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범죄, 드디어 처벌길 열리나

지난 3월 발생한 일명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은 스토킹에서 촉발되는 강력 범죄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렸다.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는 가운데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하 스토킹 처벌법)이 3월 국회를 통과했다. 스토킹 범죄의 현황과 갈 길이 먼 스토킹 처벌법의 현주소를 The HOANS에서 짚어봤다.

 

일명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 씨는 지난 3월 23일 오후 퀵서비스 기사로 가장해 피해자 A 씨 집에 찾아갔다. 김 씨는 집에 홀로 있던 A 씨의 여동생과 외출 후 돌아온 A 씨의 어머니, 1시간 뒤 귀가한 A 씨를 연달아 살해했다. 김 씨가 사흘간 외출하지 않고 세 모녀의 시신이 있는 A 씨의 집에 머물며 생활하는 등 엽기 행각을 벌인 사실이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줬다. 해당 사건은 우발적 살인사건이 아닌 계획된 스토킹 범죄였다. 김 씨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2월 한 온라인게임 이용자들의 대면 모임에서 A 씨와 처음 접촉했다. 김 씨는 그녀에게 만남을 요구했으나 A 씨가 매번 거절하자 1월부터 꾸준히 스토킹을 해왔으며, 자신의 연락처가 차단되자 다른 번호를 이용해 연락을 계속 시도했다.

3월 29일 김 씨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25만 명을 돌파했고, 청원에 따라 경찰은 지난달 5일 신상공개정보위원회를 개최했다. 위원회는 ▲범행수법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점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점 ▲공공의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김 씨의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이어 경찰은 지난 8일 김 씨에 대해 살인·절도·주거침입 외에도 경범죄처벌법 위반(지속적 괴롭힘),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2개 혐의를 추가 입건하고, 다음날 김 씨의 얼굴을 공개했다.

 

강력범죄의 전조(前兆), 스토킹

 

법률에서 ‘스토킹 행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가족에 접근하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등을 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여러 논문과 통계는 일찍이 스토킹 행위가 강력 범죄의 전조현상임을 지적해왔다. KBS 보도에 따르면 2018년 1심 선고가 난 살인 또는 살인미수 사건 381건 중 피해자가 여성인 사건은 159건, 이 중 스토킹이 포착되거나 의심되는 사건은 48건으로 무려 30%에 육박했다. 정도희 경상대학교 법학과 부교수가 발표한 논문에서도 스토킹과 후속 범죄 사이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논문에 따르면 2014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스토킹 피해 상담 건수 240건 중 강력 범죄로 이어진 사례는 51건으로 21%에 달했다.

널리 알려진 강력 범죄 사건 가운데 피해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스토킹이 범죄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2019년 ‘진주 방화·살인 사건’ 피해자인 여고생은 지속적인 스토킹에 시달리다 경찰에 신고까지 했지만 상해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다 살해됐다. 당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 22명에게 피해를 끼친 피의자 안인득이 조현병 환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심신미약 범죄로만 관심이 쏠렸으나, 경찰 조사 이후 해당 범죄와 스토킹 간 관련성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여성 프로 바둑기사 스토킹 사건, 식당 여주인 스토킹 살인사건 등 흔히 알려진 강력 범죄는 범행에 앞서 가해자들의 지속적인 스토킹이 이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22년의 긴 터널 통과한 스토킹 처벌법

 

스토킹을 경범죄로 간주하던 과거를 뒤로 하고, 지난 3월 24일 이른바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해 9월 말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스토킹을 중범죄로 처벌하자는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지난 20대 국회까지 21년간 총 14건 발의됐으나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법안 제정이 지연되는 가운데 스토킹의 심각성이 드러나는 범죄가 다수 발생하면서 스토킹 범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스토킹 범죄 관련 법률 제정에 먼저 나섰고, 국민의힘 성폭력특위가 1호 법안으로 스토킹 방지법을 발의하며 마침내 구애나 괴롭힘 정도로 취급됐던 스토킹 행위가 범죄가 될 수 있음이 명문화됐다.

법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스토킹 범죄에 대한 형량이 이전보다 강화되고 잠재적 피해자가 공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음을 파악할 수 있다. 기존에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는 1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 정도의 처벌만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법제화를 통해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되며, 흉기 등을 이용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즉각 제재할 수 있어 스토킹 초기 단계에서 경찰이 행위 제지나 처벌 경고 등의 응급조치를 내릴 수 있게 됐다. 필요에 따라 100m 이내 접근금지 또는 통신매체 이용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경찰은 판사의 승인 전에 우선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아울러 스토킹 재발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검사의 직권으로 스토킹 행위자를 유치하는 잠정 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반쪽짜리’ 오명 쓴 스토킹 처벌법

 

그러나 스토킹 처벌법 조항 내에 다수의 허점이 존재하며, 피해자 보호 관련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는 제정된 법 내에 반의사불벌을 내포하는 조항이 담긴 점이 지목된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기소할 수 있으나 피해자가 범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할 경우 형사재판이 종료되는 범죄를 의미한다.

스토킹 범죄의 정의를 밝히는 스토킹 처벌법 제2조 제1호에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라는 구절이 명시됐다. 전문가들은 이 조항이 반의사불벌죄로 간주돼 피해자의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스토킹 범죄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피해자에게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반의사불벌이 피해자의 의사와 인권을 존중할 수 있는 조항인지에 의문이 든다”고 강조했다.

스토킹 처벌법에 명시된 지속성과 반복성 역시 법안의 맹점으로 지목된다. 스토킹 처벌법 제2조 제1호는 스토킹 행위가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이뤄져야 범죄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스토킹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부족해 경찰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경우 혼선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외에도 피해자가 접근금지 신청을 위해 경찰과 검찰, 더 나아가 법원의 심리를 거쳐야 해 자신이 원할 때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로 떠오른다. 게다가 가해자가 경찰 직권의 접근금지 등 응급조치를 어겨도 과태료 처분이라는 ‘행정 처분’만을 받게 돼 피해자 보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피하지 못했다.

한편 스토킹 처벌법이 가해자 처벌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피해자의 일상 복귀지원 ▲보호 명령 이후 피해자가 거주할 쉼터 마련 ▲가족 등 피해자 주변 인물 보호 등 피해자 보호에 관한 후속 입법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현재 여성가족부의 주관 속 여성정책연구원이 피해자 보호조치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며 이는 8월께 완료될 예정이다. 그러나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 관련 내용을 각각 다른 부서에서 담당하며 부처 간 칸막이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한 의원실 관계자는 처벌법과 피해자 보호법이 별도로 나뉘어 제정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국회서 처벌법을 우선 통과시켰다고 해명했다.

 

더 이상 피해자가 없길 바라며

 

22년의 숙원이었던 스토킹 처벌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전문가들은 공론화가 시작된 시점에 비해 법제화의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고 평가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20대 국회에서 입법이 됐다면 세 모녀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지금의 법은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여전히 미흡함이 존재해 추가적인 법제화가 요구된다. 스토킹 처벌법을 토대로 모든 이들이 스토킹에서 비롯된 범죄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기원한다.

김준범·최혜지 기자
fred00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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