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두려운 저소득층

유례없는 폭염이 찾아왔지만 다수의 저소득층 가구가 냉방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강해지는 폭염은 주거빈곤 가구의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이에 우리 사회의 곪은 단면인 주거빈곤 실태를 The HOANS에서 낱낱이 파헤쳐봤다.

 

최근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코로나19 방역으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증가하자 주거 취약계층과 같이 냉방시설 이용이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올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7월 한 달 동안 온열질환으로 인한 구급 출동 건수는 553건으로 작년보다 약 6배 정도로 증가했다. 한편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저소득층 가구의 에어컨 보급률은 0.18대로 0.89대인 전체 가구 에어컨 보급률에 비해 크게 낮아 여름을 에어컨 없이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발표한 ‘2020 폭염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급여수급자의 폭염 피해 사례가 소득분위 상위 5분위 가구보다 약 3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저소득층이 폭염 및 자연재해에 취약한 이유 중 하나로 주거환경의 열악함을 꼽는다. 냉방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은 데다 대체로 주택에너지 효율이 떨어져 환경의 영향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주거빈곤에 처한 사람들

 

주거기본법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최저주거기준을 설정해 공고하고 있다. 공고에 따르면 부부와 2인 자녀 가구의 최저생활기준은 상하수도가 완비된 부엌과 화장실, 욕조를 갖춘 3개실을 갖춘 주거면적 43㎡의 주택으로, 가구원 수에 따라 방 수와 기준주거면적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주거빈곤은 이러한 기준에 미달하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상태와 더불어 고시원, 컨테이너 등 주택 이외의 거처에서 지내는 상태 등을 포함한 개념이다.

한국도시연구소의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및 주거빈곤 가구 실태 분석’에 따르면 2015년 전체 주거빈곤율은 12%로 20년간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서울시의 주거빈곤율은 18.1%로 전국 평균을 크게 상회했고, 서울시와 경기도에만 17만여 가구가 주택 이외의 거처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기준 수도권 지역의 최저 주거기준 미달 가구 비율은 6.7%로 5.3%인 전국 평균 비율보다 높다는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도 고려했을 때 수도권의 주거빈곤은 여전히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저소득층뿐 아니라 2030 청년층에서도 높은 주거빈곤율이 나타나고 있다.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의 주거빈곤율은 17.6%로 전체 가구의 주거빈곤율보다 6%P 높았으며, 서울 청년 가구의 주거빈곤율은 37.2%로 훨씬 심각한 수준을 보였다. 경제적 형편으로 인해 고시원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 대학생은 한국도시연구소와의 심층 면접에서 “원룸보다 보증금 부담이 적어서 고시원에 산다”며 목돈을 구하기 어려운 청년층의 현실을 토로했다.

주거빈곤은 적정한 에너지 소비를 경제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에너지빈곤으로 연결된다. 에너지빈곤의 원인으로는 ▲낮은 소득 ▲높은 에너지 가격 ▲주택에너지 비효율성이 지목된다. 소득이 낮거나 에너지 가격이 높아지면 구매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줄어들고, 에너지 효율이 낮은 주택에서는 에너지 구매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복지 욕구 실태조사 연구에서도 소득이 100만 원 이하 가구의 소득대비 에너지비용 부담은 소득이 3-400만 원 가구보다 3배 정도 높았고, 노후 주택일수록 에너지비용 부담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소득수준이 낮고 주거환경이 열악할수록 에너지비용 부담이 커져 더욱 열악한 주거환경에 놓이게 돼 다수의 주거빈곤 가구가 동시에 에너지빈곤에 시달리게 된다.

 

폭염에 더 취약한 저소득층

 

무더위가 특히 심했던 이번 여름은 에너지빈곤층에 큰 피해를 줬다. 에너지 시민연대의 여름철 에너지빈곤층 실태조사에 따르면 90%에 달하는 에너지빈곤층 가구가 선풍기나 부채만으로 더위를 버티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파뿐만 아니라 폭염과 같은 기후환경에서 에너지 사용은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에도 저소득층이 아직 최소한의 에너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한편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앙헬 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팀이 진행한 연구는 폭염과 함께 동반된 열섬현상이 고소득층 주민보다 저소득층 주민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다고 분석했다. 열섬현상의 강도는 녹지 면적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데 저소득층 거주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녹지 공간이 적은 경향을 보이는 게 핵심 요인이다. 이에 더해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논문에서도 냉방시설이 없는 주거환경에 처한 저소득층 가구의 경우 고온의 바깥 기온에 거의 그대로 노출돼 폭염의 영향이 더 클 것이라 주장한다. 이처럼 저소득층의 기후 피해를 강조하는 연구 결과가 증가하자 주거빈곤에 처한 이들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월 기준 전국의 영구 임대주택 가구 대비 에어컨이 설치된 가구는 42%에 불과하다. 이는 에어컨 비용과 전기요금이 부담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정부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공급한 영구 임대주택의 대부분이 사용 가능 전기량이 적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2019년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급한 영구 임대주택의 경우 벽걸이 에어컨을 기본으로 갖추도록 설계가 개정됐으나 이전에 완공된 주택들은 상황이 다르다. 2000년 이전에 완공된 대부분의 영구 임대주택은 가구당 전기 용량이 1.2kW인데, 벽걸이 에어컨의 소비전력이 0.6kW 이상이니 에어컨을 켜려면 소비 전력이 큰 다른 가전을 꺼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에어컨 이용 자체가 어렵다 보니 저소득층의 주거를 위한 영구 임대주택이 제 목적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해결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계속되자 특히 취약계층 아동들이 겪는 피해가 증가했다. 실제로 코로나19 탓에 취약계층 아동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에도 제한이 많아졌다. 서울시는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지역아동센터 이용 인원을 기존의 50%로 제한하고 인당 이용 시간도 대폭 줄인 상태다. 학교의 긴급돌봄 역시 신청자가 몰려 이용이 쉽지 않았다. 학교 수업도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는데 저소득층 아동이 이용할 외부 시설도 정상 운영이 힘들어지자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저소득층 아동들의 폭염 피해 위험이 커졌다.

 

정부의 노력과 한계

 

정부와 각 지자체는 주거 및 에너지빈곤에 처한 이들에 대한 복지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무주택 저소득 시민들 대상 임대주택 ▲저소득층 대상 주거급여 ▲주거빈곤층 주거 지원 등이다. 특히 중앙정부는 주거빈곤에 놓인 무주택 청년들을 대상으로 보증금의 약 98%를 지원해주는 청년 전세임대주택 사업을 진행하며 높은 청년 주거빈곤율을 낮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에 더해 에너지 복지 정책으로 정부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냉·난방비를 지원해주는 에너지 바우처 사업을 통해 취약계층의 에너지 구매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중앙정부에서 주택 공급 등 거시적 사업을 주도한다면 지자체에서는 저소득층 주택의 단열·창호·바닥공사를 지원하고 노후 보일러 교체 및 에너지 절감형 냉방기기를 제공하는 등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미시적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의 경우 코로나19 유행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에너지 취약계층을 위해 냉방용품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수선 유지 급여, 소규모 집수리와 같은 사업을 포함한 노원구의 ‘저소득층 집수리 사업’ 등 다양한 단위의 지자체에서 저소득 주거 및 에너지빈곤 가구를 위한 복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렇듯 정부 차원의 복지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나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주거·에너지 빈곤층 지원 정책의 선정 기준이 모든 빈곤층을 포괄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정부는 에너지빈곤 지표로 에너지 구매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의미하는 TPR을 이용해 저소득층 주거환경에 관련된 복지 정책을 내지만 이는 단순히 에너지비용 지출만을 고려하기 때문에 고소득 가구가 포함되거나 고시원과 같이 주택 외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를 무시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를 해결하고자 외국에서는 에너지 효율성과 지역 특성 등을 반영한 새로운 지표를 이용하고 있다. 유럽 연합이 추진하고 있는 지표인 2M은 ‘소득 중 에너지비용의 비율이 전국 중위값의 2배 이상인 가구’를 말하는데, 이를 반영한 서울시 에너지빈곤층의 비율은 12.5%로 TPR 지표로 계산했을 때의 결과인 1.3%와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의 지표가 도움이 필요한 가구 비율을 상당히 과소평가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에너지빈곤 전담 부처가 없어 중구난방식 정책 설계와 집행이 이뤄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토연구원은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연계 강화방안 연구’에서 주거복지나 에너지 복지 정책은 여러 관련 기관이 분절적으로 집행하고 있어서 기관별로 대상 선정 기준이 다르고 상호 정보공유가 원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책 홍보 부족으로 수혜 대상자들은 복지 정책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정책 수혜율도 낮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주거복지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거빈곤층 가운데 주거복지 프로그램이나 에너지 효율 개선사업에 대해 알고 있는 응답자는 50%가 채 되지 않았다. 또한, 국토교통부의 2019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주거취약가구 중 정책 수혜가구는 21%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복지 정책의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부 한계 보완하는 비영리단체

 

국내 비영리단체도 주거빈곤층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본지는 개중에서 위스타트와 월드비전 단체 두 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해 이에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위스타트와 월드비전은 각각 ‘혹서기 지원 캠페인’과 ‘아이시원 캠페인’을 운영하며 저소득층 가구에 냉방 관련 지원을 하고 있다. 이는 폭염뿐만 아니라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가정 내 에너지 사용량이 전년 대비 256% 증가한 까닭에, 에너지빈곤 가정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함이다.

이러한 노력은 실제로 에너지빈곤 가정에 일정 부분 힘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주군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조 모 씨는 월드비전의 아이시원 지원금 수혜자로 선정됐다. 학생의 학부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형편이 어려움에도 수급자 선발에서 탈락해 정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나 아이의 초등학교를 통해 월드비전 지원 대상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며 안도감을 표했다.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여러 가정을 비영리단체와 지역기관이 찾아 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비영리 단체들 역시 제한된 예산으로 캠페인을 운영하는 실정이다 보니 자체적 기준을 마련해 지원 대상을 심사 후 선정하고 있다. 월드비전의 경우 ▲24세 이하 아동·청소년 동반 ▲중위소득 80% 이하 가정이라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때 정부의 에너지 바우처 지원 대상은 선정에서 제외된다. 이중 수혜를 방지하면서 정부 지원 범위에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의 아동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월드비전 위기 아동지원팀은 “정부 에너지 바우처의 경우 수급 가구만 신청할 수 있어 일반 저소득 가구의 필요를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해당 기준을 마련한 이유에 대해 덧붙였다. 위스타트 역시 지원 가정 심사 과정에서 ▲가정의 경제상황 ▲가구 형태 ▲필요성 이외에 각 가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담당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채택 중인 TPR 지표의 수치가 실제 모든 가정형편을 대변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외에도 지역의 아동보호기관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아동들을 추천받는 등 비영리 단체들은 제각기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각지대 완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에너지 복지 제도 개선이 선제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비영리단체의 지원이 제 효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현재 TPR 지표와 2M 지표 간의 차이는 약 10배로 실제 정책이 필요한 계층 대비 정부 지원 범위가 좁아 비영리단체의 역량으로는 모두 지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가정 모니터링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데다 전국적 규모로 시행하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받고 있다. 진상현 경북대 교수는 에너지 복지 정책과제에 관한 토론에서 “정책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확한 에너지빈곤층 기준 설정이 우선”이라며 이러한 의견에 힘을 실었다. 또한 저소득층의 에너지 소비 실태조사 후 해당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정책을 마련해야 함을 재차 강조했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위해서는

 

한풀 꺾인 더위지만 저소득층 가구는 변화하는 기후환경에 매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정부와 여러 비영리단체는 현물지원과 현금성 복지를 시행하며 열악한 상황에 처한 저소득층 가구를 다방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사용하는 수혜 기준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수혜 대상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전체 주거 및 에너지빈곤 가구를 포괄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정부는 저소득층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관련 복지 기준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으로의 저소득층 가구가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질 때이다.

김동현·손성진·유민제·정윤희 기자
justlemon22@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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