는 코너를 신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경제 현장에 관계된 당 간부들의 자아비판을 실었다. 김정은 집권 초기 처형 정치와는 다르지만 하급 간부에게까지 충성 서약을 요구하는 공포정치의 한 형태라는 지적이다. 권력을 공고화한 이후 ‘애민’ 이미지를 추구한 김정은이 공포정치를 다시 꺼낸 것은 8차 당대회에서 자인했듯 심각한 북한의 경제 상황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경제적 실패로 내부의 불만이 커지자 외부의 적인 미국을 다시금 상기시키기 위해 외교적으로도 극단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북 제재는 어떻게 이뤄져 왔나

 

북한 경제난의 원인에는 사회주의 독재 국가라는 근본적 한계도 있지만 북핵 제재 조치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북한에 대한 첫 결의안은 1993년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직후 나온 825호 결의안이었다. 825호에서 유엔 안보리는 즉시 북한이 NPT 탈퇴 선언을 재고하고 국제 원자력 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었기에 북한에 별다른 압박을 주지 못했다. 1994년에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에 근접한 북미 제네바 합의가 있었으나 양측의 합의 불이행으로 불과 9년 만인 2003년에 전격 파기됐고 동시에 북한은 NPT를 완전히 탈퇴했다. 이후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남북과 중국, 미국 등 한반도 주변 6개국이 참가하는 6자회담이 열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논의했으나 북한의 핵실험이 지속되면서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결국 유엔 안보리는 처음으로 북한 관련 제재인 1718호 결의안을 꺼내 들었다. 해당 결의안에는 북한의 미사일 및 대량살상무기 관련 물자 이전과 금융거래 금지, 북한 화물에 대한 검색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동년 7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규탄하는 권고 성격의 1695호 결의안에서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첫 제재안 이후로도 북한의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실험이 계속됨에 따라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도 점차 강화됐다. 먼저 1718호에서 부과됐던 무기 금수 조치가 2009년 2차 핵실험에 대한 1874호 결의안에서 확대됐다. 기존에는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와 관련 물자만 금수 조치 대상이었으나 1874호 이후 소형 무기와 경화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무기의 북한 수출과 이송이 금지됐다. 허용된 무기마저도 최소 제공 5일 전 안보리 제재위원회에 통보케 했다.

화물 검색과 금융제재 분야에서도 대북 제재는 점차 강도를 더해갔다. UN은 2009년 1874호에서 기존의 ‘요구’가 아닌 ‘촉구’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화물 검색 조치를 강화했다. 또한 2016년 북한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에 대한 2270호 결의안에서는 아예 화물 검색을 의무화하고 육해공 운송을 모두 통제했다. 금융제재 분야에서는 2012년 3차 핵실험에 대한 2094호 결의안에 핵 및 탄도미사일 개발에 관련된다고 ‘의심되는’ 모든 북한 금융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재 대상도 확대됐다.

북한의 주요 자원인 석탄의 수출과 석유의 수입에도 제재가 가해졌다. 2016년 5차 핵실험에 대한 2321호 제재안에서 처음으로 북한의 석탄 수출의 상한선이 도입됐으며 2017년 6차 핵실험에 대한 2375호 제재안에서 대북 석유 제품 공급량이 연 200만 배럴로 제한됐다. 이후 동년에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에 대한 2397호 제재안에서는 석유 제품 공급량이 50만 배럴까지 감축됐고 원유 공급량은 400만 배럴 상한선이 도입됐다.

북한에 대한 상품 수출이 제재되는 가운데, 북한의 외화 수입을 막기 위해 북한 제품 수입 제재도 조치에 포함됐다. 2017년 2375호 제재안으로 북한의 섬유제품 수출이 금지됐으며, 2397호 제재안으로 해외의 북한 노동자까지 2년 이내 귀환 조치가 내려지면서 북한의 외화 수입이 완전히 막혔다. 이외에도 북한 주요 수출 품목인 해산물과 철광석 수출 금지 조치, 합작 사업 중단 요구 등 다양한 경제적 제재 조치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함께 가중되며 북한 경제를 옥죄었다.

 

거칠고 불안한 북한, 그걸 지켜보는 3국

 

점차 강해지는 제재 속에서 북한은 대내외로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지난해 10월 아일랜드의 국제인도주의단체 컨선월드와이드가 발표한 2020년 세계기아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기아 상태가 ‘심각’ 수준에 이른 국가로 분류됐다. 북한의 영양결핍 인구 비율은 47.6%로 차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Q)가 지난 1월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식량안보와 영양’에서도 2017년에서 2019년까지 북한 주민의 약 47%가 영양부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34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였으며, 북한 다음으로 영양결핍 인구가 많은 국가와 비교해도 15%p 높게 나타났다. 5세 미만 아동의 발육부진 비율 역시 19.1%로 동아시아 평균보다 4배 정도 높았다. 대외 무역에서도 2018년 대비 2019년 북한의 무역총액은 남한의 1/326에 불과한 수준으로 감소했다. 석탄 및 철광석 생산량 역시 감소세를 기록하며 전반적인 경제 지표가 악화하는 현상이 포착된다.

심각한 상황 속에서 북한과 관련이 깊은 이해 당사국인 한미중은 각기 다른 대응안을 내놓고 있다. 한국은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6년 유엔 안보리 제재의 충실한 이행을 명분으로 독자적인 대북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 이후 정부는 독자 제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며 남북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앞장섰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 비핵화 이전까지 제재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며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를 나서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트럼프 행정부와 사뭇 다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질문에 “북한이 긴장 고조를 선택한다면 그에 상응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대화를 포함한 일부 형태의 외교에도 준비가 돼있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이 역시 비핵화라는 조건에 근거해야 함을 강조했다. 중국은 북한 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으나 북한의 핵실험과 같은 특수한 이벤트가 발생할 때 제재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이 석탄과 석유를 수출입하는 우회로를 제공한다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곤궁한 형세, 북한의 향방은

 

한때 대한민국보다 나은 경제력을 보유했다고도 평가받던 북한은 현재 국제적 제재 속에서 세계적 빈국으로 여겨진다. 김정은 위원장은 경제 회복을 얘기하며 연일 관료와 북한 주민을 채찍질하지만 가장 커다란 장벽이자 제재의 원인인 핵 개발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북한을 고립시키는 제재가 계속되며 경제 지표가 날로 추락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과연 무용론에 시달리던 제재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북한의 상황이 주목받고 있다.

신형목·김준범·김원겸 기자
mogi200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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