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아우성, 장애인 인권은 어디에

대한민국 헌법은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그러나 본교 장애인 학생들은 여러 영역에 있어 비장애인 학생들에 비해 많은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The HOANS는 본교에 재학 중인 장애인 학생들을 직접 만나 이들이 겪는 불편함에 대해 알아봤다.

2018학년도 1학기 기준 본교 장애인 학생 수는 총 158명이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해 37명의 특수교육대상자가 선발됐지만 이들은 학교생활에 불편을 겪고 있다. 학내 구성원 다수가 인지하듯 배리어프리(barrier-free)에 대한 논의는 활발한 데 비해 이동이나 수업, 소통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해결책 역시 나올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시력이 실력은 아니잖아요

시각장애는 교정시력을 적용해도 앞이 흐릿하게 보이거나, 시야각이 50% 이하로 손실된 기능장애를 의미한다. 시각장애는 1급부터 6급까지로 구분되며 이때 교정된 시력 가운데 좋은 눈의 시력이 0.02 이하일 경우 시각장애 1급으로 판정된다. 시야각이 5도 이하로 남은 경우에는 시각장애 최대 3급으로 판정된다. 1급부터 3급까지는 중증장애로 분류되며 4급부터 6급까지는 경증장애로 분류된다.

본교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인 A씨는 저시력 시각장애를 갖고 있다. 저시력이기 때문에 혼자서 이동하는 데 무리는 없지만, 물체와 색깔이 흐리게 보여 시각자료를 활용한 강의를 수강하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A씨는 “시각자료를 활용하는 수업이 힘들다”며 “특히 이것, 저것 등의 대명사로 부연설명이 이뤄질 경우 화면에 나와 있는 자료가 무엇인지 감조차 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1급인 B씨도 시각자료를 사용하는 수업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B씨는 “필기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공부를 할 수 있지만 화면을 쓰는 수업은 사실 모두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신입생 필수교양인 자유정의진리(이하 자정진)에서는 제시된 시각자료를 해석하는 한편 또 다른 시각자료를 직접 선별하여 설명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져 시각장애인들에겐 고충이 된다.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지만 지인이나 도우미에게 사진에 대해 물어보는 과정을 거쳐야하기에 이들은 비장애인 학생들에 비해 힘겨운 상황에 놓인다.

말씀하셔도 듣기가 힘드네요

청각장애란 귀를 통해 들어온 소리를 감지하여 뇌에 전달하는 경로에 손상이 있어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정확하게 구별할 수 없는 장애를 일컫는다. 평형기능에 이상이 있는 경우도 청각장애에 포함된다. 청각장애인들은 주로 수화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다수의 의사소통은 말하는 사람의 입모양을 읽는 구화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보청기나 인공와우 등 기기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인공와우란 수술을 통해 이식하는 인공 달팽이관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각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교수도 예외는 아니다. 본교에 재학 중인 청각장애인 학생이 경험하는 문제 중 한 가지는 교수의 강의습관에서 기인한다. 본교 장애인권위원회(이하 장인위) 부위원장 직책을 맡고 있는 청각장애인 이선영(생공 17) 씨는 “많은 교수님들이 청각장애가 있는 학생은 앞자리에 앉히면 된다고 생각하신다”며 청각장애에 대한 평면적 이해를 지적했다. 이 씨는 보청기·인공와우를 통해 들리는 소리와 발화자의 입모양을 읽어 얻는 정보를 종합해 의사소통을 한다. 때문에 PPT 화면이나 칠판을 바라보고 말하는 대부분의 교수들의 강의 습관이 이 씨에게는 큰 어려움이다. 이 씨는 “몇 번 요청을 드린 적도 있었지만 오랜 기간 그렇게 강의해오셨기에 반영이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강의실의 음향시설도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느끼는 불편에 한 몫을 한다. 음향장비가 오작동하거나 보청기에서 잡음이 인식될 경우 ‘삐이-’ 소리가 발생해 귓속에서 울린다. 인공와우에선 녹음기에 녹음된 소리가 왜곡되는 것처럼 음성이 왜곡돼 들리기 때문에 음향장비의 볼륨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씨는 “음향장비가 노후화된 경우 교수자의 발화와 기기를 통해 들리는 소리 간에 시간차가 발생해 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따라서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원활하게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강의실 음향설비의 정비 및 교체가 절실한 상황이지만 현재 강의실에 설치된 스피커의 연식에 대해 ▲총무부 ▲관리팀 ▲학생지원부 중 어느 곳도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우당교양관을 담당하고 있는 기초교육원은 2015년과 2017년 사이에 스피커 관리를 시행했으나 교양관 6층 대형강의실의 음향시설은 여전히 음량이 작아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에는 불편한 실정이다.

물론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보조 기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씨 역시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인공와우의 근본적 한계”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전히 연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청각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시설 마련의 필요성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저에겐 강의실에 닿는 길이 힘겹습니다

뇌병변장애란 뇌성마비, 뇌졸중, 외상성 뇌손상 등 뇌의 기질적 병변으로 인해 상·하지에 마비가 나타나는 장애로 신체적 장애, 청각·언어 장애, 시각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다. 뇌병변장애의 경우 개인마다 증상이 상이하다. 신체의 이동에 제한이 있는 지체장애와는 별개의 장애지만 뇌병변장애인의 다수가 신체의 움직임이 불편하므로 지체장애의 한 종류로 보기도 한다.

뇌병변장애인 우연수(사학 18) 씨는 거동이 어려우며 미숙아망막증으로 인해 시력이 나쁘다. 따라서 대부분의 강의에서 강의실의 맨 앞자리를 지정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법학관 구관의 지하강의실 등 계단식 대형강의실의 경우 입구에서 가장 앞자리까지 이동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다. 일부 강의실은 의자와 책상이 일체형 구조로 돼 있어 앉고 일어나는 것도 쉽지 않다.

강의실뿐만 아니라 본교의 캠퍼스 전체가 충분히 배리어프리하지 않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특히 본교 기숙사는 상당히 길고 높은 오르막길 위에 위치하고 있다. 기숙사에 살고 있는 우 씨는 매일 등하교를 하는 일에 대해 “진이 다 빠진다”고 표현하며 고됨을 나타냈다. 겨울철 눈이 쌓여있거나 길이 얼어있는 상황, 비가 많이 내려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최근 지체장애인 학생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떠오르고 있는 방안은 리프트밴 제도다. 리프트밴 제도란 휠체어가 탑승 가능한 차량을 운행함으로써 모든 유형의 장애인 학생들에게 안전한 통학을 보장하는 제도다.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등 다수의 대학들은 이미 리프트밴 제도를 도입해 장애인 학생들의 이동을 돕고 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장애학생지원 담당자 정해영 씨는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도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하는 한편 “필요성은 잘 알고 있지만 현실적 문제를 검토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정 씨는 “리프트밴 수는 한정적이고, 이 한정적인 차량에 장애학생들을 태우고 모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힘들다”며 제도 시행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휠체어를 타는 학생들 가운데 본인의 차를 소유하지 않은 학생이 약 10명 내외임에도 차량 운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리프트밴 차량이 약 1억 원 정도 한다는 점 ▲차량을 운행할 기사의 인건비가 추가적으로 들어간다는 점 ▲방학 기간에 운행기사를 해고하고 개강할 때 다시 고용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이유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애학생지원센터는 “만약 이 제도를 도입한 이후 운영이 성공적이지 못하다면 나중에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예산을 배정받기가 어려워진다”며 장인위 측과 논의 중임을 밝혔다. 현재 장인위는 학교 측과 생산적인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타 대학의 사례를 수집, 정리하고 있으며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제시한 문제점의 해결책에 대해서도 논의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빈약한 인식과 지원

본교는 장애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장애 인식개선 교육 ▲장애인 학생 도우미 제도 ▲장애인 학생 우선수강 신청 제도 등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본교 교수학습개발원은 교원들을 대상으로 ‘KU 장애학생 교원 가이드북’이라는 장애학생 수업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다. 가이드북에서는 ▲시각 의존도가 높은 과제의 경우 해당 교과의 교육목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안적 과제 제시 ▲얼굴과 입은 정면에서 잘 보이도록 강의하기 ▲휠체어 이동에 지장이 있는 강의실을 피하여 배정 등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휠체어 이동이 불편한 계단식 강의실이 배정되는 등 가이드북의 규정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교수진의 세심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지속되고 있다. 학생 단체인 장인위가 노력하고, 학교 단체인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요청한다 하더라도 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수업의 진행 방향을 최종 결정하는 주체는 교수이기에 최소한 수업 내에서 장애 학생에 대한 교수진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들의 교육권 개선이 이뤄지기 힘들다. 일례로 자정진을 비롯한 수업에서 장애인 학생들에 대한 배려책 없이 시각 의존도가 높은 과제가 주어지는 것을 들 수 있다.

더욱이 시각장애인 A씨는 “친구들로부터 교수님이 강의 도중 병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는 등 장애 비하 표현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교수님들이 가르치시는 학생들 중에도 장애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시고 발언에 좀 더 신중해지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선영 장인위 부위원장은 “우리의 세대가 굉장히 개선된 장애인식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을 우리의 이전 세대의 분들인 교수님들께 전하고, 그들이 마음 깊이 동의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교수진의 장애인식을 개선하는 과정의 고충을 토로했다.

한편 예산 및 국가 정책에 묶여있는 장애인 학생 도우미 제도의 한계도 지적됐다. 평소 장애인 학생들은 수업과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장애인 학생 도우미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 정책상 정부 지원금은 중증 장애에 해당하는 학생에게만 지원되고 있으며, 경증 장애인 학생은 학교 예산 범위 내에서만 지원이 가능해 충분한 도움을 받기 어렵다. 이 씨는 청각 장애 4급으로 분류상 경증에 속하지만 컨디션에 따라 소리가 더욱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경증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오지 않기에 학교예산을 통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 이 씨는 “필기도우미를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소명서를 제출하고 심의를 받는 과정을 거쳐서야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부족한 공론화, 풀지 못한 숙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장애인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 행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지난 1학기에 장애인 학생 도우미를 했던 정종락(정외 17) 씨는 “본교의 건물들, 특히 기숙사나 정경관을 보면 장애인 학생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장애인 학생을 생각했다면 엘리베이터도 많았을 것이고, 높은 지대에 건물을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 지속의 원인은 부족한 공론화에 있다. 하지만 현실은 장애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불편함을 드러내는 일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다. 장인위 홍보국장 이소담(보정관 17) 씨는 “장애인 학생들은 목소리를 냈을 때 공허한 외침에서 끝나버리거나, 오히려 공격이 돌아오는 상황을 겪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당사자로서 의견을 표출하는 일은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씨는 “저항보다는 침묵이 훨씬 쉽겠지만 공론화에 힘쓰고 있다”고 하는 한편 “그럼에도 학내 여론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공론화를 위해서는 장애에 대한 인식 확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비장애인 학생들과 교수들의 경우 장애인 학생 도우미 제도의 허점, 장애인 학생이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불편해하는지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장애이해교육이 표면적인 이해에만 그치기 때문이다. 장애인 학생들과 장인위가 장애이해교육의 부족함을 지적하고 개선 요구를 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뇌병변장애인 우 씨는 “장애이해교육이 표면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실제 사례나 당사자들의 직접 강의 등으로 교수님들과 학생들 모두가 장애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평등한 학교는 어디에

비장애인의 장애 인식은 미흡하고, 장애인 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부족하며, 이들의 생활은 여전히 불편하다. 당사자들이 용기를 내어 말한다고 해도 공허한 외침에 남을 가능성이 높은 현 사회는 이들의 침묵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장애인 학생들이 값싼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평등한 인간이라는 인식이 선행돼야 할 시점이다.

이재은·고성열·이서희·임지현 기자

je8231@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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