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안 톺아보기

지난 4월 29일과 30일에 걸친 회의 끝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는 공직선거법(이하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이에 최장 330일 안에 선거법은 본회의에 상정된다. 선거법 개정안이 담은 내용과 그가 앞으로의 선거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여야 5당의 정치적 상황은 어떠한지 The HOANS가 알아봤다.

계속되는 공전(空轉) 국회

선거법 개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소속 의원들과 보좌관들은 패스트트랙 대치 정국 내내 정개특위 전체회의가 예정된 국회 회의장을 몸으로 막아서며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했다. 지난 4월 29일에 한국당이 정개특위 회의가 예정된 행정안전위 회의실을 육탄으로 점거하자 정개특위가 정무위 회의실로 회의 장소를 빠르게 변경해 가까스로 회의가 진행됐다. 뒤늦게 달려온 한국당 의원들은 정개특위에 날치기로 선거제를 개혁하려 한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에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범정치적인 선거법 개정 합의를 깨트린 것은 한국당이라고 맞대응했다. 한국당 소속 김재원 의원이 기표소에 들어가 10분 이상 나오지 않는 해프닝도 벌어졌으나 결국 정개특위 소속 18명의 위원 중 12명이 찬성해 선거법 개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패스트트랙 대치 정국 이후에도 한국당은 국회에 복귀하지 않아 국회 정상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패스트트랙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며 국회 보이콧을 지속할 의지를 천명했다.

제도권 내에서 정치를 통한 원만한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가 정책의 최종결정자인 국민의 역할이 강조됨은 자명하다. 이와 더불어 국민의 의견이 건전하게 정치권에 반영되기 위해선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개정안 훑어보기①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법 개정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 도입 ▲비례대표 의석 증석 ▲비례대표 추천절차 법정화와 같이 국회 내 비례제 개정을 골자로 한다. 우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한 정당이 얻는 의석을 정당에 대한 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선거제도다. 의석수는 정당투표로 결정되며 지역구 국회의원 수로 먼저 의석을 배분하고, 나머지 의석은 비례대표로 채운다. 그 과정에서 한 정당의 의석수를 해당 정당이 득표한 비율과 일치하게 비례대표 좌석을 배분한다. 예를 들어 정당 투표에서 30%를 차지한 정당이 지역구 의원 투표에서 5%의 좌석을 획득했다면 25%의 비례대표 좌석을 획득한다. 또한, 만약 한 정당이 정당 투표에서 득표한 비율보다 해당 정당 지역구 의원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높다면 규정된 국회 의석수보다 실제 의석수가 많아져야 하기에 추가 의석이 발생한다. 정당 투표 비율과 해당 정당의 의석 비율을 맞추기 위해 투표를 통해 당선된 지역구 의원의 자격을 박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 비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기에 사표를 방지하고 국민의 의도를 상대적으로 정확하게 반영하여 비례성을 개선한다. 이와 더불어 소신 있는 투표를 가능케 하기에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 가능성과 사회적 약자 계층의 대표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반면 극단적 성향의 정당이 국회 내에 난립하고 국회의 안정성이 저하된다는 점에서 완벽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진정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실시를 위해서는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현행 5:1 수준에서 2:1 수준까지 늘려야 한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국회 내 대표성 증진이라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살려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비례대표 의원의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의 수를 늘리고 증분을 모두 비례대표 의원좌석으로 배분하지 않는 이상 지역구 의원의 수를 대폭 줄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는 실현될 개연성이 낮다.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의석수를 늘리는 것도, 입법자인 지역구 국회의원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여야는 비례대표 의석의 제한적 확대(28석 증석)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검토안을 제안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존 정당투표를 통해 얻은 의석수에서 지역구 의석수를 제하고 남은 의석수의 절반만을 연동하여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 모든 정당이 이 절차를 거치고 남은 의석수에 대해서는 지역구 의석에 대한 고려 없이 전국 정당 투표율에 의해서만 배분한다. 연동되는 의석의 비율이 50%로 줄었다는 점에서 절충적인 선택이다. 비례대표 명부 작성도 정당 차원의 불투명한 공천을 통하기보다는 비례대표 추천절차를 법정화하는 방안을 도입하기로 해 비례대표제 확충에 긍정적 의도를 이어가려는 시도를 보였다.

비례제 개편의 정치적 영향은?

그렇다면 선거법 개정안이 한국 정치판에 가져올 영향을 어떠할까.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20대 총선 득표율을 기준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할 경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06석 ▲한국당 109석 ▲국민의당 60석 ▲정의당 15석을 각각 확보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양 거대정당의 의석수는 줄고, 지역구에서 부진했던 국민의당이 22석, 정의당이 9석을 추가로 얻게 되는 셈이다.

최근 정당별 지지율을 기반으로 선거법 개정안 이후의 상황을 예측해봐도 결과는 비슷하다. 리얼미터가 25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5월 4주차 정당지지도 여론조사에서는 각 정당에 대해 ▲민주당 39.3% ▲한국당 31.9%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5.0% ▲민주평화당(이하 민평당) 14% ▲정의당 7.6%의 응답자가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를 기준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할 경우 ▲민주당 134석 ▲한국당 110석 ▲바미당 17석 ▲민평당 13석 ▲정의당 18석을 확보하게 된다.

이처럼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돼 내년 총선에서 적용된다면 ▲바미당 ▲민평당 ▲정의당과 같은 상대적 군소정당의 의석 비율이 증가할 확률이 매우 높다. 현재 ▲민주당 128석 ▲한국당 114석 ▲바미당 28석 ▲민평당 14석 ▲정의당 6석의 배분과 비교해 야3당의 목소리가 커지고 연정 필요성도 증대된다.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여당인 민주당이 직면할 여소야대 정국에서 제1야당인 한국당, 혹은 비교적 정치관이 유사한 민평당·정의당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같은 정치공학적 분석은 현재 여야 5당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에 대한 설명을 일정 부분 제시한다. 우선, 거대 양당에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바미당 ▲민평당 ▲정의당은 선거법 개정안이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를 해소해 군소정당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선거법 개정에 앞장서고 있다. 이와 맞물려, 거대 양당의 한 축으로 자리해온 한국당은 의석수 감소를 우려해 ▲바미당 ▲민평당 ▲정의당의 성장을 견제하리라 예측된다. 실제로 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저지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민주당은 현재 지지율을 기반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이후의 의석수를 계산했을 때, 20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차지한 의석보다 더 많은 의석을 획득할 수 있다. 줄곧 지지율 1위 정당에서 내려오지 않은 만큼, 민주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도 한국당만큼 잃을 좌석이 많지 않다는 분석이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선거법 개편을 내세운 만큼 여당으로서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개정안 훑어보기② 권역별 비례대표 명부

여야 4당은 선거법 개정안에서 소위 ‘표밭’이라고 불리는 특정 지역에서 한 정당이 압도적으로 많이 당선되는 지역주의 세태를 완화하기 위해 권역 개념을 도입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전국단위가 아닌 권역별로 따로따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1당 독식의 ‘표밭 정치’를 타파하고 특정 권역 내에서 다양한 정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게 한다는 목적을 가진다. 권역은 ▲서울 ▲인천, 경기 ▲대전, 세종, 충남, 충북, 강원 ▲광주, 전북, 전남, 제주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6개로 이뤄지며, 각 정당은 각 권역에 해당하는 비례대표 명단을 작성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전국 정당 투표수 중 해당 권역의 투표수의 비율을 구하고 각 정당의 할당의석에 곱해 권역별 할당의석을 산출하게 된다.

이 방식은 특정 정당이 한 지역의 의석을 모두 차지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고 동시에 지역 내 소수정당 지지자들의 대표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갖는다. 그럼에도 권역 설정과 권역에 따른 의석 분배 문제 등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선관위는 인구수에 따라 권역을 나누고 의석수도 비례하게 배분하겠다는 입장이나, 세부 기준이 아직 모호하며 정당의 권역별 비례대표 수를 정하고 선발하는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한 실정이다. 또한 강원도는 충청권 지자체와, 제주도는 호남권 지차체와 함께 권역으로 설정돼 권역 설정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내 정치 측면에서는 권역별 명부 작성이 지역주의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론적으로는 한국당의 강한 지지기반인 경북에서도 민주당이 비례대표로 상당수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인 지역주의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개정안 훑어보기③ 석패율제

이번 선거제도 개편에서 석패율제 도입도 포함됐다. 석패율제란 한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에 출마하는 것을 허용하고, 중복 출마자들 중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지역구 선거에서 가장 아깝게 떨어진 후보를 구제해 주자는 취지다. 여야 4당은 상기한 권역당 2명의 지역구 의원 후보자를 짝수번호의 비례대표로 입후보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다만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해 제한을 두었는데, 특정 권역 중 지역구 의원의 30%를 가져간 정당은 석패율제를 사용할 수 없다.

선거구 다수대표제에서는 한 번의 낙선이 실패를 의미하므로 당내 공천과정, 정당 간 경쟁 과정에서 갈등이 격화되지만, 석패율제를 도입할 경우 상대적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로 의석을 얻는 방법이 생겨 이러한 갈등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석패율제가 유명 정치인의 당선을 과도한 수준으로 용이하게 하고, 비례대표의 기본 취지에 어긋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국회로 진입시키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지역구에서 국민들의 결정으로 떨어뜨린 사람을 번복하고 회생시킨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 정당성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한국 정치에 있어 석패율제는 지역구 선거의 과도한 경쟁을 해소하고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논의되고 있다. 석패율제를 도입하게 되면 반드시 지역구에서 1등을 하지 않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얻음으로써 비례대표를 통한 회생을 노려볼 수 있다. 따라서 후보들은 득표를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진행하고, 유권자는 약세 후보에게도 소신투표 할 동기가 부여된다. 이에 약세 지역에서도 최대한의 득표를 위해 노력함에 따라 지역 기반 정치를 서서히 극복해나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선관위는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한국형 석패율제도 운영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단기적인 승리는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약세 지역에서의 조직 관리와 지지기반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어 정당의 지역구도 완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안 훑어보기④ 선거 가능 연령 하향

이전부터 많은 논란이 된 선거 연령 하향도 이번 개정안에 포함됐다. 많은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로써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나이를 만 18세로 정한 반면, 한국은 만 19세가 돼야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이번 개정을 통해 더 많은 국민의 정치참여 기회를 넓히고 지금까지는 잘 반영되지 않았던 청소년 계층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개정의 주된 이유다.

선거 기준연령의 하향은 새로운 유권자가 추가됨을 의미한다. 선거를 통해 청소년의 목소리를 더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 청소년을 겨냥한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반면, 새로운 유권자층에 대한 각 당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대립의 국면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갤럽에 의하면, 한국당의 경우 20대, 30대의 지지율은 10%를 밑도는 반면 50대 이상 유권자들의 지지율은 30%가 넘는다. 유권자의 나이와 한국당 지지율 사이 대략적인 비례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과 정의당은 젊은 유권자일수록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에 선거 가능 연령 하향 조정이라는 논제에 대해 각 당의 당론이 엇갈리고 있다.

더 나은 정치를 위하여

선거제도는 각 나라 정치 지형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에 선거제도의 변화가 대한민국 정치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그를 국민에게 알리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물론, 정치는 수학 공식과 달라 일련의 변화가 가져올 결과에 필연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이 기사가 선거의 규칙을 정하는 정치 국면에 대한 국민의 이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한국 정치를 위한 작은 발걸음이 되길 소망한다.

김동후·김동현·유효민 기자

ehdgnqq@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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