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교관 면책특권, 남용 멈춰야 할 때

지난달 9일 피터 레스쿠이에 주한 벨기에 대사관의 부인이 옷가게에서 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14일 레스쿠이에 측에서 면책특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부인은 처벌을 면했다. 그러나 부인의 무례한 행동이 담긴 매장 CCTV가 뒤늦게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한국인 조롱 의혹과 진정성 없는 사죄 태도가 도마에 오르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이에 레스쿠이에는 28일 면책특권을 포기하고 성실히 조사에 임할 것이며 올여름 이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외교관 면책특권은 외교관과 그 가족이 신분상 안전을 위해 주재국의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받을 권한을 뜻한다. 본국에서 면책특권을 포기할 경우 주재국이 처벌을 내릴 수 있으나, 대부분 면책특권 뒤에 숨기에 국내에서 처벌까지 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외교관의 면책특권은 국가의 주요 권리로 여기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단지 외교관의 지위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혐의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은 지나친 특혜다. 최근 5년 동안 주한 외교 사절이 벌인 약 69건의 사건·사고가 아무런 처벌조치 없이 일단락됐다. 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성추행 혐의를 받은 주뉴질랜드 대사관이 면책특권을 내세워 조기 송환됐다. 이외에도 국내외에서 외교 사절들이 저지른 사건이 연이어 보도되는 상황에서 면책특권이 논란이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한 국가의 얼굴인 외교 대사들이 해외에서 국가 체면을 훼손하고, 본국이 그 잘못을 덮어주기까지 한다면 국가의 명예에 연거푸 먹칠을 하는 것이다.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국가는 면책특권을 악용하는 사례에 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권한의 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면책특권의 보장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본국은 외교관에 대한 처벌도 정당히 집행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면책특권이 면죄부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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