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치된 차별금지법, 이제는 제대로 논의할 때

지난달 명동성당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2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차별금지법의 제정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란이 다시 재점화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성별 ▲인종 ▲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평등권을 보장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 자체는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인권위는 2006년부터 정부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해 왔고 그 이후 11번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법에 대한 정치권의 의도적인 무시로 인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대선 시즌임을 감안하더라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정치권의 외면은 심히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간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계의 거센 반발에 번번이 무산됐고 여야 대선주자들도 해당 법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피해왔다. 지난달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의 심사기한을 2024년까지 미루기로 합의했다. 지난 6월 10만 명이 동의한 차별금지법 국민청원이 심사기한을 넘겨 폐기 처분의 위기에 놓인 것은 정치권이 개신교계의 표를 의식해 법안 논의를 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였다. 특히 이번에 민주당에서 발의한 차별금지법이 외국에 유례가 없는 광범위한 내용도 담겨 있어 입법이 이뤄질 경우 역차별의 가능성도 존재해 논란이 일고 있다. 동시에 입법 청원 요건 충족에 성공한 차별금지법 찬성 측의 요구도 어느 때보다 거세다. 정치권이 또다시 논의를 회피한다면 사회 갈등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어내는 정치의 기능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없다. 정치인들이 차별금지법이라는 오래된 현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에 관계없이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고 토론과 협의에 책임있게 나서기를 바란다.

.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