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정 중심에 있는 ‘자전거’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형 자전거 하이웨이(CRT)라는 또 하나의 대규모 사업을 예고했다. 버스 중앙차로 등 간선급행버스체계(BRT)를 본뜬 이름이다. 구체적인 계획 수립을 앞두고 The HOANS에서 현재까지 발표된 계획과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알아봤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7월 14일 “서울을 사통팔달로 연결하는 자전거 하이웨이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중남미 순방 중 콜롬비아 보고타의 세계 최대의 차 없는 거리 행사인 ‘시클로비아’를 방문해서 한 발표였다. 자전거가 빠르고 안전하며 쾌적하게 달릴 수 있는 전용도로를 설치하겠다는 구상이다. 박 시장은 “자전거 혁명을 통해 서울을 자전거 천국이자 확고하게 사람이 편한 도시, 미세먼지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지속가능한 도시의 모범적인 모델로 만들어나가겠다”며 CRT 구축의 목적을 밝혔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CRT 구축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꿈꾸는 자전거 천국

서울시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CRT 사업은 차도와 보행로 사이에 자전거 전용도로인 보도형 하이웨이 뿐 아니라 ▲캐노피형 하이웨이 ▲튜브형 하이웨이 ▲그린카펫형 하이웨이 등의 형태로 추진될 예정이다. 캐노피형과 튜브형은 공중에, 그린카펫형은 도로 중앙에 녹지와 함께 자전거 전용도로를 설치하는 형태이다. 서울시 보도자료는 “기존의 자전거 도로망이 차도 옆 일부 공간을 할애한 불안한 더부살이 형태”였다며 자전거만을 위한 별도의 전용시설을 만들겠다고 이번 구상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자전거 도로의 다양한 형태와 관련해서는 “사람을 최우선하는 도로 공간이라는 서울시 교통철학과 도시 구조물의 특색에 부합하는 형태로 추진”한다며 “많은 도시가 꿈꿨지만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혁신적 공간 활용”이라 표현했다. 함께 ▲한강교량 관광 특화 자전거 도로망 ▲5개 생활권 자전거 특화지구 조성 ▲따릉이 서비스 집중 업그레이드도 진행할 것을 예고했다.

CRT 사업의 핵심은 차로와 물리적으로 분리해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과감하게 차도를 축소하고 자전거 도로의 높이를 차도 높이가 아닌 보도 높이로 조성할 예정이다. 서울시 보도자료는 “차도를 먼저 확보하고 공간이 남으면 보도를 만드는 산업화 시대 오랜 공식을 완전히 뒤집는 보행친화도시 신전략”이라 설명하며 ▲보행과 자전거 ▲친환경·미래형 교통수단 ▲노상주차장과 가로공원 순으로 고려하고 나머지 공간을 차도에 할애할 것이라 밝혔다. 박 시장은 “자동차 위주로 설계된 서울의 교통 체계를 보행자, 자전거, 대중교통 중심으로 재편하는 보행친화도시 신 전략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 하반기 3억 원을 투입해 타당성 용역을 실시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 나갈 것을 예고했다.

자전거와 맞지 않는 사계절

박 시장의 야심찬 발표에 ▲자전거 도시와 맞지 않는 기후와 지형 ▲고비용 저효율 문제 ▲차도 축소에 따른 교통 정체 심화 가능성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의 기후와 지형이 자전거 사용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이번 CRT 사업은 콜롬비아 보고타와 런던의 자전거 길을 롤모델로 삼았으나 보고타와 런던의 기후와 지형이 서울과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의 연간 기온 차는 28.1℃(-2.4℃~25.7℃)로 보고타의 연간 기온 차 12℃(7℃~19℃), 런던 19℃(4℃~23℃)에 비해 크다. 서울 자전거 도로의 경사로도 보고타와 런던에 비해 많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연중 기온 차나 경사로 등 과거에 여러 차례 자전거전용도로 구상이 실패한 원인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모(지교 19) 씨는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에서 자전거를 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여름에도 30도까지 올라가는 날씨에 자전거 타는 것이 싫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계절별 온도 차이가 크고 경사로가 많은 서울에서 CRT가 효과적으로 운영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서울특별시 공공자전거 일별 대여 건수 자료는 기온에 따라 자전거 이용 추세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를 월별로 분석한 결과 올해 1~2월 사용량은 작년 9~10월 사용량에 비해 약 1/3로 감소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릉이의 누적 회원이 꾸준히 증가하는 중에도 나타난 겨울 중 사용량의 급감은 기온 차가 큰 우리나라에서 CRT가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점을 던진다.

비용은 많이 드는데 효율성은?

자전거 혁명을 이루기 위한 비용과 효율에 대한 지적도 있다. 따릉이를 포함한 서울시의 자전거 정책에는 줄곧 엄청난 세금이 들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CRT 구축과 더불어 올해 따릉이 1만 대를 추가 구입한다고 밝혔다. 이를 비롯해 ▲회원관리 및 대여·반납 서비스 ▲운영관리 ▲시스템 운영 및 유지보수 ▲대여소 등 시설 관리를 위해 325억 4800만 원의 시비를 투입할 계획이다. 2015년 10월 선보인 따릉이는 첫해 3억 7000만 원, 2016년 24억 원, 2017년엔 35억으로 적자 규모가 불어났다. 자전거와 스테이션 보급을 늘릴수록 적자 폭이 커지는 것이다.

CRT 사업은 아직 입안 단계로 구체적인 비용이 산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2010부터 2019년까지 전국에 2천285km의 자전거 도로를 구축한다는 자전거 인프라 구축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해당 사업은 국비 5100억을 포함한 1조 200억 원의 예산을 잡고 추진됐지만 2015년 중단됐다. 2013년 10월 감사원 감사에서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업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1천742km로 조기 종료된 해당 사업에는 국비 2천452억이 들어갔다. 자전거 도로를 서울을 사통팔달 잇는다는 이번 사업 역시 엄청난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비용에 걸맞은 수요가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서울시는 따릉이 도입 후 4년 만에 운영 대수를 2만 5000여대로 늘렸으며 지금까지 이용 건수는 2235만 건을 돌파하며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대중교통 등 다른 운송수단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적은 수요다. 지난 4월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2018 수도권 대중교통 이용실태’에 따르면 서울의 하루 대중교통 이용은 평균 390만 명으로 인구수로 나눴을 때 1인당 하루에 2.14회 이용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투입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교통혼잡 심각한데 줄어드는 차도

CRT 사업이 차도를 줄여 차량 정체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CRT 구상안 중 보도형과 그린카펫형 하이웨이는 기존 차도를 축소하고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형태이다. 국토교통부가 작년에 발표한 교통 빅데이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특별시의 혼잡구간비율은 20%대로 7대 특·시별 중 가장 심하게 큰 증가 폭을 보였다. 작년 따릉이 관련 보도자료에서 서울시는 하루 중 출·퇴근 시간대인 오전 6시부터 9시와 오후 6시부터 9시 사이에 이용건수의 38%가 집중됐다는 통계를 통해 따릉이가 “실질적인 생활 교통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중교통 및 다른 운송수단에 비해 이용량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에서 자전거 출퇴근을 통한 교통 체증 완화 효과는 차도 축소로 인한 교통 체증 심화에 비해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갑작스런 발표, 검토는 면밀하길

박 시장은 “지난 8년간 서울시정의 중심에는 줄곧 ‘사람’이 있었다”며 시민의 삶의 필수요건인 교통에서도 ‘이동권은 시민의 기본권’이라는 원칙으로 자동차 위주로 설계된 서울의 교통 체계를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CRT 사업은 따릉이와 차 없는 거리 확대와 더불어서 임기 3년 차를 앞둔 박 시장의 주력 사업이다. 많은 예산이 소모되는 대형 사업을 갑작스레 예고한 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성중기 서울시의원은 과거 제기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과 시민의견 수렴 절차가 없고 평가와 연구도 없는 “묻지마 토목사업일 뿐”이라며 비판을 제기했다. 서울시에서 올 하반기 타당성 용역을 실시하고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개소별·구간별로 구체화해 나갈 예정이라 밝힌 만큼 앞으로의 CRT 사업의 귀추가 주목된다.

강민정·오은서·황제동 기자
khangmj0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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