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깃발, “문화에 집중”하기 위해?

이달 12일 본교 글로벌서비스센터 산하 교환학생 교류회(Korea University Buddy Assistants, 이하 KUBA)가 주최하는 제23회 International Students Festival(이하 ISF)이 진행됐다. 작년에 불거졌던 티베트 기 관련 갈등에 비춰 올해 ISF에 취해진 조치에 제기된 지적을 검토해봤다.

본교는 지난해 ISF 직후 중국 출신 학생들의 거센 항의와 마주했다. 행사에 설치된 여러 부스 중 하나였던 티베트&인도 부스가 발단이었다. 중국 부스와 별개로 티베트 고유의 문화를 소개했던 해당 부스에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설산사자기가 걸렸다. 이는 중국의 주요 대외정책인 ‘하나의 중국’ 정책에 반하는 행동으로 비치며 중국 학생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샀다. 주한중국대사관이 개입하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대사관 측은 중국 학생들의 제보를 받고 행사 익일 본교를 방문해 상황 설명과 후속 조치를 요청했다. 결국 본교 글로벌서비스센터가 중국 학생들에게 ▲부스 배정 기준은 국적과 영토가 아닌 차별성 있는 문화였고 ▲본교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하는 입장이며 ▲중국 학생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것에 대한 사과한다는 내용을 담은 메일을 일괄 송부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됐다.

일련의 사건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은 크게 엇갈렸다. 중국 학생들은 ‘티베트 부스 운영을 허용하고 설산사자기의 사용을 묵인한 것은 중국의 영토권과 주권을 저해하는 행위’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동시에 영향력 있는 학생 조직인 KUBA가 주최한 국제 행사 현장에서의 실수는 외교로 해결해야 하기에 대사관의 개입이 정당하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반면 KUBA 측은 티베트 부스의 독립적 운영이 티베트를 국가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며 중국 학생들의 오해에 안타깝다는 뜻을 전했다. 또한 행사 준비 기간에도 문제를 제기할 기회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관까지 개입하며 외교 문제로 번진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본교는 올해 ISF 내에서 모든 형태의 깃발 사용을 금지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상징인 설산사자기의 사용이 논란의 초두가 됐던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깃발과 더불어 지도의 사용도 금지됐다. 국적과 영역의 문제에서 촉발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함이다. 본교 커뮤니케이션팀은 “국적이나 정치적 논리에서 벗어나 문화라는 키워드가 강조되길 원했다”며 “모두 함께 어울리는 축제를 지향”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작년 갈등 이후 본교가 근본적 원인을 파악해 알맞은 해결방안을 제시하기보다는 단순히 논란이 될 만한 요소 자체를 제거하는 식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지도와 깃발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계획하고 시행하기까지 과연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됐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외교적으로 다양한 담론이 나올 수 있는 예민한 주제인 만큼 충분한 대화와 소통 과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깃발과 지도의 사용을 금지한 학교의 조치를 바라보는 학내 구성원의 입장 교차도 주목할 만하다. 익명을 요구한 KUBA 관계자 A 씨는 단체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병존한다며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하나의 중국’을 강조하며 티베트, 홍콩의 문화를 중국 부스에서 함께 소개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해당 조치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제기됐다고도 전했다. 반면 이번 조치가 다양한 권리를 침해한다는 우려도 있다. 자신을 베이징 출신으로 밝힌 KUBA 소속 B 씨는 ISF에서 정치적 논리를 배제하고 문화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시행된 조치가 오히려 특정 국가의 정치적 의도를 ISF에 개입시킨 셈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조치는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라며 “본교가 중국 학생과 정치권을 지나치게 의식한 부적절한 조치”라고 강력한 우려를 표했다.

학내의 이해관계를 넘어 외교 분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만큼 풀기 어려운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꼬인 매듭을 푸는 대신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린 본교의 이번 조치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행사를 코앞에 두고 성급하게 어떠한 조치를 시행하기에 앞서 본교가 추구해야 할 온당한 입장은 어떠하며 적절한 대응은 무엇이었는지, 학내 구성원의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충분한 의견수렴과 깊이 있는 논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지우·박찬웅 기자
idler9949@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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