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인물] 영내 사건과 군사재판 제도, 문제점과 해결책은?

지난 3월호에서 The HOANS는 영내 가혹행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본교 고(故) 최현진 학우의 사건을 다뤘다. 이번 호에선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에게 자문해 영내 폭행 및 가혹행위의 개념과 군 사법절차에 대해 알아봤다. 자문에는 군법무관 출신 김정민 변호사(이하 김 변호사)와 박지훈 변호사(이하 박 변호사), 육군 준장으로 고등군사법원장을 역임한 이은수 변호사(이하 이 변호사)가 참여했다.

 

영내 폭행과 가혹행위, 무엇이 문제인가

영내 폭행과 가혹행위는 구성요건이 다르다.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직접 물리력을 사용해서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가령 소리를 세게 질러 청각적인 고통을 주는 등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물리력은 폭행이 되지만, 그저 냉소적 표정을 짓고 비웃는 등의 행위는 법적으로 폭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아냥이나 비열한 언사 등의 행위 역시 폭행이나 모욕엔 해당되지 않지만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다. 군대라는 특성상 장기적으로 이런 행위에 시달리는 건 큰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군형법은 이런 법적공백을 메우고자 해당 행위를 위력행사 가혹행위나 직권남용 가혹행위로 의율하고 있다.

가혹행위란 견디기 힘든 정도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을 말한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강제로 담배를 피게 하거나 뜨거운 물을 손등에 올려놓고 참게 하는 등 ▲폭행 ▲협박 ▲모욕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사회통념상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인정되는 경우’를 가혹행위로 처벌한다. 직권남용 가혹행위란 간부들이 지위를 남용해서 상대방이 저항하지 못하는 점을 악용한 가혹행위다. 그런데 직권남용은 적법한 권한을 남용하는 행위를 말하지만 병사들 상호 간에는 직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병사들은 권한과 책임이 따르는 ‘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사들 사이에는 직권남용 가혹행위가 성립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보완책이 위력행사 가혹행위다. 위력행사는 위세를 부려 가혹행위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즉 직권이 없는 선임병도 어느 정도 위력을 행사하는 건 가능하므로 위력행사 가혹행위로 의율할 수 있다.

또한 행정 시스템상 해군·공군 및 육군 행정병에게는 많은 업무의 하중이 간다. 법적으로 행정병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행정병의 업무는 모두 과외 업무이지만 행정실의 병사들은 문서작성, 대외문건 등의 간부 업무까지 처리하고 있다. 이런 식의 업무 전가 역시 가혹행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변호사는 “훈련 도중 그런 업무를 시켰을 경우에는 훈련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과 도중이나 간부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경우에 업무를 전가한다던가 그 병사가 해당 업무를 할 능력과 시간이 없음에도 그러한 업무를 강요하는 것은 가혹행위가 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군형법상 폭행죄는 적전(敵前)의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그 밖의 경우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또한 군대 내 가혹행위에 대한 법정 처벌은 죄질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박 변호사는 “가혹행위에 대한 법정형 자체는 강한 편이지만 실제 처벌수위는 집행유예나 벌금이 많이 나온다. 상습적이고 악질적인 행위가 아닌 이상 실형이 나오는 경우는 적으며 실제 처벌수위는 다소 약한 정도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4년 지휘관의 상습적인 성희롱 및 가혹행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오 대위 사건’의 경우, 군사재판 1심에서 가해자인 노 소령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해 논란이 된 바가 있다.

병영 내 폭행 및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사건이 일어나는 이유는 병역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김 변호사는 “징병제라는 특성상, 우리나라의 병역제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반강제적으로 입대해 밀집된 공간에서 다수와 생활하다 보니 모든 병사에게 스트레스가 누적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스트레스가 영내 폭행 및 가혹행위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가혹행위 피해자가 받는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피해자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간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그저 처벌 수위만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군 전과자만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을 뿐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마치 대증요법 식으로 문제가 나타난 다음에 쫓아가듯 대응책을 만들다 보니까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되는 것이다”라며 구조상의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지적했다. 이어서 “징병제에서 모병제로의 급진적인 제도 변화를 취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일과시간을 명확히 해서 일과가 끝나면 모든 업무를 끝내고 개인 사적 공간에서 휴식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모병제적 요소를 도입해 영내 개인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조치만으로도 문제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아직은 폐쇄적인 군 사법절차

군대 내에서 영내 폭행 및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사건이 일어나면 유족 측에서 대응해야 하지만 모든 절차는 군에서 주도한다. 사건조사나 수사재판 과정이 전적으로 군사법원을 중심으로 군헌병과 군검찰이 수행하다 보니 유족들은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가 잦다. 유족들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듣고 싶어하지만 헌병 측에서는 그저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만을 반복하는 상황이 흔하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조사과정에서 유족들은 직접적인 사건관계자의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적극적인 조사 참여가 제한된다. 유족들 입장에서는 유족단체나 군 인권센터의 힘을 빌려 언론을 통해 이슈화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응책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사건을 전담하는 정부 주도의 공공기구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예컨대 법률구조공단과 같이 공공성을 가진 법조 직역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 곳은 없으며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문제를 전담하고 있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생겼다가 시효가 만료돼 없어졌고, 현 문재인 정부부터 다시 군 사망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역시 상설기구는 아니고, 초동 수사 단계부터 유족들의 바람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기구나 절차는 여전히 전무하다.

변호사 시장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김 변호사는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들이 일부 존재하지만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군 형사사건 변호를 포기하고 이와 같은 자살사건에 유족들의 대리인으로 나서서 싸워줄 변호사가 현실적으로 많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김 변호사는 “한 해 1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군에서 사망하는데 이들을 위해서 국가가 전문적인 법조팀을 운영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수사만큼 중요한 것이 유족을 위로하고 유족에게 부족한 법적지식을 보강해주는 것이다. 현행 시스템은 유족들에게 너무나 많은 비용과 심리적 고통을 수반하게 한다”라는 의견을 표출했다. 그러나 현실은 국방부 차원에서 순직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사망보상금이나 보훈등록, 국립묘지 안장 등에 대한 안내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현재 국회에서 김상훈 의원이 군(軍) 사망사고 유족에 대해 국선변호사가 선임되도록 하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지만 실제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군사재판에 관해 적어도 사망 사건은 군 단독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민간의 유족들이 믿을 수 있는 기관에서 조사에 동참해야 신뢰성이 보장된다. 유족들 입장에선 군대에서 피해자를 징병해서 영내에서 죽은 뒤 군대에서 조사한 후 무조건적, 일방적으로 수사결과를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국가형벌 시스템 자체가 피해자가 직접 뭘 하는 게 아니라 국가기관이 조사하고 기소하고 재판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유족들 입장에선 전부 한통속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군에서는 다 같은 군인이고 다 같은 부대이기에 더욱 그렇다”라고 밝혔다.

사법권은 전문성과 독립성의 두 가지 큰 틀로 보장되지만 군판사와 군검사는 아무런 신분보장을 받지 못한다. 심지어 임명권도 각 군 참모총장이 갖고 있는 상황이다. 즉 군법무관들은 진급에의 평점영향이나 해임에 아무런 신분 보장없이 그대로 일종의 외압에 노출됐다고 볼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옛날 같은 경우엔 변호사 시장에 나오는 것이 많은 군법무관들의 목표였지만 로스쿨 제도로 인해 변호사 시장이 척박한 현 상황에선 사정이 다르다. 진급과 정년이 크게 관련없는 민간판사와는 달리 군법무관은 소령이나 중령에서 도태되면 군에서 나와야만 하는 상황이다. 진급에 신경을 써야 할 군법무관들에게 소신에 따라 재판하며 정의를 세우고 약자 편에 서서 권력과 싸우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견지했다. 이 변호사는 “가능하면 군대 내에서 처리하는 게 좋겠지만 업무를 하다 보면 지휘관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존재하므로 적절히 섞어 판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영미법 국가에서는 피해자가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서 조사하고 영장을 청구하는 제도가 있다. 군 내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 역시 군인 주도의 재판 시스템이 아닌 피해자, 유족 중심적인 조사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이다. 박 변호사는 “평시에는 민간법원에서 군사재판 사건을 처리하는 제도 도입도 고려해야 하며 현 군사법원의 독립성을 더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그러한 논의가 존재하지만 아직 구체화되고 있지는 않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제는 개선돼야 할 때

평일 외출제도나 영내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과거보다 병영문화가 선진화되었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아직도 징병제의 근본적 결함으로 인한 영내 폭행 및 가혹행위 문제는 여전하다. 군사재판의 폐쇄적인 절차 및 관련 기반 제도의 부족으로 인해 이런 문제에 대응하는 피해자 측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풍환 기자

98tigger@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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