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들이 파헤치는 고려대학교 교양강의 현주소

본교에서는 여러 교양강의를 제공하고 있으나 대부분 인문 강의에만 치중해 다른 분야의 강의 수가 부족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제 교양강의의 다양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에 본교 교양수업의 실태와 나아갈 방향을 The HOANS에서 알아봤다.

 

본교 교양교육원은 ▲자유 ▲정의 ▲진리를 교육이념으로 설정하고 ‘학문적 통찰력과 공감적 협업 능력을 갖춰 세계 변화를 추동하는 실천적 인간의 형성’을 목표로 교양교육을 시행한다. 이를 위한 교양과목은 ▲신입생을 위한 공통교양 ▲교내 교수진의 전공과 연관된 핵심교양 ▲다양한 영역의 선택교양 등으로 나눠 개설된다. 그러나 본교 교양교육이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특히 핵심교양과 선택교양은 개설되는 교과목이 다양하지 않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2023년 1학기를 기준으로 본교 교양과목을 ▲인문사회 ▲예술 ▲과학기술 ▲체육의 4개 영역으로 분류해 영역별 강의의 개수 및 수강생 수를 알아봤다. 또한 타 대학과의 비교를 통해 본교 교양교육의 다양성을 살폈다. 단 ▲자유정의진리 ▲글쓰기 ▲1학년세미나 등의 공통교양은 제외하고 핵심교양과 선택교양을 위주로 알아보기로 했다.

 

기울어진 인문사회 강의

 

본교의 교양수업은 크게 핵심교양과 선택교양으로 나뉜다. 핵심교양은 ▲과학과기술(15개) ▲디지털혁신과인간(11개) ▲문학과예술(8개) ▲사회의이해(8개) ▲세계의문화(6개) ▲역사의탐구(9개) ▲윤리와사상(4개)로 총 61개의 강의가 개설돼 있으며 이 가운데 과학기술을 다루는 ‘과학과 기술’, ‘디지털 혁신과 인간’ 2개의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5개의 영역이 모두 인문사회 분야 강의에 속한다. 선택교양은 216개의 강의가 개설돼 있으며 이 중 약 150개의 강의가 인문사회 분야 강의로 구성돼 있다. 이는 277개에 달하는 본교 교양강의의 대다수를 인문사회 강의가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인문사회 강의가 다양한 인문사회 분야를 고루 다루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인문사회 강의 중에서 ▲법 ▲정치 ▲경제 등 사회계열 강의보다 ▲언어 ▲역사 ▲문학 등 인문계열 강의 수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핵심교양에서 인문사회 강의를 다루는 5개 영역 중 ‘사회의 이해’를 제외한 다른 4개 영역은 대부분 인문계열 강의가 개설돼 있다.

선택교양도 마찬가지로 인문계열 강의 수가 많다. 본교 선택교양에는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비롯해 8종류 이상의 외국어를 다루는 강의가 개설돼 있으며 ▲실용영어 ▲영어작문 ▲영어토론 등 영어 교양강의 수도 10여 개에 달한다. 또한 각 나라의 문화예술이나 역사를 다루는 강의도 선택교양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사회학과 ▲정치외교학과 ▲행정학과 등에서 제공하는 사회계열 강의는 9개에 불과하다. 200여 개에 달하는 선택교양 수가 거의 인문계열 강의로 채워진 셈이다.

수강생 수 역시 인문계열 강의가 압도적으로 많다. 사회계열 강의는 대부분 70~80명 내외의 학생들이 수강하는 대형 강의이지만 분반 수가 적거나 하나뿐인 경우가 다수다. 반면 인문계열 강의는 20여 명의 학생들이 수강하는 소형 강의부터 100명 이상의 수강생을 보유한 대형 강의까지 선택지가 다양하며 같은 강의가 여러 분반으로 존재해 수용 가능한 학생 수가 대폭 늘어난다. 예를 들어 외국어 강의의 경우 한 강의당 약 20~30명의 학생이 수강하는 소규모 강의지만 각 언어마다 약 10여 개의 분반이 개설돼 있어 실제 수강생 수는 200~300여 명에 달한다.

이는 본교의 사회계열 강의가 부족함을 뚜렷이 드러낸다. 서울대학교는 본교의 핵심교양에 해당하는 ‘학문의 세계’를 7개의 영역으로 나누고 이 중 3개 영역을 인문계열, 2개 영역을 사회계열 강의에 할당하고 있다. 인문계열 강의 수는 약 150개, 사회계열 강의 수는 약 60개로 서울대학교 역시 인문계열 강의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본교의 사회계열 핵심교양이 8개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대학교에는 본교에 비해 약 7배 더 많은 사회계열 교양강의가 개설돼 있다. 이처럼 본교의 교양강의는 대부분 인문사회 강의, 그중에서도 인문계열 강의로 이뤄져있다.

 

눈으로만 배우는 예술 강의

 

예술 분야의 강의는 크게 ▲음악 ▲공연예술 ▲미술의 분야로 나눠 살펴봤는데, 대부분 강의 수도 적을뿐더러 이론 위주의 강의가 대다수인 사실이 확인됐다. 먼저 음악 분야 강의는 핵심교양에 8개, 선택교양까지 포함하면 20개 정도 존재한다.

대부분 강의는 ▲낭만파 ▲판소리 ▲오페라 등 장르별 음악이나 작곡법을 다루는 수업 위주로 강의 시간에 약간의 실기가 포함된 것이 전부다. 합창 강의 하나 외에는 가창이나 악기 연주 등 실기를 주로 다루는 강의는 없었다. 그나마 존재하는 실기 강의인 ‘합창음악과 발성법의 이해’도 정원이 159명에 그쳐 실기 강의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편 본교의 공연예술 강의는 대부분 연극이나 영화에 집중돼 있다. 대표적으로는 ▲어떻게 영화를 읽을 것인가 ▲종교와 영화 ▲독일연극의 이해 등의 강의가 있다. 해당 강의는 영화의 기법이나 해석 등에 관해 배우며 실제 감상의 비중은 높지 않다. 더군다나 본교의 핵심교양과 선택교양에서 미술 관련 강의는 실기 수업은 물론이고 이론 관련 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예술 분야 강의의 부재는 수도권 내 다른 대학과 비교되는 결과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음악 영역에서 총 16개의 관련 강의가 존재한다. 서울대학교에서는 선택교양에 ‘예술 실기’라는 영역을 따로 두고 있으며 ▲색소폰 ▲가야금 ▲단소 등 악기를 직접 연주할 수 있는 실기 강의를 7개 운영 중이다. 또한 미술 관련 강의는 14개 존재하며 미술 실기 강의는 ‘예술 실기’ 영역에 5개 존재해 ▲소묘 ▲수채화 ▲도예 등을 배울 수 있다.

 

과학기술 없는 선택교양

 

본교는 핵심교양 7개 영역 중 ‘과학과기술’, ‘디지털혁신과인간’ 2개 영역에서 과학기술 관련 강의를 제공한다. 각 영역별 강의 수는 15개, 11개로 총 26개이다. 강의 정원은 대부분 60~80명에 달하며 그중 10개는 100명 이상의 대형 강의다. 그러나 핵심교양과 달리 선택교양 영역에서는 과학기술 강의를 많이 찾아볼 수 없다. 과학기술 강의 중 가장 많은 분반을 가진 ‘기초공학가상실험’ 강의는 ▲신소재공학부 ▲융합에너지공학과 ▲화공생명공학과 등 몇몇 이공계 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개설한 강의로 수강 학과가 제한된다. 이를 제외한 과학기술 강의 수는 2~3개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타 대학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수치로 보인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학문의 세계’ 중 ‘자연과 기술’ 영역에서 20개, ‘생명과 환경’ 영역에서 27개로 총 47개의 과학기술 관련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또한 선택교양에서는 ‘창의와 융합’ 영역에서 약 5개의 과학기술 강의를 찾아볼 수 있다. 연세대학교도 40개 이상의 과학기술 관련 수업을 제공하며 특히 인공지능 및 프로그래밍에 관한 수업이 10개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두 학교 모두 학과 제한없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형식의 교양수업을 운영 중이다.

과학기술 강의를 원하는 본교 학생의 반응도 뚜렷하다. 본교 21학번인 A 씨는 “역사 등 인문계열 교양강의는 매우 다양한 편인데 자연계열 교양은 수 자체가 적다고 느꼈다”며 “전공에 구애받지 않고 수학이나 기초과학 등을 접할 수 있도록 접근 문턱이 낮은 자연계열 강의가 다양하게 개설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B(정외 22) 씨는 “환경이나 기후 관련 강의가 개설되면 좋겠지만 학교 측에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듯 보인다”며 본교의 대응을 비판했다.

 

체육 강의 현황은

 

본교는 선택교양에서 ▲축구 ▲호신술 ▲수영 ▲볼링 등 총 18종류의 종목을 다루는 체육 강의를 개설한다. 본교 에서 개설된 체육 강의 종목 수는 타 대학과 비교했을 때 평균적인 수준이며 한 종목당 평균 3~4개의 분반이 마련돼 있어 강의 수 역시 본교 과학기술이나 예술 교양강의에 비해 준수한 수준이다. 다만 강의의 수뿐만 아니라 다루는 스포츠의 종류에도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교양강의에서 30종목 이상의 체육 강의를 제공하는데 ▲발레 ▲필라테스 ▲e-스포츠 등 본교에서 다루지 않는 강의도 많이 개설돼 본교 체육 강의 종목의 다양성을 돌아보게 한다.

 

교양강의 다양성 부족, 언제부터 이랬나

 

본교 교양강의의 다양성 부족은 이번 학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6개년의 본교 교양강의를 살펴본 결과 본교는 핵심 교양을 7개의 영역으로 나누는 방식을 유지해왔다. 그중 2개 영역을 과학기술 강의에 할당하고 나머지 5개 영역을 인문사회 강의로 구성하는 방식 역시 지금과 같다. 과학기술 영역의 강의 수는 2017년도 당시 2개 영역을 합쳐 31개에 이르렀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1년 14개로 축소했으며 2022년에는 23개로 다시 증가했다. 한편 인문사회 강의 수는 비교적 일정하게 개설됐다.

선택교양 강의의 구성은 6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 강의 개수나 구체적인 강의명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긴 하나 전체 교양수업에 인문계열 강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예술 및 과학기술 강의는 다소 소외되는 양상이 지속됐다. 강의의 개수와 내용에서도 지금과 비슷한 양상이다. 6년 동안 교양강의의 다양성이 부족했음에도 이와 같은 현상이 개선되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점은 교양강의 다양성 증진에 대해 본교의 관심과 투자가 미흡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특히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강의를 주관하는 학과의 다양성이다. 핵심교양은 기초교육원에서 공통으로 주관하나 선택교양은 해당 강의와 관련있는 학과에서 강의를 개설한다. 그런데 체육교육과에서 개설한 체육 교양강의를 제외하면 본교의 교양강의는 대부분 문과대학 소속 학과에서 주관한다. 문과대학 소속이 아닌 학과가 주관하는 강의는 단 12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강의와 분야의 내용이 어디에 치중돼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교양강의를 주관하는 학과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아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접할 기회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본교 교양강의는 지나치게 인문사회 분야의 강의에 치중된 모습을 보인다. 7개로 영역을 나눠 각 영역에 해당하는 최소한의 강의 수를 확보한 핵심 교양과 달리, 선택교양은 강의 분류 체계가 따로 없어서 소외된 분야의 강의 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실기 수업이 없는 예술 강의와 이공계 외 학생이 들을 수 없는 과학기술 강의도 문제로 지목된다. 체육 강의 역시 타 대학에 비해 낮은 다양성을 가진다. 교양강의 선택의 폭을 넓혀 학생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양강의를 개설하는 학과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문과대학 외에 여러 학과가 선택교양 개설에 참여하고 지금껏 소외됐던 영역의 강의 수를 증진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인문사회 계열 중에서도 사회 분야의 강의를 더 개설하고 타과생이 과학기술 수업을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하다. 예술 강의 역시 강사를 초빙하고 악기를 구매하는 등 학교 당국의 적극적인 투자로 교양강의의 다양성을 증진해야 한다. 실천적 인간을 형성하겠다는 본교 교양강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교양강의의 이념에 걸맞게 다양한 강의를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할 때다.

김은서‧유성규‧이상훈‧장진형 기자

cat3754@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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