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허술한 법 안에서 ‘갑질’은 몸집을 키운다

“내가 죽으면 갑질과 집단 괴롭힘 때문이다.” 지난달 2일, 안성교육지원청 50대 공무원 A 씨가 극단적 선택과 함께 남긴 유서 내용의 일부다. 유가족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직장 내 동료들로부터 지속적인 따돌림을 당했다. 이후 교육청에 이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오히려 상사의 ‘갑질’까지 이어지며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전에서는 새내기 공무원이 상사의 갑질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지난 9월엔 동료의 가방을 망가뜨렸다는 누명을 쓴 20대 공무원이 동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15층에서 투신했다. 직장 내 갑질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갑질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갑질은 개혁의 대상이자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고, 2019년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까지 제정됐다. 하지만 시행 2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직장인의 32.9%가 근래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법안이 시행된 2019년 7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갑질 사건은 1만 340건에 달하는데, 사후 조치가 이루어진 사건은 약 13%에 그쳤으며 검찰에 송치한 사건은 1% 미만에 불과했다. 허술한 법 아래에서 직장 내 갑질 문화는 여전히 만연하다.

정부는 실효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개정안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해 우려된다. 공무원은 근로기준법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약 1년간 신고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중 33.2%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지만 5인 미만의 사업장은 개정안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게다가 플랫폼 노동자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또한 포함되지 않아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직장 내 갑질 문화는 이미 한국 사회 내에 뿌리 깊게 박혀있다. 변죽만 울려대는 부실한 법 안에서, 갑질은 지금도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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